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이름들
다채로운 색과 변화 속 풍요롭고 평화로운 계절에 가을이라는 이름을 만났다. 그곳에는 소나무, 탄자니, 푸른하늘, 보떼, 초래, 이슬, 두부… 다양한 이름이 있었고, 우리는 낯섦을 환영하며 반갑게 만났다. 서로의 이름을 호기심 있게 살피고, 도착한 마음을 묻고, 길게 눈을 맞췄다. 이곳에서 불필요한 경험, 쓸모없는 말, 잘못된 생각은 없었다. 다름을 인정하고도 계속 같이 걸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자꾸 초대했다. 옆자리로, 대화로, 주인공으로, 서로의 배움으로. 초대한다는 건 내 옆의 빈자리를 알아채는 것이고 그 자리에 누군가를 기꺼이 맞이하는 것이었다. 초대하고 초대받는 일이 반복될수록 중심과 주변이 옮겨지고, 흩어지고, 하나 됐다. 중심을 찾으려는 우리에게 두부는 이렇게 말해줬다. “중심이 하나의 점이라고 하면, 중심을 더 확대하면 어떨까요? 이곳이 다 채워질 만큼요.” 동료들은 이렇게 더했다. “중심을 펼쳐보면 어때요?”, “중심을 여러 개 둬도 좋은데요!”. 중심과 중심 사이가 촘촘히 펼쳐지고 연결될수록 모두가 그 공간의 주인이 됐다. 서로의 공간이 생겼고 상대를 제대로 보려면 꽤 먼 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생경하게 느꼈다.
우리는 둘로 나눠진 것들을 펼쳐봤다. 찬성과 반대, 기혼과 미혼, 선진국과 후진국, 장애와 비장애, 윗마을과 아랫마을. 그 사이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했다. 그곳에 중요한 목소리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우리와 타자를 나누는 경계에 분명 더 많은 우리가 있을 거라고. 서로의 너머를 읽으면서 우리 밖의 우리를 상상해봤다. ‘우리’를 지키는 힘과 권력은 무엇인지 살폈다. 그 힘이 누군가를 위축시키진 않는지, 누군가의 차이를 배제하면서 유지되진 않는지 물었다. 힘을 합치고 나눌수록 작아지지 않고 계속 커지는 힘이 있음을 느꼈다. 나눌수록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더 좋은 세계로 초대되는 것임을 기억해 본다.
우리가 배웠던 평화는 무언가에 반대되는 평화, 힘으로 제압하는 평화, 혹은 무력한 평화, 거대한 평화, 손에 잡히지 않는 평화, 안보 다음의 평화, 국가가 만드는 평화, 구호로 외치는 평화…. 내가 마음으로 담은 모모에서의 평화의 순간들은 이런 것이었다. 느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상대를 환대하기, 반갑게 만나기, 사소한 경험을 중요하게 나누기,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불리기, 온몸으로 경청하기, 온 맘으로 공감하기, 안아주기, 손 내밀기, 차이를 축하하기, 다름에서 배우기, 낯섦을 환영하기, 서투름을 존중하기, 변화를 상상하기, 호기심 있게 바라보기, 이상한 질문하기, 생각 덧붙이기, 백련산 소풍, 신선한 간식, 번지는 미소, 마당의 경계를 넘
나드는 고양이, 우리 안의 진심. 이토록 구체적이고 생생한 평화들이 내 몸에 남았다. 더는 평화를 찾기 위해 멀리 가지 않아도, 지금 있는 곳에서 평화를 발견할 수 있게 됐다. 평화에 다른 이름들이 늘어나는 것이 마음에 든다. 새로 만나고 발견할 평화들에 반갑게 이름을 붙이며 살고 싶다.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면서. 초대하고, 연결하고, 촉진하는 평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