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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평범한 월급쟁이 직장인이 ‘2023 서울 ADEX (이하 '아덱스')’에서 직접행동에 참여한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실은 좀 더 빨리 이야기 나눴으면 좋았을 텐데, 아덱스에 대해 생각하며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려두면 아득한 기분이 되곤 했습니다. 너무 많은 감정과 생각이 밀려들어왔었고,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다가, 그중에 어떤 것들을 나눌 수 있을까, 나누는 것이 가능하긴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은 어느 것이든 적어 내려가 봅니다.
많이들 아시는 바와 같이, 아덱스는 대한민국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국제 전시회로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울 에어쇼가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많은 일반 시민 참관객들도 '전시'와 에어'쇼'를 보기 위해 찾는 '행사'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덱스의 실상은 살상무기를 전시하고 위력을 과시하여 판매하는 전쟁 무기 거래의 장입니다. 얼마나 효과적이고 많이 죽일 수 있는지, 효율적으로 파괴하고 삶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를 자랑하는 폭력의 장입니다.
그래서 아덱스를 그냥 쇼와 행사로 볼 수 없는 시민사회단체와 개인들은 아덱스저항행동을 통해 전쟁 무기 판매상과 거래자들에게 살인을 멈추길 촉구하고, 아덱스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아덱스의 진짜 얼굴이 무엇인지 알리고, 전쟁을 멈추기 위한 평화를 강권하고자 직접행동을 준비하고 실행해왔습니다. 저는 피스모모의 <직접행동 트레이닝>을 통해 액숀모모로서 직접행동에 참여했고요.
지난 6월, 모모평화대학 <기후위기와 군사활동, 그 드러나지 않은 관계>에 참석한 저는, 답답함을 토로하다가 평화를 위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직장인이라 직접행동에는 참여가 어렵다고 말하면서요. 그 말을 끝까지 조용히 경청하던 피스모모 활동가 뭉치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연히, 살짝 얼굴을 굳히며 말했습니다.
“직장인 중에서 휴가 내고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직접행동에도 같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어쩔 수 없다던가 그럴 수 있다는 공감의 말로 제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처한 상황을 핑계 대기보다는 당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최선을 다해달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어려운 말을 정확하게 해준 뭉치가 좋아, 저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다음번에 기회가 생기면 뭉치의 초대에 응하겠다, 꼭 무언가같이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피스모모가 모집하는 <직접행동 트레이닝>에 참여를 신청해 2023년 서울 아덱스(ADEX) 퍼블릭 데이(이하 '아덱스')에서의 직접행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무기박람회에서 평화를 외치는 두려움보다
<직접행동 트레이닝>에 참여 신청을 하던 때는, DX KOREA 2022에서 직접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약식명령 후 1,7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평화활동가들이 정식 재판을 청구해 재판이 진행되던 시점이었습니다. (23년 11월 8일, 이들은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실은 그래서 한편으로 <직접행동 트레이닝>에 참여하며 걱정했습니다.
'평생 무기박람회 같은 곳을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 곳에 가서 전쟁 반대를 외치는 일을 한다니, 그것도 누군가에겐 이미 법정에 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한 번의 직접행동이 아니라 평일 법정을 오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올해 휴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물론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개인의 삶에 결코 작은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폭력, 내전, 학살이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을 가리지 않고 죽이고 있고, 가자 지구에 대한 무차별 폭격으로 아이들이 죽어가는 중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도 결코 작지 않은 고통이었기 때문에 <직접행동 트레이닝> 참여에 대한 마음을 굳혔습니다. 군비 경쟁과 팽배한 군사주의와 힘의 논리가 그 총구를 내게 겨누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에 한 선택이기도 했겠지요.
<직접행동 트레이닝>은 2주간의 간격을 두고 사전 트레이닝과 직접행동 실행으로 나누어 진행됐습니다.
