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인간안보” – 문재인대통령 3주년 취임 특별연설에 부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대국민연설을 통해 ‘인간안보(Human Security)’를 앞으로의 정책 중심에 두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분단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 정부가 정책의 기조로서 ‘인간안보’를 채택한 것은 획기적인 변화입니다. 피스모모는 한국 정부가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며 안보를 새롭게 정의하고 패러다임 전환의 의지를 표명한 것을 환영합니다. 하지만 환영하면서도 우려가 됩니다. 선언하는 것보다 선언 뒤에 이행되어야 하는 구체적인 변화들은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안보는 전통적인 군사력 중심의 국가안보가 아닌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말합니다. 인간안보에 초점을 둔다는 의미는, 진정한 안전 보장은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위협과 안전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상호의존성, 사후대처 보다는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예방중심성, 국가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 한 사람의 시민 중심으로 바라본다는 인간중심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를 겪는 지금, 기존의 안보 개념과 수단이 얼마나 낡았는지 모두가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 비싼 무기도 바이러스를 막지 못하고 그 거대한 항공모함도 코로나19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무엇이 정말 위협이고 무엇이 안보일까요? 

 

인간안보는 물리적 폭력이나 군사력 위협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fear)와 빈곤이나 기아로부터의 자유 (freedom from want)의 두 가지 차원에서 논의되는데요. 이러한 인간안보가 실현되는 사회를 이렇게 구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첫째, 사람이 자본축적의 도구가 되지 않는 사회, 둘째, 시민권을 넘어선 한 사람의 존엄이 인정되는 사회, 셋째,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가능하고 그에 기반한 구체적인 정책 실행이 가능한 사회, 넷째, 눈에 보이는 무기와 군사력이 아닌 지구 전체의 삶을 위협하는 위기가 무엇인지 직시하고 그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사회.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인간안보’에 대한 선언은 스스로에게 더 무거운 과제를 부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스스로 약속한 인간안보의 실현을 위해서 한국정부가 당장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국방비 삭감이 있습니다. 이미 한국 정부는 지난 2차 추경안을 통해 국방비 9천억원을 삭감해 코로나19 대응에 사용하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국방비를 삭감해 코로나19 대응에 투입한 첫 사례라고 하지만, 50조 규모의 국방비 예산중 50분의 1도 되지 않는 금액에 불과합니다. 한국 정부는 조금 더 과감한 결단과 실행을 통해 안전자원을 충분히 확보하여 인간안보의 선례들을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들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군사안보 중심의 구조들을 재편하여 안보에 대한 시민의 주권을 인정하는 변화와 연동되어야 합니다. 

 

둘째, 기후위기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입니다. 한국정부는 ‘기후위기대응지수(CCPI) 2020’에서 61개국중 58위를 기록했습니다. 국내의 탈석탄 정책기조 속에서 해외 석탄발전소에 투자를 진행하는 이중 잣대가 드러나기도 했고, 한국 사회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개개인의 실천을 넘어서는 영역입니다. 사회구조적으로 기후위기에 본격적으로 대응해야만 합니다.

 

셋째, 인간들의 소중한 파트너인 비인간 존재에 대한 정책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 방역만큼이나 조류독감, 구제역, 아프리카 돼지열병 같은 동물들의 전염병에 대한 정책적 예방이 필요합니다. 이 정책적 예방은 백신의 개발이 아닙니다. 먹거리에 대한 인식의 전환, 비인간 동물을 살아있는 존재, 느끼는 존재로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인간중심의 사회에서 생명을 자본으로 바라보는 폭력은 비인간 동물들에게 가장 끔찍하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자본을 끊임없이 축적하듯 비인간 동물들의 죽음을 끝없이 축적하여 냉동고에 쌓아두는 악순환을 끝내야 합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숲을 해치고 강을 파헤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안보는 안전보장의 줄임말입니다. 모두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인간안보의 지향은 피스모모의 ‘평화는 모두의 것(Peace as commons)’, ‘안보도 모두의 것(Security as commons)’이라는 지향과 밀접하게 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피스모모는 그보다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국경을 넘어선 상호의존성뿐 아니라, 지구 위 모든 존재의 상호의존성을 확인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면 인간의 안전은 보장될 수 없거든요. 

 

인간안보로의 전환, 우려에도 불구하고 환영하며, 환영함과 동시에 걱정합니다. 변화를 만들어가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건강한 견제와 협력을 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