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받는 동안 사용했던 필기 수첩을 한 달 만에 펼쳤다. 그랬더니 6회의 교육 기간 내내 느꼈던 감정이 가슴에 훅 재연됐다. 그제야 ‘그 감정이 벅참이었구나’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벅차오르다’의 벅참과 ‘부담스럽다’의 벅참이 왜 하나의 단어인지 비로소 이해가 됐다. 진정한 환대를 받았기 때문에 벅찼고, 그동안 알던 세상이 터져 나가는 경험을 했기에 벅찼다. 작은 회사에서 나와 세계관이 유사한 사람들과 주로 소통하는 나에게 이 교육이 얼마나 강하고 낯선 경험었는지.
임파워링 퍼실리테이션 교육은 수강자를 의자에 가만히 앉혀 두지 않는다. 수강자 모두가 강사인 대훈만큼 많은 말을 하게 된다. 한 번의 수업에 수차례 그룹을 구성하고, 매번 달라지는 구성원들과 주제와 단계가 다른 대화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이런 방식을 알았다면, 수강 신청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참 번거롭다고 생각했다.
1회차 교육이 끝났을 때, 운동을 마친 다음처럼 피곤했지만 개운했다. 그리고 몸으로 느꼈다. ‘교육이란 몸에 익히는 거구나, 내가 지금 그런 교육을 받은 거구나. 그래서 몸이 피곤하구나.’ 피스모모의 교육이 그동안 내가 다른 곳에서 받은 교육과 다르리라는 기대를 하고 왔는데, 기대를 만족시키는 걸 넘어 아예 뒤집어 버리는 교육이었다.
첫 시간에 가장 인상 깊게 남은 단어는 ‘환대’다. 익히 알고 있던 단어지만, 의미만을 머리로 알 뿐, 환대의 방법은 몰랐다. 피스모모에서 인사와 미소, 눈마주침에 환대를 담는 법을 새로 배웠다. 동료 수강생들과 환대하는 연습을 반복해서 했다. 진심이 느껴지는 환대를 받고 나자 누구에게나 환대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에서 내 어깨를 무심코 친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죠’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고,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주민에게 미소를 보낼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환대받을 권리가 있고, 나에게도 있다.
내가 피스모모에서 받은 교육은 퍼실리테이션에 관한 거였지만, 진행자로서의 태도는 곧 삶과 이어지고, “태도가 논리를 압도한다”는 수업의 내용은 일상에도 적용된다. 그러므로 직업적으로 진행자 역할과 무관한 사람에게도 이 교육을 추천하고 싶다. 서로를 존중하며 합리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그건 곁에 있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존재를 반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마지막 6회차 수업에는 프로그램 계획표를 짜 오는 과제가 있었다. 내가 일하는 분야의 가장 큰 이슈인 도서정가제를 토론 주제로 삼아 계획표를 작성했다. 대형/중소형 출판사, 대형/중소형 서점, 정통/웹 콘텐츠 회사, 입장에 따라 준수 또는 개정의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는 주제다. 하지만 5회차 수업에서 스펙트럼 토론법을 배운 이후, 이 주제로 우리 업계가 모여 답을 찾는 시도를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동료 수강생들과 통일을 주제로 스펙트럼 토론을 함께해 보며 양극단의 의견차를 좁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가능성의 세계가 커졌다.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6회차 수업에서 동료 수강생이 과제를 발표할 때는 큰 충격을 받았다. 동료 수강생이 말로 자신의 계획을 들려주었는데, 동료가 말하는 프로그램 계획표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말로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동료들은 어떤 프로그램인지 척척 알아듣고 세밀하게 문제점과 장점을 짚어 내는 게 아닌가. 상대의 말을 듣는 대신 눈으로 문서를 좇는 습관, 이것부터 고쳐야 경청할 수 있겠다고 반성했다. 경청 또한 임파워링 퍼실리테이션의 중요한 키워드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동료 수강생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교육을 받기 전이라면 잘 모르는 사람의 차를 탈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피스모모라는 환대의 공간에서 환대하는 법을 익히고 타인의 환대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다음이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차에 탔고,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서로의 안녕을 기원했다. 돌아온 나에게는 내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환대의 가치를 나누는 일이 남았다. 피곤하지만 개운한 기분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갈 것이다. 피스모모에 다시 한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