사전 트레이닝에서는 피스모모 사무실에서 비폭력 직접행동의 정의와 종류, 직접행동 기획 시 고려 지점 등에 대한 배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후 <직접행동 트레이닝> 참여자와 피스모모의 활동가들로 구성된 피스모모의 직접행동 그룹인 '액숀모모'가 직접행동을 기획하고, 방식을 서로 조율하고, 세부 사항을 합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원도 시간도 없는 우리가, 불청객으로 언제든 쫓겨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비폭력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뭉치가 제게 했던 말처럼 일상적이지만 단연한 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관람객들이 다시 한 번 아덱스에서 본 것이 무기임을 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관람과 쇼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 죽이는 것, 학교를 무너뜨리는 것, 가족을 잃게 하는 것이며, 세상 곳곳에서의 죽음이 이 곳의 무기 때문임을 잠깐이라도 직시하길 바라며 직접행동 퍼포먼스를 준비했습니다. 더 자세한 기획이나 준비, 마무리는 피스모모의 활동가들이 많이 수고해 주셨고요.
단단한 굉음, 비난, 그사이 낸 균열에서 삐죽이 머리를 올리는 희망의 싹
전 날엔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늦은 잠을 청했고, 21일 아침 서울 아덱스가 진행 중인 서울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덱스 쪽의 삼엄한 시위 방해/통제 활동으로 실내에서 진행하려던 직접행동 퍼포먼스를 야외 전시장 밖, 서울공항 출입구에서 하게 되면서 우리가 하려는 것이 갑자기 얼마나 하찮고 작은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이른 아침 내린 비로 인한 쌀쌀한 공기와 궂은 날씨에도 관람객들이 전시장과 에어쇼를 향해 끝없이 줄을 늘어서 있었습니다. 탁 트인 넓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에어'쇼'와 끝도 없게 펼쳐진 하늘만큼, 전쟁과 폭력에 무감하게 만드는 전쟁 장사꾼들과 각국 정부, 군사주의의 거대함이압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늘엔 전투기가 뽐내듯 날고 있었고, 그때마다 가자 지구에서, 우크라이나에서 건물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사람을 죽일 때 내는 것과 닮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습니다. 죽음의 소리를 눈속임으로 가리는 연기가 형형색색으로 치장해 사람들 눈을 기만했고, 탄소가 쉴 새 없이 배출되었습니다. 그 모습에 관람객들은 연신 환호했습니다. 관람객들이 환호할 때마다 탄천의 크고 작은 새들은 소리에 놀라 홀로 또는 떼지어 하늘을 날았습니다. 생명은 각자의 것. 하늘은 새의 것. 함부로 빼앗을 수 없는 것. 함부로 뺏어선 안 되는 것. 전쟁과 힘의 논리가 귀한 것들을 너무 쉽게 뺏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멈출 수 없다는 생각에 처음엔 계속 눈물만 흘렀습니다. 직접행동에 함께한 피스모모의 다정한 이들이 처음엔 본인들도 그랬다며 같이 위로하고 도닥이지 않았다면, 직접행동 중에도 꼼꼼히 선크림 챙겨 바르는 귀여운 모습이 없었다면 아마 한참을 더 울고만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울음을 그치자 곧 준비한 퍼포먼스의 시간이 되었고, ‘액숀모모’는 각자 하늘을 날며 보여주는 멋진 쇼가 실제로 만드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얘기하는 티셔츠를 입고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를 조용히 걸었습니다. 그리고 다이인 퍼포먼스와 함께 티셔츠 위에 적힌 메시지를 순서대로 다 같이 소리내어 외쳤습니다.
'폭탄이 떨어진다'
'죽고 싶지 않다'
'죽이고 싶지 않다'
'목숨을 빼앗는다'
'학교가 무너진다'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다'
'살던 곳을 떠나야 한다'
각자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소리로 외쳤지만, 전투기의 굉음 속에서 우리 목소리는 너무 작았습니다. 소리쳐도 우리를 보는 사람은 기나긴 줄을 늘어서거나 전시장 안에 있을 사람들의 수에 비하면 적어도 너무 적었습니다. 절박하게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된다는 절망감이 고작 퍼포먼스를 하면서도 드는데, 실제로 떨어지는 폭탄을 맞거나 죽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절망감은 어떨지를 생각하니 감히 고통스러웠습니다.
'액숀모모'로서 준비한 퍼포먼스 이후에도 피스모모가 준비한 피켓으로 피케팅을 진행하면서 다시 한 번 마음이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조용히 피켓만 들고 있었을 뿐인데 조롱의 목적을 담아 사진과 영상을 찍는 이들, 귓전을 때리는 소리들.
“빨갱이들”
“나라를 북한에 갖다 바치잔 말이야?”
