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로그] 피스보트에서 세월호 참사가, 제주 강정마을이 생각나던 날 by 하늬

 

차를 타고 항구로 다가가면서 어두컴컴한 회색 선박들 사이로 슬며시 모습을 보이던 반짝이는 하얀색 피스보트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함께 피스보트를 타러 가던 분들 역시 하얗고 알록달록한 피스보트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피스보트를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는데요. 그런데 막상 가까이서 배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자니, 이 피스보트만큼이나 수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었을 세월호와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가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피스보트는 이렇게 무던히 바다 위에 떠 있는데, 476명을 태웠던 세월호는 현재 녹이 슬고 분해되어 그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고 세월호에 탔던 304명은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지요. 마음이 먹먹해져 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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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되는 아시아 유럽 민중 포럼(AEPF, Asia Europe People’s Forum)에서 개최하는 아시아 유럽의 평화와 안보 워크숍(Peace and Security in Asia and Europe)에 다녀왔어요. 피스모모가 이 워크숍에 초대받았고, 제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다룬 주제와 토론은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EM, Asia-Europe Meeting)에서 주요하게 다룰 어젠다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준다고 해요. 이 워크숍은 베트남 하롱 베이 근처에서 진행되었는데요, 워크숍의 마지막 일정이 베트남 까이 란(Cai Lan) 지역에 도착한 피스보트를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4월 15일에 베트남에 도착한 피스보트는 16일까지 머물다 다시 중국으로 향하는 일정이었어요. 그렇게 저는 4월 16일, 피스보트에 올라타게 되었습니다.

 

 

피스보트에 올라탄 우리는 스태프들의 안내를 받으며 배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배 안을 둘러보다 마지막으로 모두 함께 배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날은 파도가 꽤 잔잔한 날이었고, 안개가 바다 위로 자욱하게 가라앉은 날이었어요. 배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컸던 배는 상대적으로 외소하게 느껴졌습니다. 감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4년 전 그날의 바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배 위에서 바라보는 고요하고 끝이 없어 보이는 바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무겁고 또 무서웠습니다.

 

제가 피스보트에 탑승해 있는 시각에 한국에서는 세월호 4주기 합동 영결식이 진행되었어요. 피스모모의 다른 분들은 모두 안산으로 이동해 합동 영결식에 참여해 그 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이후에 말을 전해 들으니, 진행되는 동안 바람이 꽤 많이 불었다고 해요. 함께 하지 못해 많이 아쉬운 날이었지만, 워크숍을 참여한 분들과 세월호 참사 및 기억의 의미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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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척의 선박 사이로 정박해 있는 피스보트를 멀리서 바라보면서, 제주 강정마을에 흉물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해군기지가 떠올랐습니다. 주민들 몰래 들어오는 핵추진 잠수함이 아니라 피스보트가 들어 왔다면 어땠을까 아주 짧게 생각했었어요.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애초에 생기지 않았어야할 해군기지가 사라지는 것이지만요. 다른 이유로 착잡해지는 순간이었어요.

 

피스보트를 보며 여러 생각을 하던 중, 옆에 있던 스페인 활동가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2015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다국적 연합훈련(Trident Juncture 2015)이 진행되었는데 최근 십년 동안 진행되었던 연합훈련 중 그 최대 규모였다고 합니다. 그 연합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스페인 해군은 잠수함을 바르셀로나 항구에 정박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와 동일한 날에 피스보트 역시 바르셀로나로 도착했다고 합니다. 여러 척의 군함들 사이 오롯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피스보트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 아이러니하면서도 웃픈 상황을 상상해 보았어요. 피스보트에 탑승해 있던 참여자들이 그 주변을 돌아다닐 모습도 떠올려보고 그 앞에서 그들만의 액션을 펼치는 것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었더라면 꽤 흥분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잠수함들 사이에서 '존재감 뿜뿜'내고 있었을 피스보트 사진을 폭풍검색 했는데, 찾지 못했어요. 아쉬운 마음에 다른 피스보트 사진을 나누어요. 또르르…)

 

 

