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23 모모평화대학 초여름학기 – 몬순, 자기모순, 그 너머 어딘가 기필코 평화 by 졔졔

 

 

얼마 전 '몬순'이라는 연극을 봤습니다. 연극에서 몬순은 열대 계절풍이 부는 지역의 기후를 뜻하기도 하지만 살상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의 회사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작중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 '타트'에서 온 유학생 '네이지'와 홈스테이를 제공하는 집 주인 '차미'가 나옵니다. 서로 잘 지내던 어느 날, '네이지'는 '타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무기를 공급하는 회사의 공급 담당이 '차미'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에 '네이지'는 다시 '타트'로 돌아가려 하고, '차미'는 어떻게 해야 '네이지'가 '차미'를 떠나지 않을 거냐고,회사를 관두면 괜찮냐고 묻습니다. '네이지'가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당신이 서 있는 자리도 어려운 걸 안다고 답하면서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을 하려 한다며 '차미'를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을 통해 전쟁이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각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늘 하던 고민이 더 깊어졌습니다.

 

동시에 해당 작품에서 무기 기업의 이름이 '몬순'이었다는 것도 제 개인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우산으로는 막을 수 없는 언제 어디서 어떤 방향에서 쏟아지는지 모르게 모두를 흠뻑 적시는 국지성 호우인몬순. 몬순처럼 전쟁도 우리 삶에 어떤 방향으로건 직간접적으로 생채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서 스스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 포로로 끌려가는 악몽에 잠이 깬 그 밤처럼, 해외 출장에 가 있는 동안 대피 문자를 받은 친구들의 카톡 소리를 듣고 깨 집에 남은 고양이들의 안위에 뒤척이던 새벽처럼요. 또,몬순 기후는 기후 위기로 인해 점점 그 영향권을 넓혀가고 있고 그 변덕스러움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후 위기, 기후재난, 기후 위기와 기후재난처럼 밀어닥치는 전쟁, 이권, 먹고사니즘, 성장 신화와 자본주의, 코 앞에 닥친 위험을 경고하는 소리에 귀 막고 일신의 안위를 추구하는 사람들, 비인간 동물에 대한 산업화된 착취… 몬순이라는 단어는 제가 이들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게 도와준 작품이었습니다.

 

짐짓 평화와 기후에 진심인 척, 저는 그렇게 살지 않는 척,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저도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비건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동시에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든 착취의 흔적들을 모두 벗어내고 지내긴 역부족이란 생각으로 타협하는 결정들을 하는 때가 빈번합니다. 전쟁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과 기업 집단을 이루는 계열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내가 직접 전쟁 무기를 생산하는 건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자위하며 삽니다. 실은 자본주의 사회의 밑바닥으로 내몰리는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 뿐이라는, '몬순'이 얼마나 인류에 이로운 많은 다른 사업을 하는지는 아냐고 외치던 '차미'의 입장을 보며 눈물만 뚝뚝 흘리면서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을 애써 무시하면서요.

 

그러던 차에 피스모모에서 '기후 위기와 군사활동, 그 드러나지 않은 관계'라는 부제를 단 모모평화대학이열린다기에 가지고 있던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 이번 모모평화대학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미리 세심하게 챙겨주신 자료집을 통해 기후 위기를 논하면서 전시 상황의 언어를 통해 심각함을 전하고 있던 단어의 핍진함이나, 안보라는 이름으로 성역화되어 기후 위기의 주범 중 하나지만 제대로 호명되지 않던 군사활동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기후 위기에 대해서 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평화의 렌즈로 바라보는 기후 위기는 제게 또 다른 발견과 문제의식을 안겨 주었습니다. 현장에 함께 모이기도 전에 알게 된 것들이 많아 어떤 것들을 더 배울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실마리를 좀 더 얻을 수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무악재에 자리 잡은 피스모모 사무실로 가는 길이 설레었습니다.

 

프라이드 무지개색으로 '피스모모 웰컴'이라 창에 붙여진 건물에 들어서고, 비건 다과를 먹으며 배정받은 소그룹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연님의 발제로 모모평화대학이 시작했고, 뭉치님, 대훈님, 아영님이 차례대로 자료집에 있던 내용들을 발제했습니다. 텍스트로만 보던 내용들이 다시 한번 현장감을 가지고 전달되니, 방산 – 실은 살상/전쟁 – 산업의 그린 워싱이 얼마나 삐걱거리는 개념인지, 안보라는 말이 얼마나 허상이며 우리 모두 지키고 살리는 일의 주체가 될 수 있을지, 우리가 얼마나 거짓 평화에 중독되어 있는지 생생히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세 차례 정도 현장에 참여하신 다른 분들과 발제문에 대해 자유롭게 토의할 수 있는 시간도 있었습니다.사실 너무도 복잡한 이 문제에 속 시원한 답을 듣는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기에 무 자르듯 뚝 '이렇게 사셔야만해요!'라는 정답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같이 고민해 주는 사람들, 일상에서 할 수 있는 행동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일상이란 너무도 위태로워서 이 일상이 언제 깨질지 알 수 없기에 작은 실천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고, 직접 행동에 나와달라고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어쩔 수 없지!'가 아니라 '이래선 안 된다'고 말하는 얼굴이 오래 기억날 것 같습니다. 그 얼굴들 때문에 그나마 반보라도 더 나은 고민, 더 나은 실천을 할 수 있는 실마리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생활 속 숨은 군사 용어 쓰지 않기 (저는 전략투자팀에서 일하는데, 줄여서 전투팀이라고 불리고

있는데…이를 어떻게 대체해야 할지가 요즘 일상의 숙제입니다. 구글링을 해보아도 오히려 '평화를 위한 전략', '전략적 평화' 같은 말들이 나오더군요….), 안보/지킴/살림을 이야기할 때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것인지 생각할 때 '우리'의 범위에 더 넓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고민하기 (인간 동물 외 비인간 동물들을 함께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지), 평화를 여성화해서 순진하고 철없는 것으로 만드는 목소리에 평화를 더 크게 말하는 것으로 대답하기 같은 것들이요. 그리고 언젠가 너무 늦지 않게 피스모모의 직접행동에도 함께 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이 평화롭지 않은, 파괴하고 경쟁에서 이겨야만 하는 사회 속에서 이런 사회를 손가락질하는 것이 내 자신의 삶에 손가락질하는 일이 되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모모평화대학을 통해 만난 분들의 입을 통해 배운 것들을 조금 더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이 평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여전히 세상은 시끄럽고 전쟁은 격렬하며 우리는 지구를 파괴하고 있지만, 그래서는 '우리 모두 다 멸망해 버릴 수 있다'는 '극단적' 비관주의의 얼굴로,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작은 노력이 필요하고 이것이 평화를 가지고 오고야 말리라'는 극단적 낙천주의의 일상을 살아보려 합니다. 이 간극에 지칠 때 쯤, 다시 피스모모와 회원들의 얼굴을 보고 텔레파시를 보내며 긍정을 잊지 않으면서요.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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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평화대학은,

대학 밖의 대학, 대안 대학으로서의 모모평화대학은

평화를 함께 세우기 위한 실천적, 비판적 공부와 모색의 장으로

평화학과 평화교육학의 중요한 주제를 함께 고민하고 탐구합니다.

2023 모모평화대학 초여름학기는 지난 6월 17일에 진행되었어요.

가을학기는 영어로 진행되며, 10월 중 진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