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모모 – 사무국을 떠나며 남기는 쪽글
/ 김주원
1.
흘러가는 시간을 섬세하게 기록하고 촘촘히 돌아보지 않는다면 우리의 일상은 꽤나 반복적이고 비슷해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떤 하루는 평범한 과거가 되어 흩어지지만 나에게 2016년 1월 29일은 드물게도 그날의 공기까지 또렷이 기억하는 특별한 하루로 남아있다. 다정하고 따스한 모모를 처음 만난 날이다. 당시에는 조금 멀고 낯설게 느껴졌던 불광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가족들의 시간을 담은 다큐멘터리 <나쁜나라>의 공동체 상영회가 열렸다. 모모를 만나기 전 직장에서 알게 된 어떤 이는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면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며 내게 주의를 주기도 했다. 겨울밤 불광의 작은 극장 안에는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 힘주어 약속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새로운 한 해를 여는 소중한 만남을 시작으로 나는 모모의 문을 열었고 모모는 나의 마음을 열고 들어왔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내 삶과 주변에는 분명 크고 작은 변화가 만들어졌지만 동시에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들도 있다.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걱정했던 그 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대체 무엇을 어떤 이유로 조심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는지 물어보고 싶다.
2.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평화학을 중심으로 공부와 일을 이어가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학교에서는 평화 활동을 함께하기 위해 청년 동아리를 새롭게 만들었고 어느 해는 이집트에서 현지 NGO의 인턴으로 여름방학을 보내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관심 가졌던 인권 단체의 회원이 되어 여러 모임과 캠페인에 활발히 참여했다. 주어진 자리와 시기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 쌓아가다 보니 어느덧 모모에 닿아 있었다. 피스모모가 진행하는 워크숍 프로그램 중에는 '손님 모셔오기'라는 이름의 활동이 있다. 모두가 얼굴을 볼 수 있게 동그랗게 둘러앉아 음악에 맞춰 서로를 초대하는 활동이다. 음악이 끝나면 환대의 경험을 되짚어보고 빈자리를 알아차리는 감수성에 대해 질문을 나눈다. 배움을 시작하기에 앞서 진행하는 간단한 열기 활동이지만 모모 워크숍에 직접 참여하여 손님이 되었던 첫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맞은 편에 있던 누군가 내 손을 잡아 원 안으로 초대해주었을 때 몸이 가볍게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반짝이는 배움과 설렘이 따라왔다. 때로는 나의 자리를 충분히 차지하고도 남의 의자까지 빼앗아야만 우월하고 성공한 인생이라고 평가되는 이 사회에서, 곁을 내어주고 돌아볼 시간을 확보하려는 공동체를 만나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3.
피스모모 사무국에서의 4년차 활동을 닫으며 불확실하고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뜨겁게 꿈꾸던 일을 멋진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고 깊이 있는 시간이었다. 모모 다음의 자리는 또 다른 시민사회 단체일지 아니면 전혀 다른 분야의 영리 회사가 될지, 혹은 그사이 어딘가에 걸쳐있는 조직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와 투쟁을 기억하기 위한 129번째 노동절을 맞아 일과 직업의 의미, 그리고 일하는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최근에 살펴 본 모 기업의 지원서 양식은 지원자가 어떤 복무제도를 이행했는지, 만약 병역 면제 대상자라면 그 사유는 무엇인지 매우 상세하게 묻고 있었다. 군사주의를 넘어서는 평화/교육 활동을 해왔지만 한 발짝만 넘어도 군대에서의 경험은 당연한 책임이자 회사가 그 경험을 소상히 물어도 괜찮은 사회를 마주한다. 단지 군 복무에 대한 잣대 뿐만 아니라 기업 내 군대 문화나 위계질서, 학벌주의, 성평등 관점의 부재와 같은 문제 역시 생생한 현실이다. 물론 그에 맞서 더 나은 조직 문화를 만들려는 반가운 시도와 움직임도 꾸준히 나타난다. 다만 거대하고 오래된 구조에 균열을 내고 뒤흔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끈기가 필요해보인다.
4.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평화교육을 만나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유한 존재로 오롯이 존중받는 일터와 배움의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열정적이고 섬세한 동료들과 많이 웃고 때로는 함께 울며 서로를 가득 채워나갔다. 모모를 떠올리면 물리학자 김상욱님의 책 속 “존재의 떨림은 서로의 울림이 된다”는 문장이 마음에 맴돈다. 모모가 남긴 것들을 안고 새롭게 그려 나갈 앞으로의 일상과 일터를 상상해본다. 이제 모모와의 관계를 전환하면서 사무국 바깥에서 피스모모를 든든하게 응원하려고 한다. 사랑하는 동료들과 모모의 벗들께 헤어짐의 의미가 아닌 애정과 안부를 담은 안녕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