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영(피스모모 대표)
“아니, 다른 곳도 아니고 광주에서 이래도 되는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어떻게 2022년에 군대가 학교에다 이런 공문을 보내요. 학교는 어떻게 이걸 그대로 아이들 손에 들려보내고요. 정말 믿고 싶지가 않네요.” 아이들을 광주광역시의 한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는 우리 단체 회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어린이날 맞이 부대개방행사 안내장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 어린이날 부대개방행사 안내장
해당 안내장은 31보병사단이 발송한 것으로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군인 자녀들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군인 자녀 친구들에게 부대 개방을 통한 군에 대한 신뢰도를 증진하기 위해” 부대개방행사를 준비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제보자는 안내장을 살펴보다 “스마트 모의총기 사격”이 포함된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아이들의 손에 모의 총기를 쥐어주고 사격을 해보도록 한다는 발상이 2022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뿐더러, 다른 곳도 아니고 군사독재시절 군부의 총탄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광주'의 교육기관에서 아무런 제재없이 아이들의 손에 이런 안내장을 쥐어줬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는 것이었다. 부대개방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체험학습'의 목록을 살펴보았다.
'스마트 모의총기 사격'외에 '워리어 플랫폼', '서바이벌 체험', '드론전시 및 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었다. 단어들의 조합을 살펴보니 의아했다.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워리어 플랫폼” 영어로만 구성된 단어다. 하지만 영어를 병기하지도 않았다. 워리어(warrior)는 '전사'를 의미하는 영어단어이다. 두 단어 모두 말 그대로 '전쟁에서 싸우는 군사'를 의미한다.
31보병사단이 제공한 문서에는 별도의 설명이 없기 때문에 워리어 플랫폼이라는 이름에 기반해 추정하면, 이는 육군이 2018년 아크부대 14진에게 적용한 것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모든 육군부대에 적용하겠다고 한 개인 병사용 웨어러블 전투 체계를 의미한다.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들에게 첨단 전투 장비를 체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 한화 워리어플랫폼 소개이미지 한화시스템 홈페이지에 담긴 워리어플랫폼 설명
전쟁에 투입된 군인들, 고도로 훈련된 전투원을 위해 만들어진 이 장비들을 어린이들에게 입히려는 이유, “어린이날”에 이 군사장비를 체험해야 하려는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어린이들의 손에 무기를 쥐어주고자 하는 어른들의 욕망을 마주하자니 떠올리게 되는 장면들이 있다.
1969년, 박정희 정권은 중등학교 이상, 전국의 모든 학교에 교련과목을 의무화했다. 공교육기관을 군사훈련기관으로 활용한 박정희 정권의 전략은 일본이 학도병을 양성했던 방식을 벤치마킹한 것이고, 일본의 학도병 양성은 히틀러의 유겐트 나치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치석의 <전쟁과 학교>에는 1940년 10월, 경기중학교를 방문했던 히틀러 유겐트(Hitler Jugend)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학교를 통해 군사교육을 하고자 했던 나치 독일, 제국주의 일본,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은 왜 모두 '어린이'들을 군사훈련의 대상으로 선정하고, 공을 들였을까? 왜 교육기관을 장악하고 군사화했던 것일까? 이는 군대, 학교 등의 국가기관이 적대감을 고취하고 직접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화적 기제를 창출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88년 대학에서의 교련과목이 폐지되었다. 교련과목의 폐지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공교육을 군사화하려는 국가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 학생 당사자들의 거센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교련폐지를 이끌어낸 학생들의 저항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31보병사단은 안내문을 통해 “군인 자녀들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군인 자녀의 친구에게 군에 대한 신뢰도를 증진”하기 위해 부대개방행사를 추진함을 밝혔다. 군인 자녀의 친구를 초대해 군의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는 군인가족 구성원들을 위한 직장개방의 차원을 이미 넘어서 있다. 군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대민사업에 어린이날이 이용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폭력은 직접적으로 발생한 것만을 이르지 않는다. 동료시민을 빨갱이로 호명하고 그들에게 발포할 수 있었던 까닭은 국가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학습의 결과였다. 공적 공간이어야 하는 국가기관들을 통해 강력하게 확산되었던 낙인, 라벨링(labelling)의 결과였던 것이다.
1980년 5월, 군부독재에 맞섰던 광주의 사람들을 폭도라고, 빨갱이라고 호명했던 그 군국주의의 욕망과 2022년 5월, 어린이의 손에 첨단 무기를 쥐어주겠다는 욕망은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른가? 전두환 신군부의 발포명령에 복종한 군인들의 총구가 어떤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는지, 그 끔찍한 폭력을 기억한다면,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들에게 모의 총기 사격을 권할 수는 없는 일이다.
1924년 제정된 UN 아동권리협약 제38조 2항은 당사국이 “15세에 달하지 아니한 자가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아니할 것을 보장하기 위하여 실행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분단 상태의 한반도에서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 '아군'과 '적군'의 이분법에 기반한 적대관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은 여전히 요원하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인해 한국사회의 어린이들은 알게 모르게 다양한 적대행위에 노출되거나 동원되어 왔다.
2022년 5월 5일, 31보병사단이 준비한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다. 광주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군부대들이 '적으로 규정된 사람'을 잘 죽이도록 설계된 시스템 속에 어린이를 위치시키고, 총기로 그 '적'을 겨냥하도록 안내할 것이다. 그리고 학교는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수행하며, 이 모든 과정을 '학습'이라 부를 것이다.
▲ 어린이날 부대개방행사 관련 사진기록들 유아부터 청소년까지 참여자의 연령대가 다양하다.
어린이날, 어린이들이 경험하는 세계를 '적', '공격', '조준', '사격'으로 채우려는 어른들의 욕망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총구의 끝에 살아있는 어떤 존재를 상정하고 겨누는 그 행위로부터 어린이들이 무엇을 경험하길 원하는가?
2022년 5월, 100번째 어린이날을 맞으며, 분단상태의 한국사회가 '어린이'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묻는다. 분단이 초래한 폭력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성찰할 책임과 의무가 이 사회의 어른들에게 있다는 것을 함께 기억하고 싶다. 내가 좋은 어른이 되는 것과 별개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가를 고려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책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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