“꼭 어딜가나 저런 것들이 있어. 뭘 해도 반대할 새끼들”
“기술을 배우고 직업을 가져. 이렇게 살다 커서 뭐가 되려고 하냐?”
“간첩 아니야? 그냥 북으로 가서 살면 되겠네”
“엄마가 죽었다고? 패드립 치는데?”
“아이고 힘들게도 산다.”
“사람 같지 않은 것들.”
식민 지배를 경험한 피식민지이자, 분단국가에서 강력한 이분법적 이데올로기가 작용해 온 지정학적 위치에서, 압축된 경제성장으로 물신이 지배하게 된 신자유주의 하의 한국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생명과 삶을 얘기하는 것임에도 어떤 이들에겐 멸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들리는 듯 했습니다. 혹은 '어린', 순진한' 이상주의를 가진 계도해야 하는 대상/생각으로 보이거나 말입니다.
네, 결국 어떤 면에서는 이번 직접행동은 실패이며, 이것은 실패의 기록일지 모르겠습니다. 아덱스를 중단되게 하지도, 하늘을 나는 전투기를 막지도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이야기들도 귀에 들려왔습니다.
“마음이 불편해졌어.”
“엄마는 이 말에 동의해.”
“(아덱스저항행동이 준비한) 팸플릿 하나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전쟁하지 말라고 하나 보다.”
“그러네, 여기 다 무기네.”
공고한 군사주의의 현장에서 우리가 만든 약간의 틈, 그 사이에 싹을 틔우는 불편한 마음들. 할퀴는 여러 말보다 동의하고 처음으로 불편해하거나 우리 목소리가 닿았음을 느끼게 하는 말들로 인해, 저는 이번 직접행동이 평화로 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아덱스 때에도 현장에 있던 영철 역시 말했습니다. 지난 번엔 사람들이 거의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엔 비난이라도 관심을 보인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엔 직접행동에 함께한 '우리들'도 수가 많이 늘었다고.
아덱스를 관람하는 시민들의 불편한 마음에서 저는 희망을 봅니다. 아니, 그 전에 지난 직접행동에는 함께 하지 않았던 제가 이번 아덱스 직접행동에는 함께 했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봅니다. 굉음을 뚫고 작게 들린 목소리가 한 사람의 마음에 불편을 심을 수 있다면, 그 불편이 다른 한 사람에게 더 전달될 수 있다면, 핑계 대기보다는 직접행동의 자리에 함께 서는 이들이 한 명씩 늘어난다면, 있음으로 저항하고 계속 평화를 떠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가끔은 여전히 저조차도 믿기 어렵다 느껴지는 전쟁 없는 세상, 평화가 있는 세상,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세상이 올 거라고 믿길 결심합니다.
평화를 믿길 결심하기 때문에,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내 친구의 죽음을 직시하기'를 일상에서도 게을리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족의 행방을 알 수 없다.' 제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 써있던 말입니다. 지금도 저 말을 일하다 말고, 집을 향하다 말고 종종 욉니다.
가족의 행방을 알 수 없다.
가족의 행방을 알 수 없다.
그 거대한 고통을 짐작할 수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짐작해보려고, 나눠 질 수 없겠지만 나에게 조금은 나눠지길 바라면서요. 하루하루 잠깐의 직시가 저를 계속 직접행동의 장에 데려다 놓을 겁니다. 지난주 ‘이스라엘 가자지구 공격 규탄 2차 긴급행동’의 자리에 앉아 있던 날처럼요. 그리고 그 공간에 다른 이들을 또 불러 모을 겁니다. 긴급행동에 같이 갈 동행을 구하거나, 친구와 가족들에게 직접행동에 쓰일 신발을 모아달라고 요청하면서요. 뭉치가 저를 평화로 가는 길에 초대한 것처럼, 직접행동에 함께한 이들이 우는 저를 일으켜 세운 것처럼, 저도 그럴 겁니다.
세상은 바뀝니다. 평화로 가고 있습니다. 거대한 우주인 한 존재, 한 존재가 평화의 장으로 초대되고 있으니까요. 우리 공고한 벽 사이 균열에 자리 잡은 싹들은 서로 뿌리를 걸어 안으며 균열을 벌려 갈 것입니다. 함께 합시다. 불편하게 합시다. 모두의 평화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