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클럽 틈과 사이는 한 달에 한 번, 아홉 번의 일요일 오후를
함께 읽고, 나누고, 머무르며 일상 속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하려 합니다.
아홉 명의 동료와 함께 보낼 아홉 달과 세 번의 다른 계절,
4월부터 12월까지 매 달 마지막 일요일 오후를 함께할 여섯 분의 동료를 기다려요.
- 장소: 계절책방 낮과밤 (망원)
- 일정: 2025년 4월부터,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 오후 2–5시
- 참여자: 일상의 틈과 사이에서 소소한 연대와 구원을 발견하고 싶은 누구나
- 참가비: 회당 2만원 x 9회=18만원
- 참가비에는 대관비와 간식비가 포함됩니다.
- 도서비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 둘째 달의 꼭 읽어올 책은 후원해주신 분이 계셔서 선물로 드립니다.
- 진행방식
- 매 달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 한 권은 꼭 읽고 와주시고, 다른 한 권은 시간이 되시면 읽어와 주세요.
- 발제를 맡은 사람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 북클럽 메이트들 전체가 돌아가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 모임 종료 전에는 다음 달 책의 발제자를 정하고 마무리하게 되어요.
- 도서목록
- 첫째 달 – 4월 27일 일요일
- 꼭 읽어올 책: 문진영 <딩>
- 시간 되면 읽어올 책: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 둘째 달 – 5월 25일 일요일
- 꼭 읽어올 책: 데이비드 돌린저 <내 이름은 임대운>:도서 증정
- 시간 되면 읽어올 책: 한강 <소년이 온다>
- 셋째 달 – 6월 29일 일요일
- 꼭 읽어올 책: 윤순례 <여름 손님>
- 시간 되면 읽어올 책: 강주원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
- 넷째 달 – 7월 27일 일요일
- 꼭 읽어올 책: 케이트 비턴 <오리(Duck)>
- 시간 되면 읽어올 책: 애나 로웬하웁트 칭 <세계 끝의 버섯>
- 다섯째 달 – 8월 31일 일요일
- 꼭 읽어올 책: 최지월 <상실의 시간들>
- 시간 되면 읽어올 책: 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 여섯째 달 – 9월 28일 일요일
- 꼭 읽어올 책: 한강 <채식주의자>
- 시간 되면 읽어올 책: 이승우 <식물들의 사생활>
- 일곱째 달 – 10월 26일 일요일
- 꼭 읽어올 책: 클레어 데더러 <괴물들: 숭배와 혐오, 우리 모두의 딜레마>
- 시간 되면 읽어올 책: 앨리슨 케이퍼 <페미니스트, 퀴어, 크립>
- 여덟째 달 – 11월 30일, 일요일
- 꼭 읽어올 책: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 시간 되면 읽어올 책: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아홉째 달 – 12월 28일 일요일
- 꼭 읽어올 책:클레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 시간 되면 읽어올 책:존 윌리엄스 <스토너>
- 첫째 달 – 4월 27일 일요일
초대의 글
지난해 저는 일상의 곳곳에서 ‘애도’의 시간을 보냈어요. 키보드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져 숨을 고르기도 하고, 화장하다 눈물에 번져 결국 세수를 다시 하기도 했어요. 검지에 낀 묵주반지를 엄지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유튜브를 보며 낄낄 웃을 땐 이상한 미안함을 느끼기도 하고, 병원에 갈 일이 아닌데도 자꾸 병원을 들락거리는 염려가 생기기도 했어요.
초대장을 보내기에 앞서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어요. 올해 우리 함께 서로가 서로를 ‘잠깐’이라도 구원하는 시간을 맞이하자는 제안이자 초대를 ‘잘’ 하고 싶었거든요. 이내 ‘아 나는 멋들어진 포장은 못 하는구나’ 포기했지만요. 결국 제 지난 시간을 여러분에게 공유하려고 해요.
