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인
최근 중 가장 많은 새를 본 날이었다. 반복되는 군용기의 곡예비행을 경계하며 계속 하늘을 올려다보았기 때문이다. 2023년 10월 21일, 나는 <피스모모>와 함께 서울 아덱스 행사장 앞으로 가 무기 거래 및 전시에 저항하는 직접행동에 참여했다. 직접행동이 이루어진 곳은 서울공항과 맞닿은 성남 탄천이었다. 탄천은 다양한 철새와 텃새가 살아가는 경기 남부의 대표적인 새 서식지 중 한 곳이다. 나 또한 직접행동 당일, 여름철새임에도 아직 이곳에 남은 느긋한 왜가리 몇몇을 본듯하다. <피스모모>의 직접행동에 참여하고 다시 일상을 보내며, 나는 군용기의 ‘에어쇼’에 환호하는 마음과 날아가는 새를 마냥 따라가고픈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왜가리를 비롯해 한반도를 경유하는 철새들은 대개 동아시아-대양주 이동경로를 따라 이동한다. 해당 경로는 미국(알래스카), 필리핀, 태국, 미얀마, 인도네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을 아우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겐 앞선 국가들의 조합이 익숙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여러 군수산업체는 이 국가의 정부 및 군대에게 오랜 기간 무기를 판매해왔다. 그중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공군은 아덱스 퍼블릭데이 당일, 수차례 곡예비행을 했던 <한국항공우주(KAI)>의 T-50 계열 군용기를 수입해 운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국내기업이 공동 개발한 KF-21 전투기 또한 이날 서울공항의 상공에서 에어쇼를 선보였다. 그렇다면 어쩌면 내가 탄천에서 본 그 왜가리는 먼 훗날, 동남아시아의 어느 상공에서 해당 군용기들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구면일 지도 모른다. 그는 이 ‘한국산 무기’와의 재회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10월 21일, 아덱스에서 군용기의 비행을 마주한 나의 첫 반응은 떨림이었다. 두렵고 화가 나 떨렸다. 하지만 탄천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반응은 이와 달랐다. 호기심이나 선망, 환호의 분위기가 더욱 컸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 군용기가 어딘가에서 전쟁에 동원되어 사람들을 죽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지 않은 건지. 전쟁과 폭격으로 죽은 이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이 왜 떠오르지 않는 것일지. 이해가 가지 않아 나는 검은 옷을 입고 탄천을 걸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이들과 함께 걷고 구호를 외쳤다. <피스모모>의 직접행동에 참여한 우리는 아덱스의 무기들이 초래할 말들이 적힌 검은 티셔츠를 입었다. “폭탄이 떨어진다,” “المدرسة تنهار(학교가 무너진다),” “가족의 생사를 알 수가 없다.” 내 티셔츠에 새겨진 말은 “목숨을 빼앗는다”였다. 진심으로 소리치고 싶은 말이었다. “제발 저 군용기에 환호하지 마세요! 저들이 목숨을 빼앗고 있어요!”
목숨을 빼앗는 군용기, 아덱스, 그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우리는 함께 걸었다. “폭탄이 떨어진다”라는 구호에 따라 다 함께 바닥에 누워 ‘다잉(dying) 퍼포먼스’를 했다. 우리는 죽어가고 있지만 아직 죽은 것은 아니기에, 아스팔트 바닥의 열기와 딱딱함을 느낄 수 있었다. 새들과 군용기가 지나간 탄천의 하늘 또한 다시 볼 수 있었다. 이후 이날의 경험을 회상하던 중 나는 ‘10.29 이태원참사’ 유족의 한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는 지난 여름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해 삼보일배 행진을 했다. 아스팔트에 머리를 박으며 그는 참사 현장의 아스팔트 바닥이 떠나간 가족에게 얼마나 딱딱하고 아프게 느껴졌을지를 떠올렸다. 폭격을 맞아 쓰러진 이들에게도 바닥이 느껴졌을까? 며칠 전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 난민촌을 공습해 수백 명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정말로 폭탄을 맞은 이들은 바닥의 딱딱함을 느끼지도, 하늘을 다시 볼 새도 없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반면 아직 죽어갈 뿐인 우리는 살아남아 티셔츠에 적힌 전쟁의 말들을 아덱스 현장에서 대신 외칠 수 있었다. “죽고 싶지 않다,” “살던 곳을 떠나야 한다,” “전쟁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올해 아덱스에서 이루어진 <피스모모>의 직접행동은 아직도 내게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탄천을 날던 새, 군용기의 굉음, 그에 환호하던 인파, 그에 저항하던 우리, 우리의 구호, 바닥의 느낌 등을 자주 되돌아본다. 아덱스가 끝난 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았다. 영화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어머니를 잃은 주인공 소년은 도쿄를 떠나 어머니의 고향으로 간다. 이곳에서 소년은 한 신비로운 왜가리를 따라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그리워하던 이를 만난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나는 조금 울었다. 잃은 이들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죽어) 잃는다는 것과 그립다는 것은 같은 말(miss)이므로,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잃었기에 어느새 그리워지는 이들이 떠올랐다. 나와 가까운 이도, 먼 이도 있다. 나도 영화 속 소년처럼 새를 따라가 그리운 이를 만나고 싶었다.
아덱스 당일, 우리의 행동은 누군가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까? 만일 우리의 구호가 난민촌으로 향하던 이스라엘군 폭격기에 닿았다면 사람들은 조금 더 살 수 있었을까? 가정을 후회가 아닌 실천으로 이어가려면 재차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직 살아남았기에 먼저 죽은 이를 애도하고 또 다른 죽음을 막으려 애쓰고 싶다. 각자의 자리에서, 혹은 다시 모여 행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다면 새를 따라가지 않고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