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와 오퍼레이터
: 소설 <피프티피플>과 극 <내 아이에게-2020세월호:극장들>로부터
펭펭(피스모모 커뮤니티매니저)
‘너 그거 알아?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안전법들은 유가족들이 만든거야.’
정세랑의 소설 <피프티피플>에는 제목 그대로 50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소설은 등장하는 이들의 이름으로 챕터를 이룬다. 그 중 ‘한규익' 편. 규익의 큰 누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의 사망자다. 작은 누나는 4년째 열심히 싸우고 있다. 얼마 전에는 큰 누나를 죽인 제품을 만든 회사의 본사에 시위를 하러 런던에도 다녀왔다. 작은 누나는 잠깐 집에 들른 규익에게 런던에 같이 갔던 분이 보내주셨다는 딸기를 씻어준다. 규익은 딸기를 먹으며 이 딸기는 가족을 잃은 사람이 키운 딸기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2020년 3월 기준 1518명이 사망했고 6715명이 건강피해를 입었다. 검찰은 피해자들이 나타난 2011년 이후 3년이 지나서야 수사를 시작했고 해당 제품을 만들고 유통한 기업은 5년이 지나서야 유가족들에게 사과했다. 그간 유가족들은 국가와 제조사를 상대로 고발, 기소, 시위를 반복했다. 소설 속 규익은 그것이 반복되는 동안 변해온, 셋 중 가장 건강했던 작은 누나의 얼굴이 힘들다. ‘기쁘거나 화를 내거나 심지어 잠을 잘 때에도 불신이 섞인 얼굴, 매일 추락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걸 보는 게 아프다. 작은 누나는 조용히 딸기를 먹는 규익에게 말한다. 세상의 모든 안전법은 유가족이 만들었다고. 외국도 다 그렇더라, 면서. 그 말을 들은 규익은 다음번에 뭐 할 때 자신도 데려가달라고 말한다. 거기가 어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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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똑똑해 보이고 싶었던 나는 신문을 스크랩 했는데 막상 읽지는 않고 스크랩 노트를 보기 좋게 꾸미는데만 집중했다. 신문은 한자가 가득했고 기자나 앵커들의 말투는 지루했다. 읽든 듣든 잠이 와서 시사나 정치에 담을 쌓았다. 나중에서야 이야기나 몸을 통한 공부가 맞는 성향이란 걸 알았다. 그 후 소설, 그림책, 영화, 드라마, 연극 등 이야기를 찾아다녔다. 내가 매료되는 이야기에는 꼭 사회적 약자들이 등장했고 시사도 정치도 담긴 그들의 이야기는 내게 자극적인 세상 공부였다.
모모와 함께 하며 알게 된 활동가 쭈야는 연극을 올리는 활동도 하고 있는데, 연극에 관심이 있다 전한 나에게 문자를 주었다. ‘기억음악극’의 오퍼레이터로 한 번 참여해 보겠냐고. 세월호 관련 연극이라 했다. 난 고민했다. 세월호를 주제로 한 연극이 내게 줄 감정이 훤히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어찌 답장할지 고민에 빠졌다. 부끄럽지만 난 세월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뒤집힌 선체를 떠올리면 눈물이 울컥 솟았지만 눈물은 금새 말랐고 그렇게 잊은 채 지내왔다.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고, 노란 팔찌를 차고, 잊지 않겠다고 되뇌는 것. 매년 이맘때 해온 일이지만 찜찜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뭘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건지? 그러나 찜찜함도 금새 잊혀졌고 그새 6년이 흘러온거다. 핸드폰을 쥐고있던 난 숨을 들이마시며 결단했다. 그래, 이건 6년 간의 찜찜이를 풀어낼 기회야, (마음은 힘들어지겠지만) 해보는거야! 후루룩 답장을 보냈다. 좋은 기회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퍼레이터가 뭔지 잘 모르지만 해볼게요!
<내 아이에게>라고 크고 두꺼운 제목이 적힌 대본을 건네받았다. 극이 진행되는 중에 준비된 음향과 음악을 재생하는 것이 내게 맡겨진 역할이었다. 내 겉 모습은 관객과 별 차이 없어 보였지만 배우들의 대사와 밴드가 부르는 가사를 놓치지 않아야 했기에 꽤 집중을 요했다. 난 혹시나 재생 타이밍을 놓칠까 긴장했지만 다행히 별 일 없이 마무리 되었다. 여러번 듣고 읽다보니 집에 가는 길이나 일터에서 대사들이 잔상처럼 떠올랐다.