2024년 1월 22일,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난 이후 보낸 시간입니다. 날벼락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거더라고요. 제 친구는 한국에서 20여 시간 떨어진 곳에서 살았어요.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 환경인데, 친구는 그곳에서 자유를 만나더라고요. 커다란 바나나 잎으로 꾸민 크리스마스 트리를,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게 펼쳐진 대지의 낮과 밤을 종종 전해주기도 했어요. 제가 있는 곳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그래서 덜컥 겁이 나기도 한 일상에 완벽히 적응한 친구가 행복하기만을 바랐죠. 그런데 아주 갑작스레 생각지 못한 순간에(누구도 이런 날을 예상하긴 어렵겠지만요) 세상을 떠났어요. 잘 가라고, 널 만나서 반가웠고 행복했다고, 어떤 인사도 나눌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죠. 그래서 더 어쩔 줄 몰랐나 봐요. 세상을 떠난 친구가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절차가 필요하더라고요. 일주일 여 후에야 친구는 한국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맞이한 날들은 낯설고 익숙했습니다. 내 세계는 완전히 바뀌어 낯선데, 모두가 그 세계를 마주하는 건 아니니까요. 이 상실을 입 밖에도 꺼내기 싫은 마음과 동시에 한없이 위로만 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내 상실을 모른 척 배려하며, 아무렇지 않게 대하면 이상하게 화가 났는데, 또 위로를 해주면 잘 모르면서 그런다고 삐딱해지더라고요. 내 맘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시간들이었습니다.
지금은 괜찮냐고요? 그럴리가요. 지난한 시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요. 다만, 제 속도에 맞춰 이 시간을 보내는 법을 조금은 배웠습니다. 내 이야기와 똑같지는 않아도 그 비슷한 시간을 거쳐 간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요. 모두 한 과정을 거치고 있구나, 누군가 있었다 사라진 자리가 괜찮아질 수 있는 게 아니구나, 그리고 그 사라짐은 꼭 허무나 슬픔으로 채우지 않을 수도 있구나 하면서요.
복잡다단했던 마음은 ‘상실’, ‘애도’와 맞닿은 책들을 만나며 조금씩 잔잔해졌습니다.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닐까 싶을 만큼 엄마의 장례 이후를 세밀하게 담아낸 소설, 죽음이 결국 삶의 여정이라는 에세이, 남은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고인을 새로 바라보며 추억하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 등을 탐독하면서요.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어요.
그곳에 어느 때고, 어떤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뜬금없이 제가 읽던 구절을 공유하기도 하고, 무턱대고 속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요. 시간을 들여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속내를 털어놓는 시간이 저를 구원했습니다. 지난해 제가 마주한 안개 속에서 찾은 가느다란 빛은 이런 거였거든요. 요란스럽지 않지만 다정한 공간에서 무언가를 함께 읽고, 그 이야기 속에서 찾은 것들을 안전한 사람들과 나누며 따뜻한 차를 마시는 시간이요. 이 시간은 누구보다 내가 나를 아끼는 시간이 되더라고요.
막연히 피스모모와 연결된 님들을 떠올렸습니다. 부단한 일상에서 좋은 일상을 위해 옳은 방향의 걸음을 걷고 있는 친구들을요. 힘을 내려고 해도 쉽지 않은 시간, 나답게 살려 애쓰는데 자꾸 주저앉히는 것 같은 상황. 제가 받은 위로와 기운, 서로를 살피고 돌보는 시간을 한 달에 한 번, 함께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좋은 책들과 함께요. 그렇게 우리만의 북 클럽 ‘틈과 사이’를 준비했어요. 든든한 친구들과 함께요.
올해, 우리의 여정을 함께하면 어떨까요.
나리 드림
“틈과 사이”에 오시는 길이시지요?
큰 피스모모 안에 작은 “틈과 사이”를 만듭니다.
술을 안 마시는, 술을 잘 마시는, 술만 마시려 하는, 모모인(人) 셋이 작당을 했습니다. 인류의 가장 나약한 발명품인 문학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구원을 나누어 줄 수 있는지를 묻기로 했습니다. 고통을 보듬고 어려운 시절을 헤쳐 나가려는 안일한, 안이한 책읽기 모임입니다. 우리는 홀로 구원보다 서로 구원의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함께함의 실험을 하는 이유입니다. 결과는, 한 줄기 빛일 수도 짙은 어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감히, “틈과 사이”에 초대합니다.
