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셰이비치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 여자들은 침묵한다.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나의 엄마 이야기도. 심지어 전쟁터에 나갔더 여자들조차 알려 들지 않았다. 우연히 전쟁 이야기가 시작되더라도, 그건 ‘남자’들의 전쟁 이야기이지, ‘여자’들의 전쟁은 아니다”라고.
스베틀라나가 만났던 참전-여성-군인들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열여덟, 스물 나이에 전선으로 떠났다가 스물, 스물넷이 돼서 돌아왔어. 처음엔 기쁨에 들떴다가 나중엔 무서워졌지. 이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야 하는데 뭘 해야 하지? 평온한 삶 앞에서 공포가 밀려왔어. 우리는 우리의 전쟁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어. 처음에 우리는 과거를 숨기며 살았어. 훈장도 내놓지 못했지. 남자들은 자랑스럽게 내놓고 다녔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 받아야 했지. 완전히 다른 시선.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 분하고 억울했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전선에서는 남자들이 우리를 존중해줬는데 이 평온한 세상에서는 그 모습을 더 볼 수가 없는 거야.”
열여덟살 나이에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여성들은 몇 년 만에 돌아온 일상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말합니다. 남성들의 전쟁경험이 무용담이 되고, 절단당한 신체가 훈장이 될 때, 여성들의 전쟁경험은 어째서 숨겨야 하는 과거가 되고, 절단당한 다리는 부끄러움이 되었을까요?
전쟁에서 남성군인과 동일한 역할을 해내도 언제나 그것은 예외적인 사례가 되었고, 전장에서도 여성은 계속해서 보호의 대상으로 호명되었습니다. 여성이 보호의 대상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 때도, 지금도 여전히 이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목소리입니다.
인류에게는 성별과 상관없이 서로를 보호하고 돌볼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남녀로, 세대로, 동서로, 남북으로 갈라 놓으려는 힘-들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오롯이 사유의 힘으로 서로를 바라볼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과 공간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각자가 선택함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을 뿐이지요. 그렇기에 3월 8일 여성의 날인 오늘, 그 선택의 무게와 의미에 대해 함께 기억하고 기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부디, 내일 선출될 대통령은 평화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그 무게와 의미를 아는 사람, 편 가르지 않고 모두를 위한 정치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그 선택을 앞둔 모두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