'저희가 직접 구조 임무보다는 청장님 입장할 수 있게 준비하라는 겁니까?'
'내가 와 있는데, 이 몇 미터 앞에 기껏해야, 몇 십 미터 앞에 내 아이가 있는데, 그냥 죽어가고 있는데, 그냥, 그걸 그냥 지켜본 거야. 다들. 그런거야.'
코로나로 인해 공연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비대면 영상 발표를 했다. 관객석에 삼각대와 카메라가 놓였다. 아주 적은 수의 관객분들만 입장하였는데 양일 모두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오셨다. 난 괜시리 긴장이 되었다. 앉아있는 오퍼실에서는 객석에 앉은 유가족 분들의 등이 보였다. 눈물이 울렁였다. 이런 저런 핑계로 광화문 광장을, 세월호 천막을 빠르게 지나왔던 날들이 떠올랐다. 안 그래도 팍팍한 살이에 마음쓰기 싫어 규익처럼 고개를 돌려버렸으니까.
'내 아이야, 내가 가장 고통스러운 게 뭔지 아니? 가장 고통스러운 건 그건 88일이 지났는데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알지 못하는 거란다.'
대사가, 대본이 몸에 새겨져 있을 유가족분들이 앉아계신 공연장. 그 날은 무대와 관객석이 따로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무대는 관객석으로 넓어져 관객을 무대로 데려왔고 배우와 밴드는 이들의 목소리를 노래했다. 무대는 더 넓어졌다. 제주 4.3항쟁, 광주민중항쟁, 대구 지하철참사,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태안 사설해병대 캠프사고,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태안화력발전소의 유족들이 무대로 모였다. 그들은 무릎을 맞대고 손을 잡았다. 노래는 다시 시작됐고 이어졌다. 공연의 끝에는 아직 가족과 만나지 못한 다섯명의 이름이 불리어졌다.
'권재근, 권혁규, 박영인, 양승진, 남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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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모두에게 배우는 PEACE 페다고지 평화교육(이대훈 저)’에서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뒤집는다. ‘낯선 만큼 보인다. 놀란만큼 보인다, 조용할 때 더 크게 들린다, 눈을 감으면 보인다.’고 말한다. 실상 낯설어짐은 매우 큰 배움이라면서. 낯선 기계가 가득한 오퍼레이터실에서 긴장한 채 대본을 따라가고 확장된 무대의 기운을 감각한 시간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예상대로 마음은 힘들었지만 그저 힘들지만은 않았다. 무언가를 알게 된 거 같다. 기억과 추모와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행위는 모두 다르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하면 된다는 걸. 모른 채 지나온 자신에 대한 찜찜함이나 죄책감을 느끼기보다 이제라도 행위하는데 힘을 쓰는 게 낫다는 걸.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이들이 있고,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말자는 걸.
세월호 6주기를 맞는 오늘, 가득했던 무대를 보며 받은 기운으로 내가 매니저로서 가꾸고 있는, 피스모모의 또 다른 공간인 카페 트랜스의 공간을 조금 바꿔두었다. 오늘은 곧 지날 것이고 이 공간을 지나는 이들의 일상도 이어지겠지만, 이 기운이 어디 사는 누구와 만나 이어질지는 또 모를 일이다. 딸기를 먹다 다시 작은 누나를 마주하게 된 규익처럼. 낯선 세계로 자신을 초대해 달라던 규익은 작은 누나와 어디로 갔을지 궁금하다. 다음엔 어떤 낯선 곳으로 내 발걸음이 향할지도 역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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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에게>극을 올려온 극단 ‘종이로 만든 배’는 2015년부터 매 해 이 공연을 올려왔다. 유튜브 채널, ‘2020 세월호: 극장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바로가기 : http://bitly.kr/S1DME4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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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모모가 운영하는 카페 트랜스의 공간은 인스타그램(@trans_614)에서 볼 수 있어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해 카페 트랜스에 설치한 노란색 머무름은 4월 동안 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