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평화는 그렇다. 평화라는 단어는 항상 평화롭지 않은 상황과 짝꿍처럼 붙어있었다. 아무리 떼어내고 싶어도 떼어낼 수 없다. 짝꿍이니까. 그래서 나에게 평화는 외면할 수 없는 아픔이다.
평화의 짝꿍 아픔이는 수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세계’ 평화라든지, 평화 ‘통일’이라든지, ‘한반도’ 평화 등등. 가끔 ‘이너’ 피스라는 단어로도 등장한다. 평화랑 친해지고 싶으면 이 아픔이랑도 친해져야 한다. 요리조리 눈도 마주쳐 보고, 손도 잡아보고, 폭삭 안겨도 보고, 얘가 무슨 말을 하나? 귀를 기울여 대화도 해본다. 가끔은 지긋지긋해서 신경질도 내보고, 꼴도 보기 싫어서 도망친다.
평화로운 세계를 꿈꾼다는 건 세계가 아픔으로 가득하다는 의미일 거다.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는 건 내 마음에 아픔이 살아 숨쉬기 때문일 거다. 국제관계학의 냉정함이 싫어 평화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평화학으로 학위를 끝내고 내게 남은 건 좌절과 무기력이었다. 평화를 떠올릴 때마다 아파서 좌절하고, 생각할수록 이 불가능해 보이는 길에 무기력해졌다. 서울에서의 바쁜 삶은 내 마음속의 평화마저 쉽게 앗아갔다. 대한민국 땅에 서서 숨만 쉬어도 나는 평화에 반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피스모모와의 만남은 가뭄의 단비 같았다. 입문과정 서로배움 시간 동안 나는 평화가 아픔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기억해 냈다. 모모의 입문과정은 그래서 좋았다. 마음에 품고 있는 평화에 대한 생각, 고뇌와 경험이야 제각각일 테지만. 어떻게 하면 세상에 가득 퍼져있는 아픔에게 짝꿍 평화를 찾아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들. 어떻게 하면 삶 속에서 평화를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피스모모라는 공간이 한데 모아주었다.
혼자서 아픔을 바라보면 더 도망가고 싶고, 혼자서 평화를 생각하면 더 힘들 때가 있다. 그런데 이 공간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함께 용기를 내 마음을 꺼내보고, 이야기를, 고민을, 배움을 나누었다. “낯설어도 괜찮아, 달라도 괜찮아, 느려도, 쉬어가도, 사소해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는 마음의 등불이 되어주었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눈빛, 들어주는 귀를 느끼고, 격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라는 존재가 온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를 찾는 기분이었다. 힘이 생겼다. 나는 과연 스스로에게,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따뜻한 눈빛과 귀와 목소리를 내어주는 사람이었나 질문해 보았다.
모모와 함께 보낸 4주 동안 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배웠다. 서로의 안전한 공간이 되는 법을 배우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기뻤고 즐거웠고 편안했다. 이 따듯함 속에서 낯설어도, 달라도, 느려도, 쉬어가도, 사소해도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도 당당하게 말해줄 수 있었다. 돌아가도, 느리게 가도, 스스로가 최선의 속도로 노력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것만으로 나에겐 큰 위로가 되었다.
여전히 평화의 짝꿍 아픔이는 슬프고, 무섭기도, 때로는 밉기도 하다. 눈을 감으면 아픔이가 아른거린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었다. 좌절해도, 무기력해도, 쉬어가도 괜찮다. 아픔 속에 사람이, 우리의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생명이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평화가 끝없는 아픔의 길에 한 발짝 한 발짝 작지만, 큰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픔이는 이 끊임없는 생명력으로 짝꿍 평화를 찾아 나선다. 사람들은 평화를 찾아 나선다. 피스모모가 만들어 내는 변화에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더 많은 사람이 평화와 함께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