같이함으로 더 이상이 없는 어둠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끝 다음은 희미한 빛의 세계일거라는 어렴풋한 희망을 간직해 보려 합니다.
“틈과 사이”는 작당의 작명입니다.
우리 사이에는 틈이 있습니다. 틈이 없으면 우리가 아닙니다. 송송한 틈이 있어야 우리가 됩니다. 틈이 없는 우리는 철옹의 담입니다. 바깥에서 보이는, 바깥을 보는, 우리를 만들기 위해서도 틈이 있어야 합니다. 틈틈이 그 틈을 들여다봅니다. 우리 사이의 거리 측정입니다. 붙어도 멀어도 안 되는 적정 거리를 계산해 봅니다. 때론, 그 틈을 거리를 초월한 전자기장으로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우리 사이에는 밀고 당기는 힘이, 흐르는 전류가 있습니다. 우리가 감전사 하지 않을 정도의 찌릿한, 짜릿한 사이를 만들고 싶습니다. “틈과 사이”인 이유입니다.
틈을 보며 사이를 만드는 함께 책읽기는 구원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틈과 사이”에서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구형 드림
2023년 봄, <딩>이라는 소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소설도 참 좋았지만, 작가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어요.
단번에 일어나는 구원은 신의 일이겠지만,
인간들은 서로를 시도 때도 없이, 볼품없이 구해줄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 2023년 봄, 문진영
<딩>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저는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Poetic Justice)>를 떠올렸어요.
이 나라에서 시인은 한결같은 인간이다. 그 안에 있지 않고 그로부터 떨어져 나온 사물들은 괴상하거나 과도해지거나 온전치 않게 된다. 그는 모든 사물이나 특성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비율을 부여한다. 그는 다양성의 중재자이며, 열쇠다. 그는 자신의 시대와 영토의 형평을 맞추는 자이다. 부정의 길로 엇나간 세월을 그는 확고한 믿음으로 억제한다. 그는 논쟁자가 아니다, 그는 심판이다. 그는 재판관이 재판하듯 판단하지 않고 태양이 무기력한 것들 주변에 떨어지듯 판단한다.
– 월트 휘트먼의 시 ‘유령’중 일부
마사 누스바움은 휘트먼의 시를 한 줄, 한 줄 읽어가다가 “태양이 무기력한 것들 주변에 떨어지듯 판단한다”는 것에 대해 조금 길게 이야기를 해요. 모든 곳에 평등하게 스며드는 햇볕같은 태도, 다른 사람의 고통앞에 멈추어 서고, 공감의 상상력이라는 문학적 태도로 서로를 대할 때,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최소한의 정치적 사유”를 통해 “모두에게 최소한의 품위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요.
참 쉽지 않은 날들입니다. 양극단의 정치적 발화들과 서로에 대한 혐오, 폭력, 온갖 거짓과 탈진실의 향연, 계속되는 여러 재난과 전쟁의 소식들에 계속 체한 것 같은 일상을 살고 있어요. 더더욱 모두에게 최소한의 품위를 제공하는 방향의 변화란 무엇일까 골몰하게 되는 일상이지요.
때로 너무 암담하게 느껴져서 무기력감이 몰려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상상하는 힘을 문학에 기대어 찾곤 합니다. 증명되는 것 너머를 상상하는 힘, 서로에게 덧씌운 고정관념 너머를 볼 수 있는 눈, 서로에게 조금은 더 부드럽고, 조금은 더 너그러울 수 있는 방법이랄까요?
추운 겨울, 한 조각의 햇살이 주는 소소한 구원 같은 것들을 떠올립니다. 무기력한 존재의 곁에 무심한 듯, 그러나 한결같이 떨어지는 햇살처럼, 너무 멀지도, 그러나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런 거리에서 서로에게 알아차리지도 못할 소소한 구원이 되면 좋겠어요.
피스모모의 북클럽 ‘틈과 사이’에서 만나요.
아영 드림
감사하게도 하루 만에 등록마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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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신청해주신 분들께는 공석이 발생할 때 연락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