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힘에 의한 평화 아닌 일상을 바꾸는 적극적 평화를 지지하며 (2019.06.25)

 

힘에 의한 평화 아닌 일상을 바꾸는 적극적 평화를 지지하며

전환기의 한반도, 다양한 평화외교 펼치는 장이 되어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12일 오슬로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일상을 바꾸는 적극적 평화’를 역설했습니다.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는 노르웨이 국제평화연구소의 창설자인 평화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이 정리한 개념으로 비판적 평화학 논의가 풍성해지는데 소중한 역할을 한 개념입니다. 노르웨이 정부와 민간단체가 공동주최한 행사에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적극적 평화를 주창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적이고 의미가 깊습니다.

 

한편,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 국민의 사고’까지 제약해 왔던 분단으로 인해 경제는 선진국이 되었지만 정치와 문화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는 문대통령의 성찰적인 고백은 한국 사회가 직면해 있는 온갖 가짜뉴스와 혐오에 기반하여 합리성을 상실한 한국 사회의 단면을 씁쓸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피스모모는 적극적 평화를 ‘덧셈의 평화’, 소극적 평화를 ‘뺄셈의 평화’라 부르는데요. ‘뺄셈의 평화’는 위협이라고 느껴지는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반면, 적극적 평화는 두려움과 불안을 넘어 새로운 존재들과의 만남을 더해나감으로써 새로운 관계와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덧셈의 평화’라 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 평화는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들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평화론인 것이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사회의 모습은 적극적 평화 보다는 소극적 평화에 가깝습니다.

 

분단이 영향을 미쳐왔다고 언급된 “삶과 민주주의, 국민의 사고”라는 세 가지 층위는 직접적 폭력, 간접적 폭력, 구조적 폭력이라는 요한갈퉁이 정리한 폭력의 세 가지 개념과도 만납니다.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삶, 고도로 군사화된 사회구조, 국가주도의 안보논리를 주입해 온 사회문화, 분단은 이렇듯 일상과 구조, 문화를 넘나들며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곁에서 살아가는 북한이라는 적에 대한 불신과 공포를 지속적으로 생산해왔습니다.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 불신과 공포는 적보다 더 강한 힘을 갖추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져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안보제일주의를 지탱하고 강화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사람은 신고하는 것을 독려하는 문화 속에서 ‘차이’를 건강하게 다루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고, 국가안보에 기여하는 ‘비장애 정상남성’을 제외한 존재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정당화되어 왔습니다. 징병제 사회에서 군대에 대해 합리적으로 논의할 공간은 소멸해왔고, 잘 알지 못하는 낯선 존재라는 이유만으로도 이주자와 난민들,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 내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정당화되었습니다.

 

적극적 평화에 대한 문대통령의 의지표명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매우 중요한 과제를 남겼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국방력 강화를 주장해오고 있습니다. ‘강한 군대, 튼튼한 국방 없이 평화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국방개혁 2.0을 통해 ‘정예화된 선진강군’이 되겠다는 목표를 천명한 바 있는데요. ‘적극적 평화’와 ‘강한 군대’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강한 군대를 통해 실현하는 평화는 결국은 힘에 의한 억지(deterrence)에 머무는 ‘소극적 평화’인 것이니까요.

 

적극적 평화와 국방력 강화를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는 아이러니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70년을 살아온 한국사회의 평화에 대한 상상력이 여전히 전쟁에 두 발 디디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을 위한 평화’, ‘국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평화’ 국방력 강화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문대통령은 아인슈타인을 인용해 ‘평화는 힘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피스모모는 문재인 정부가 적극적 평화를 위한 새로운 길을 뚜벅뚜벅 만들어갈 것을 촉구하며 응원합니다. 또한 강대국 중심으로만 작동하는 외교의 경로의존성에서 탈피해 다양성에 기반한 글로벌 평화외교로 한반도 평화구축에 기여하는 다자외교의 사례들을 만들어가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외교적 노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대한민국 정부의 평화외교를 공론화하고 그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6월 25일입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날이라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에 머물지 않고 ‘뺄셈의 평화’가 가져온 거대한 실패와 그로 인한 고통과 슬픔들, 이름 없이 죽어간 많은 이들을 헤아리고 기억하며 지난 과오를 성찰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강한 군대를 통해 확보하고 싶은 평화’에 대한 욕망을 넘어서는 것, 지금까지의 경험에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평화에 대한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평화를 상상하는 것, 그리고 그 평화를 이루어가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한국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를 세워가는 평화활동가이자 강대국 중심성을 스스로 벗어나는 공공외교의 대사를 자임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출발한 평화세우기의 여정을 채워갈 것을 제안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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