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20 온라인 모모평화대학 초봄학기
– 이대훈과 함께하는 실천평화학 (2020/3/18~27)
(프로그램 상세보기 : www.peacemomo.org/boardPost/101739/99)
글 / 돌돌
‘따스한 조명, 곳곳에 놓인 꽃과 화분들, 이름을 불러주고 꽈악 온기로 안아주는 사람들, 참여자들이 더욱 풍성하게 채우는 간식 테이블, 매번 반 줄을 가져왔다가 결국 한 줄을 더 가져와 먹던 김밥 – 이런 것들이 없는 피스모모에서의 만남이 여전히 피스모모스러울 수 있을까?’
봄느낌 물씬 나는 포스터를 보고도, '혼자서는 어쩐지 잘 안 되니까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까진 아니어도 종종 말해왔던 배움의 기회가 찾아왔는데도 막상 신청하기를 주저했던 것은, 온라인 만남에 대한 낯설고 불편한 마음 때문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굳이 굳이 고백하자면 지난 평화대학에 참여했을 때 읽을거리를 성실히 읽지 않고 복습도 열심히 안 했던 나 자신에 대한 불신과 벌을 주려는 마음도 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걸 말하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강의 첫 회차에 밝혀(?)졌듯 낯섦과 불편함은 평화로 가는 길의 필수코스로서 외면하기보다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러한 마음을 빌미로 참여를 결정하게 되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상당히 위협적이고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기라 줌(zoom)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참여자가 온라인 – 일종의 화상채팅으로 만나는 상황이었다. 상태가 좋지 않은 노트북으로 어수선하게 '회의실'에 접속했을 때 보이는 수많은 얼굴들. 어색한 무표정을 한 얼굴, 활짝 웃고 있는 얼굴, 회색 이모지 얼굴, 내 얼굴, 아는 얼굴, 모르는 얼굴 할 것 없이 모두가 너무 반갑고 새로웠다. 마치 우주선에서 지구에 있는 친구들과 화상통화하는 기분이 이럴 것 같았다. 다른 질감일 터이지만 잘 보이라고 손을 더 크게 흔들고 마이크를 켜서 안부를 묻고 강의 도중 떠오르는 것은 실시간 채팅으로 공유하고, 소그룹으로 마주하면 웃음이 먼저 나는, 따뜻한 환대와 만남 자체의 설렘은 그대로였다.
헤어질 때에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그간 오프라인 모임 참여가 어려웠던 분들까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특별했고 그렇게 해서 1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평화에 대해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소중한 시간이었다. 온기는 스크린 너머로 스피커로 충분히 느껴지고 풍성한 간식은 내가 집 근처에서 사먹으면 돼.
‘이대훈과 함께하는 실천평화학’은 직접적/구조적+문화적 폭력, 소극적/적극적 평화 등 평화학의 기본 개념들을 살펴보고(1강), '분단'에서 파생되는 안보 프레임, 적아 이분법, 군사주의 등의 폭력, 그리고 이것들이 국제관계, 국가체제적인 것에서부터 우리 일상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들여다보고(2-3강), 그것을 벗어나는 사유와 실천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해보는(4강)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평화 100% 완전 달성! 같은 것이 존재하기 힘들다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폭력을 드러내고 들어낸 자리에 더욱더 많은, 진한, 넓은, 깊은 평화의 요소를 만들고 채워가는 불편과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과정, 수많은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유동적이고 진행형인 평화. 그 안에서 '나' 같은 개인 또한 구조에 포섭된 수동적이고 관습만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기존질서에 질문하고 저항하고 구조를 바꾸어나가는 적극적 행위자가 될 필요가 있다는/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대훈은 Becoming이라는 표현을 썼다. ‘인간은 세계로부터 조건지워지지만 결정되지는 않는다’ 라고 한 파울루 프레이리의 말과 함께.
남한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 문화적 폭력을 분단상황과 그에 따른 전통적 안보 논리가 작동해온 결과로 읽어내는 것은 쾌감과 당혹감을 함께 주는 일이었다. 학교에서 교복입고 일렬로 줄을 서는 것, ‘오빠’들이 자꾸 지켜주고 보호해주겠다고 하는 것 – 요즘은 그마저도 아닌 것 같은데 어느쪽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일, 사상(?)이 의심되는 이에게 ‘ㅇㅇㅇ 개새끼 해봐’ 하는 색출, 전쟁의 잔혹함, 가해사실은 가린 채로 ‘우리’를 드높이는 거대한 기념관 등등. 미처 폭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거나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폭력을 정당화하는 장소, 기제들…….
‘실천’에 초점을 둔 후반부는 평화(학)는(은) 불편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서 쭈욱 들여다본 이 너무나도 촘촘하게 일상에 스며든 폭력들과 전쟁의 문화에 다소 좌절이나 무력감, 두려움, 한편으로는 실천평화학에 몸을 실은 사람들답게 '그래서 무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평화의 기운이 차오름을 느꼈을 우리들에게 힘을 후 불어넣어주는 듯한 시간이었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하나의 평화, 하나의 안전을 여럿의 평화, 모두의 안전인 듯 이야기하는 언설들, 사랑과 평화, 우정, 믿음, 낙관을 말하는 것을 비현실적이라 치부하고 폭력과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라 말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현실적이고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사유와 언어의 전환. 물론 이것이 내 안에서 단박에 일어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 기만적인 평화의 논리가 뿌리내리고 있는 곳이 어딘지, 거기서 어떤 존재나 상황 들이 배제되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만으로 좋은 시작이고 전환점이다. 사유와 언어 외의 실천방법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는데 그 중 내가 평화교육진행자로서 더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몇 가지를 여기 공유하며 마무리할까 한다.
- 전쟁미화를 거부한다. / 군사주의를 거부한다. / 공포 선동을 거부한다.
- 발언한다. 스피커가 된다. / 평화의 스토리텔링을 한다. / 여성에게 힘을 실어준다. / 갈등전환을 이용한다.
- 고정관념 없이 만난다. 다양성을 권장한다 / 관계-모임을 민주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