서대문구 홍은동, 제법 가파른 골목길을 걸어 피스모모의 새로운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낮은 담장과 활짝 열려있는 대문이 ‘누구든 오시라, 모두의 것’이라 말하는 듯했다. 피스모모의 프로그램을 참여할 때면 가장 먼저 환대를 경험한다. 그 경험은 경계를 풀고 참여자가 진행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심화과정에 대한 나의 기대감은 환대와 함께 더욱 높아졌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자극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동심원 대화를 시작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고, 입문과정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묘한 부담과 압박이 계속되었다. 진행을 맡은 대훈은 진행자의 역할을 상기하도록 촉진했는데, 나는 시종일관 참여자의 마인드를 버리지 못하고 내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입문과정에서 새로운 활동에 참여하고 토론하며 성찰했던 그 경험이 깊게 남아서인지, 진행자로서 심화되기보다는 입문과정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프로그램을 추가로 배우기만을 기대했던 것 같다. 하여 모든 과정이 수월하지 않았고 버거웠음을 고백한다.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교육 진행자로서 중요한 몇 가지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힘주기(Empower)’다. ‘empowerment’의 사전적 의미는 리더가 업무수행에 필요한 책임과 권한, 자원에 대한 통제력 등을 배분 또는 공유하는 과정을 말한다. 진행자에게는 임파워먼트가 중요한데, 리더로서 배분하는 것과는 개념이 다르다. 평화라는 공동의 것을 발견하고 지키기 위해, 참여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참여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촉진하고 연결 짓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역량인 ‘요약하기’와 ‘바꿔 말하기’가 의미있게 다가왔다. 특히 ‘바꿔말하기’를 통해 참여자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때, 발화자의 인정욕구를 충족시키고 공동체에 기여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더불어 나의 부족한 언어적 역량과 생각을 시의적절한 함축적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더해 진행자 고유의 가치와 철학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이는 피스모모의 ‘평화는 모두의 것’을 기반으로 하되, 내가 추구하는 평화를 나만의 방식으로 개념화하고 표현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심화과정을 통해 평화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는 평화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높은 이상과 가치에 가까웠다. 평화감수성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평화라는 공동의 가치를 함께 키워가자고 초대하는데 머물렀던 것 같다. 그러나 ‘커먼즈(commons)’를 통해 평화는 좀 더 구체적인 ‘어떤 것’으로 감각할 수 있었다. 평화커먼즈, 평화를 공동의 부로 생각하기, 그리고 권리로서 평화를 선언하기, 이 깨달음은 마음에 묘한 울림을 주었다. 평화를 실현해야 할 가치가 아니라, 함께 누려 마땅한 권리, 함께 기여하여 키워갈 수 있는 것으로 인식을 전환할 때,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것들이 더 풍성해질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안고 평화교육 진행자로서 참여자와 함께 한다면 지금까지의 나보다 분명 한 발자국 더 나아간 모습으로 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좋은 내용과 안내로 ‘심화과정’을 이끌어주신 대훈과 피스모모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하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