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날의 불편한 진실
글: 가연
“엄마, 나 어린이날에 뭐 사줄꺼야?”
“어린이 날은 어린이랑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만든 날이지 선물 사주는 날은 아니거든?!”
가족 구성원 중 과반수(5인 가족 중 3인이 어린이, 의사표현 가능한 나이의 어린이는 2명)가 손꼽아 기다려 온 어린이 날이 밝았다. 아이들은 몇 일 전 아니 몇 주 전부터 '어린이날'에 받을 선물을 고르느라 부산스러웠다. “엄마, 나 어린이날에 뭐 사줄꺼야?”
아니, 누가 사준다고 했던가? 언제부터 어린이 날이 선물사주는 날이 되었지? 하는 의문에,
“어린이 날은 어린이랑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만든 날이지 선물 사주는 날은 아니거든?!” 하고 받아쳤다.
선물을 사주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지만, 당연히 받아야 할 것처럼 구는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당일 아침, 결국은 어린이들의 기쁨을 위해 무언가를 사고자 집을 나섰다. '사주지 않겠다'는 결정에 정당한 이유도 없을 뿐더러, 아이들이 선물을 받고 기쁘게 하루를 보내준다면 그것 또한 부모의 기쁨이리라. (서정적인 의미에서가 아닌 현실적인 의미에서 이것은 진정 필연적인 선택일 것이다. 아이들이 떼쓰지 않고, 집중해서 자기네들끼리 노는 상황이야말로 부모에게는 최고의 평화다.)
지척에 있는 대형 쇼핑몰 3층, 늘 지나치기만 하던 장난감 코너가 오늘의 목적지다. 그런데, 멀리서 봐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긴 줄이 쇼핑몰을 가로질러 늘어서있다. 무슨 행사라도 하는 것인가 들여다 봤더니 계산을 하려고 줄을 서있었다. 이렇게까지 '사야'하나? 소비에 목을 매는 나 그리고 우리 모습에 진절머리가 났다.
코로나19로 우리들의 일상이, 특히 아이들의 일상이 크게 제한되었던 지난 넉달. 억눌렸던 소비 심리가 어린이 날을 빌미로 터져나온 듯 했다. 모두 장난감 한 상자씩 들쳐 안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고자 하는 이 선물들은 과연 어떤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가?
불편1. 소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소비
코로나 시대에 로맨스를 꿈꾸는 사람들은 특권층이라는 말이 돈다. 코로나19로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계급이 나뉜다는 말이다. 장난감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 중에 코로나19로 직장을 잃거나 가계에 타격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린이 날 선물로 '보복 소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처절함을 밟고 서있다. 소비가 재개되어야 모두의 생계가 지금 보다는 나아질 것이지만, 과열된 소비는 나와 내 가족의 즐거움만 고려하는 개인주의적 소비문화로 귀결된다.
개인이 감당할 만한 소비를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싶지만, 코로나19로 밝혀진 지역 단위 생활권의 소중함, 공동체 케어의 필요성, 상상해보지 못한 삶들의 연결점을 보면 나의 즐거움이 다른 이의 고통의 값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불편2. 플라스틱 포장을 사니 장난감이 따라왔네?
어린이 장난감은 포장을 사니 장난감이 따라왔다고 생각될 정도로 포장이 과하다. 아이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만큼 멋지게, 크게 포장해 놓은 것인데, 그 재질 또한 단단한 플라스틱이나 비닐 코팅이 된 종이 박스 등이 많아서 분리배출을 한다해도 재활용이 될까 의문이다.
더 이상 쓰레기를 매립할 곳이 없고, 2050년에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닷속 물고기 보다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4년 전에 나왔다(2016년 세계경제포럼 보고서,”2050년 바다에는 플라스틱이 물고기보다 많아”). 2050년이라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창 인생의 전성기를 누릴 시기인데, 과연 그 때까지 지구가 버틸 수 있을까?
쓰레기 대란은 이미 예고되었다. 어딘가 쌓여가는 쓰레기가 눈 앞에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잠시 눈 감을 수 있겠지만, 플라스틱 포장에 싸인 장난감을 선물하는 것이 미래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봐야 한다.
불편 3. 사서 주는 비싼 선물만 가치있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주면서 늘 하는 소리가 있다. “오래 갖고 놀아야돼!”
사실 장난감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장난감이 못 쓰게 된다는 말이 아니다. 길면 2주, 짧으면 3일, 아이들이 새로운 장난감에 집중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가끔 중고 마켓에 올라오는 장난감들을 보면 하나 같이 비슷한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이 잘 갖고 놀지 않아서…”
그런데도 왜 매번 새로운 장난감을 사줘야 할까? 어린이 날, 크리스마스, 생일 등등 특별한 날에는 ‘사야’하는 것이 당연해 졌다. 신기한 현상은 한 번 사주면 영원히 행복할 것 처럼 새로운 장난감에 목매던 아이들이, 몇 일만 지나면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장난감 대신 좀 더 가치있는 선물을 해주면 안되는 걸까? 함께 보내는 시간, 맛있는 요리, 혹은 마음 담아 쓴 편지라든지, 엄마 아빠가 어릴 때 사용했던 장난감이라던지. 내 상상력이 고루해보일 수 있지만, 포인트는 큰 돈을 주고 사는 선물만 가치있게 생각하는 행태에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정도는 되야 선물이지’ 혹은 ‘그래! 어린이 날이니까 비싸지만 이 정도는 사줘야지!’ 등의 마음을 힘들지만, 조금 내려놓아도 좋지 않을까.
현실은 나도 다르지 않다. 어린이날의 불편한 진실을 셋이나 짚어내고야 말았지만, 이미 소비는 끝난 뒤. 이 글은 소비 후에 밀려오는 불편감을 상쇄시키려는 작은 몸짓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덜 더러운 환경, 삶의 가치를 아는 소비 습관을 물려줄 수 있을까. 플라스틱 컵, 샴푸통 하나라도 줄이려고 노력했건만, 어린이날 선물에 딸려 온 플라스틱은 그 동안의 내 노력을 비웃는 듯 거대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