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24 세계군축행동의날(GDAMS) 토크쇼 “예산 삭감에 성난 사람들: 군사비를 줄여 사람과 지구에” by 채린

2024 세계군축행동의날(GDAMS) 토크쇼

“예산 삭감에 성난 사람들: 군사비를 줄여 사람과 지구에” 후기

 

채린 (피스모모 회원)

 

 

‘망치를 든 사람에겐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는 말처럼, 무기를 든 사람에겐 모든 문제가 잠재적 위협으로, 모든 대상이 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평소 ‘군사비 지출’에 불만을 가지며, 막연히 갖고 있던 생각이다. 한편, ‘만약 군사비가 줄어든다면, 그만큼의 자원은 어디에 투입돼야 할까?’에 관한 고민은 부족했는데, 지난 4월 22일, 세계군축행동의날(GDAMS) 토크쇼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우정규(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일자리협회), 오매(한국성폭력상담소), 신재욱(열린군대를 위한 시민연대), 이미현(10.29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한수연(플랜 1.5) 다섯 명의 활동가는 지금의 군사비 지출이 보장하지 못하는 안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의 문제는, 그 사회의 우선순위를 반영한다. 2024년 국방 예산은 59.4조 원으로, 작년 대비 4.2%가량 증가했다. 그에 반해 기후위기 대응 예산,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은 대폭 삭감되었으며,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예산은 전액 삭감되었다. 이처럼 절대적으로 적은 예산이 배정된 분야도 있지만, 현실 수요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채 제공되는 예산도 문제적이다. 예컨대 탈시설 예산과 장애인거주시설 예산 간 격차, 재난 안전 예산이 증액되면서 국가의 감시와 규율이 강화되는 문제가 고민으로 남아 있다.

 

특정 예산이 삭감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해당 이슈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일까? 토크쇼 신청 양식 중 군사 분야 대신 증액돼야 할 예산을 묻는 질문에 ‘도서관 예산’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결국 빈칸으로 제출했다. 어쩐지 한가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삭감된 예산을 듣다 보니, 끊임없이 늘어나는 군사비 지출의 당위성에 의문을 품게 됐다. 왜 어떤 예산은 시급성과 정당성을 강조하지 않아도 어려움 없이 확보될까?

 

이날 플로어에서 함께 한 주원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람과 지구에 예산을 써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듯한데, 군사비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는 어떻게 전달될 수 있을까?” 한 참가자는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전쟁을 통제하고 제한하려는 노력 역시 이어져 왔으며, 우리가 특정 서사에만 힘을 실어주고 있진 않은지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눠 주었다. 패널로 함께한 신재욱 활동가는 군사비 증액의 매커니즘을 ‘과거를 기억하는 법’과 연결 지었다. 침략, 수탈과 같은 과거의 피해 기억이 현재의 군비증강 논리를 지탱한다는 설명이다. 한수연 활동가는 ‘삭감되는 예산’과 관련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생존과 연결돼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사회자로 함께 한 이영아 활동가는 군비감축이 평화주의자의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닌, 상식적인 해법임을 강조했다. 주지하듯이 군비경쟁은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평화로운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영아 활동가가 인용한 고르바초프 전 소련 서기장의 말도 이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전쟁과 군비경쟁은 오늘날의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전쟁은 패배의 신호, 정치의 실패다. 무엇보다 우선돼야 하는 목표는 인간 안보다. 식량, 물, 깨끗한 환경을 제공하고 사람들의 건강을 보살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평화가 있어야 군비축소가 이룩될 것”이라고 말한다. 군비축소가 평화의 조건인가, 평화가 군비축소의 조건인가. 군사비 지출이 전쟁을 불러오는가, 전쟁이 군사비 지출을 유도하는가. 지난해 각국이 지출한 국방비는 2조 4430억 달러로, 전년 대비 6.8% 증가했다(SIPRI 2024). 세계 GDP 대비 군비 지출 비중은 2.3%에 달했고, 세계 1인당 군비 지출액은 199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남중국해·대만해협에서의 군사적 긴장으로 세계 각국은 자구책으로써 국방비를 늘리고 있다고 풀이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전쟁이 국방비 지출을 추동하는 듯하지만, 전쟁 억제가 군비증강의 구실이었던 때가 있다. 적성국의 공격 의지를 단념시키기 위해,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군사적 의지와 능력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군비를 증강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처럼 ‘힘에 의한 평화’도 하나의 담론이다. 이를 상대화하기 위해 모든 ‘힘’을 상상력으로 돌려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