제가 참여한 워크숍의 주제가 평화와 안보였기 때문에 피스보트를 타러 오기 전, 아시아와 유럽 지역의 핵무기, 무기로 인한 대량 파괴, 군비경쟁 등에 시민사회가 어떻게 대응하고 아시와와 유럽 지역의 활동가들의 국제연대 강화의 필요성에 대해 각국이 처해있는 상황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지혜를 모으는 작업을 가졌습니다. 그 중 동북아시아 지역의 무기경쟁과 한반도 비핵화 이슈는 꼭 다루어져야 하는 문제였어요. 제주도에 해군기지 건설이 논의된 배경과 주민들의 반대에도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된 것이야말로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및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이 낳은 산물이기도 하지요. 대부분의 발제는 주제와 맞닿은 것이어서 새롭게 알게 된 지점도 있었고, 평화 활동을 하면서 국내 연대뿐만 아니라 국제연대의 중요성을 한번 더 인식하게 되어 흥미로운 지점들도 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 개념의 평화와 안보가 주제의 대부분에서 논의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어요. 저는 이 지점에 대해 참여자들과 의견을 나누었고 평화감수성에 기반한 평화교육, 피스빌딩, 지속적인 평화 문화를 구축하는 등 우리사회 안에 스며든 안보화와 군사화된 가치를 알아차리고 이에 저항하는 것 역시 중요하는다는 점을 덧붙였습니다. 이런 필요성에 많은 평화 활동가들이 동의해주셨고 특히 군사기지가 있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그 지역 안에 확산되고 있는 군사화 문제를 지적해 주셨어요.

 

사실 이 워크숍을 오기 전에는 막막한 마음이 먼저였어요. 아시아와 유럽이란 지역도 너무 광활한데 ‘평화와 안보’를 다루는 워크숍이라니요! 그 주제도 어마어마하게 넓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서, 어떤 이야기를 과연 나눌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역시나 잘 인지하지 못했던 상황도 있었지만 워크숍에 참여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의 경향은 비슷한 맥락이 있다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치열해지는 군비경쟁, 군사주의 및 안보주의의 지역화 및 세계화, 정치적 우파의 강세, 종교, 인종, 성정체성 등 타인에 대한 혐오 등은 각 지역이 그 수준은 다르지만 충분히 공감하는 문제들이었습니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일상에 스며들면서 시간의 부재는 폭력을 생산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음은 혐오를 낳고 ‘불안’을 조장하는 안보는 군사화가 더 만연하게 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요. 이런 상황을 공유하다 보니, 각 지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평화 활동을 전개하는 참여자들의 존재가 매우 반짝이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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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이 있는 그 주말에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 열릴 예정이었어요. 워크숍에 참여한 베트남 참여자들에게 한국에서 시민평화협정이 열리게 되었다고 소식을 전하니 순간 놀라면서도 기뻐하셨어요. 한국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반갑다고 하시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괜스레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시민평화법정이 이제서라도 열리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어요. 시민평화법정이 열릴 수 있도록 긴 시간 노력해 주신 모든 분들과 쉽지 않은 자리 어렵게 참석해 주신 두 분의 응우옌티탄님께 감사함을 다시 한 번 더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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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에 다녀 왔을 때와 지금(4월 29일)은 한반도의 상황이 꽤 많이 다르지요! 고백하건데 이 글을 시작할 때는 남북정상회담 전이었고 지금은 이후라 어떻게 글을 마쳐야할지 적어 내려가면서도 고민이 되었어요. 한반도의 비핵화, 정전협정체결 65주년인 올해 기적과 같이 울려 퍼질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과 같은 파격적인 남북의 행보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를 뒤흔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지난 금요일은 생중계와 뉴스를 통해 접하는 소식을 들으며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믿기지 않다가도 울컥하는 순간의 반복이었어요.

 

그런데 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남북정상회담 개최, 종전선언 한다고 해서 내 삶이 뭐가 달라지냐고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누군가는 옥류관에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고 서울에서 북한을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가는 것이 기분 좋은 상상이 될 수 있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또 아닐 테니까요. 어떤 누군가에게는 남북정상회담과 종전선언, 한반도의 비핵화가 내 삶에서 무엇을 변화시켜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상상력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특히 군비경쟁이 아닌 군사적 갈등의 해소가 어떻게 우리 사회를 덜 폭력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로 전환해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지, 분단이 고착화시킨 일상의 군사주의를 탈탈 털어 모두 들어내 버리고 탈군사주의, 탈분단이 다채롭게 작동되는 것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찰하는 것이 이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두근거리네요 🙂 

 

기분 좋은 상상의 시작이 제가 참여했던 워크숍의 활동과도 연결된다고 느꼈어요.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의 비핵화가 실현되기 위해, ‘안보’를 이유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의 행태를 알아차리고 이에 연대하여 저항하는 것을 더 촘촘하게 서로 연결되어 해보자는 자리이기도 하니까요. 올 가을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한번 더 같은 워크숍이 열린다고 해요. 한반도에 불어온 평화의 바람이 더 널리 퍼져 좀더 신나고 짜릿한 주제들로 구성된 워크숍이 진행되지 않을까요옷! 

 

 

이 글은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되었던 아시아 유럽 민중 포럼(AEPF, Asia Europe People’s Forum)에서 개최하는 아시아 유럽의 평화와 안보 워크숍(Peace and Security in Asia and Europe)에 참여하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이런저런 생각이 담겨 있답니다. 저는 피스모모 연구기획팀장으로 워크숍에 참여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