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가지
작성일 2020년 4월 9일
아영(피스모모 대표)이 피스모모 홈페이지에 안보와 관련된 글을 올리면서 안보 이야기가 나오는 글은 어느 때보다도 “좋아요” 클릭 수가 급감한다고 쓴 글을 읽으면서 아마도 몇몇 사람은 안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이 논의가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떠한가? 나 또한 누군가와 안보 이야기를 하게 되는 순간 매우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데, 오랫동안 한국사회 안에서 안보에 관해서는 내가 주체가 아닌 국가가 중심이 되어서 가르쳐왔기에 안보는 누군가와 논할 수 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습관처럼 지키고 수행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분단의 현실을 안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안보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껴지기에 안보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이 군사적 안보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안보를 논하는 순간 전쟁을 용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편함도 그 자리를 회피하도록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안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냉전체제시대를 걸쳐서 나온 군사적 안보는 국가가 힘을 가지고 국경을 지키는 것으로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9.11테러와 같은 상황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국가분쟁이 많이 사라졌지만 내란, 인종분규 등의 문제를 겪으면서 군사안보가 아닌 인간안보에 대한 논의가 부각되었다고 한다. 초반에 논의 되어진 인간의 안보 범위에는 경제안보(빈곤으로부터의 자유), 식량안보(충분한 식량 확보), 건강안보(질병으로부터 보호), 환경안보(환경오염, 자원고갈로부터 보호), 개인 안보(고문, 전쟁, 강도 등 개인의 신체 보호), 공동체 안보(전통문화, 종족보호), 정치적 안보(정치적 탄압으로부터 보호) 등 인간으로부터 관심을 가지고 출발했지만(전웅, 국가안보와 인간안보, 2004년), 지금은 인간만의 안보가 아니라 생태계를 포함한 모든 것의 안보가 되어야 함을 코로나 19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2020년 모든 세계는 코로나의 상황으로 건강의 안전문제만이 아니라 식량의 안전문제, 개인의 안전문제, 공동체의 안전문제, 경제의 안전문제, 환경의 안보문제 등 수많은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국경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봉쇄하면서까지 자국의 안보를 지키려고 했지만, 어느 곳도 안전한 장소가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 안보는 우리 모두의 일상과 연결되어져 있기에 우리 모두의 안보를 논하는 자리가 낯설고 불편하다고 회피하거나 국가나 전문가에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주체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모두의 안전을 논의해야만 할 것이다. 안보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 위해서, 평화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있는지 끊임없이 찾아야만 한다.
4월이 오면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에 올해는 코로나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의도 윤중로에는 사람들이 북적인다고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이 벚꽃을 베어버리고 싶을 만큼 벚꽃의 흩날림이 고통의 아픔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2020년 4월 16일은 세월호 6주기이면서 세월호 참사의 공소시효가 1년 남긴, 어쩌면 진상규명은 사라져버릴 수도 있기에 더 두려움과 아픔이 될 수도 있는 날이다. 올해도 피스모모는 대통령에게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에 대한 액션키트를 보내자고 글을 올렸지만 3주기 때와 다르게 저조한 참여로 인해서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지금 내 앞에 닥친 어려움과 위험으로 인해서 다른 누군가의 안전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피스모모는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전쟁이나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은 소극적 평화라고 한다면 존재하는 모두의 안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극적 평화가 이루어져야 함을 배움의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왔다. 우리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 우리에서 배제된 누군가의 폭력의 알아차리지 못하고 눈감아 버린다면 모두가 안전한 사회가 가능할 수 있을까? 적극적 평화를 만드는 힘은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어떤 존재는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배제되어 폭력 앞에 놓여있는 것을 어느 누군가가 알아차릴 수 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안보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 위해서, 평화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나-우리를 넘어서서 다양한 존재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연대함으로 나아갈 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