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떠올리면 “지금보다 평화로웠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의 참혹함 아래 다치고 찢겨진 얼굴과 눈물이 매일같이 TV화면을 채우는 요즘에 비하면 말이죠.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멈춘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어쩌면 예전의 저는 아무것도 몰라서 아무것도 안보여서 평화로웠다고 생각할 수 있었나봅니다. 내 삶의 평화라는게 당연히 내게 주어진 것이라고 여기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던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평화가 주어진지도 몰랐고, 평화가 무엇인지 생각해본적도 없었던거죠.
그런데 최근 몇년은 ‘이게 정말 2024년에 일어나는 일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거예요. 말도 안되는 살인과 폭력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다른 나라의 전쟁이야기 뿐만 아니라, 사회 안에서, 학교 안에서,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서로를 향한 날 선 태도들. 조금도 타인을 참아내지 못하겠다는 듯 여기저기서 표현되는 분노들. 지겹도록 반복되는 뉴스를 접하며 저는 조금씩 화도 나지 않는 상태가 되더라구요. 그럼 그렇지, 뭘 기대해? 등의 염세적인 태도로 무표정하게 대꾸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느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무기력해졌습니다. 무엇을 해도 소용없고, 더 나아질게 없을 거라는 비관적인 마음이 서서히 제 삶에 스며들었어요.
그런 무기력의 끝에서 피스모모의 평화교육 진행자되기 입문과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난 여름 제주도에 방문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제주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화운동가들의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그 계기로 평화라는 단어가 어쩌면 ‘전쟁’만큼이나 제 삶에서 멀게 느껴졌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또 평화를 소중하다고 알고 있는 것 만큼 간절히 원한 적이 있었나? 자신에게 질문해보았는데요. 한번도 스스로 원해서 평화의 가치에 마주해본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비관적인 태도로 무기력에만 젖어있기 전에, 평화를 배우고 원해보고 실천해보자는 생각으로 평화교육 진행자되기 입문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평화의 개념에 대해서, 역사에 대해서, 모순에 대해서, 이슈에 대해서 심도깊게 토론하고 공부하는 수업을 아주 조금 상상했었는데요, 입문과정은 제 생각과 기대보다 훨씬 더 직관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언어가 아닌 몸과 감정으로 경험하고 익히는 수업이었습니다. 평화교육진행자로서 평화라는 지식을 습득하고 전달하는 것보다 수업 안에서 평화를 실천하고 평화를 만드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어요. 물론 그런 과정 안에서 서로에게 던지고 스스로 직면하는 질문들이 내 안과 바깥의 평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나의 것, 우리의 것이 되는지 스스로의 배움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함께 했습니다.
거대한 폭력 앞에 늘 제 스스로를 무력한 개인으로 느껴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적어도 내 일상에서 나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한달이었어요. 제 무기력은 평화를 과정이 아닌 달성해야하는 목표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런 결과중심, 목표중심적 생각은 평화로 가기 위해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노력을 달성하지 못했기에 무가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더라구요. 먼 미래의 평화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만드는 것이 평화라는 것! 입문과정이 진행되는 기간동안 제 무기력은 온데간데 없고, 이례적으로 활기차고 적극적인 일상을 보냈다는 것이 저는 조금 놀랍습니다. 굉장히 오랫만에 느껴보는 저의 에너지였기 때문이에요.
그런 에너지를 잘 알아차리고, 매일 매일 나와 내 주변의 평화를 만드는 것에 조금 더 충실하게 살아보기를 약속하며 평화교육 진행자되기 입문과정의 후기를 작성해봅니다. 내 안의 실랑이를 다독이는 아주 작은 평화도, 우주의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평화도 오늘, 지금 내가 만든 평화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여러분에게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