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북소리에 춤추지 않는 교육 참가 후기
신재욱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활동가
'국민화' 기관으로서의 학교
'전쟁의 북소리에 춤추지 않는 교육'이라는 제목은 '전쟁의 북소리에 춤추는 교육'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이다. 용산의 전쟁기념관이 떠올랐다. 전쟁기념관은 그야말로 충실하게 전쟁의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춰 온 곳이다. 북한이라는 적을 강조하면서 그에 맞서는 영웅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더 나아가 전쟁을 준비해야만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국가 혹은 전쟁을 지도하는 수뇌부만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공공기관이자 한국전쟁 관련한 교육을 담당하는 가장 큰 박물관의 모습이다.
발제를 맡은 이치석 선생님은 자신이 참여했던 국민학교 명칭 개정 운동의 이야기로 발제를 시작했다. 국민학교의 '국민'은 일제의 '황국신민'을 뜻하며, 즉 국민학교는 학생들을 '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기관이라고 하셨다. '황국신민'하면 떠오르는 것은 '살신보국'이다. '자신의 몸을 죽여 국가(천황)을 지켜라.' 태평양전쟁 당시 수많은 군인들이 수류탄을 가지고 탱크에 직접 돌격했다.
'살신보국'의 구호가 복창되었을 일제 시기의 국민학교와, 반공과 군국주의가 극에 달했던 군사독재 시절 국민학교의 풍경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당시 학교를 다스리는 원리는 '규율과 강제' 혹은 '명령과 복종'이라는 획일적 원리였을 것이다. 동일한 원리가 다스리는 대표적인 집단은 바로 군대다. 이치석 선생님은 군대와 학교에서의 가르침은 교육이라기보다는 훈육(discipline)이라며 군대와 학교가 '국민화'를 담당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라고 하셨다.
공교육, 사교육, 참교육
군사독재 시절이 끝나고, 국민학교는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명시적인 반공교육은 그 자취를 감췄다. 이 자리에는 현재 교단에 계시는 선생님들도 여럿 참석했다. 발제가 끝나고 진행된 조별 모임에서 선생님들은 공교육 현장의 한계에 대해 많이 말씀하셨다. 획일화의 색채는 옅어졌지만, 국가가 만든 교육과정과 위로부터 내려오는 공문을 따라야 하는 방식, 입시 위주의 교육 등에 대해 언급하셨다. 발제 중 이치석 선생님이 던지신 '공교육과 참교육은 양립할 수 없다'란 화두와 같은 맥락일 것으로 짐작했다.
교육의 불평등한 분배라는 관점에서, 사교육과 대비되는 공교육은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보통 여기서의 공교육은 '과외나 학원 없이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식으로 이해되는 것 같다. 입시 위주의 교육은 신자유주의의 한 단면이다. '각자도생'이라는 원리 아래서 개개인은 생존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인 생존의 방식, 공공의 영역을 어떻게 넓혀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점점 축소된다. 한 선생님께선 공교육을 국가주도의 공립교육이 아니라 공공성, 즉 시민의 영역으로서의 교육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느냐고 제안하셨다. 입시 위주의 교육과 교묘하게 혼합된 현재의 공교육에서, 흔히 공교육의 목적이라고 말해지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함양’은 텅 빈 기호처럼 공허해졌다.
공공의 영역은 사회의 서로 다른 구성원이 평등하게 참여해 정치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함양’은 공공의 영역에 꼭 필요한 자질이다. 하지만 국가주도의 교육에서 교육의 당사자인 학생과 선생의 목소리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 특히 '미성년'으로 간주되는 학생의 교육과정에 대한 참여는 더욱 제한적이다.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라는 피스모모의 슬로건처럼, 학생과 선생 등 교육의 당사자들이 평등하게 목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어떤 ‘참교육’의 모습이지 않을까.
평화가 무엇이냐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평화교육의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행사가 끝나고 남은 것은 오히려 교육이, 평화가 과연 무엇인지, 그렇다면 평화교육은 또 무엇인가에 대한 더 큰 질문이었다. 한국사회는 사실상 분단이라는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분단의 가장 큰 원인인 한국전쟁 또한 그렇다.
하지만 전쟁기념관을 위시한 많은 곳에서, 한국전쟁은 국가의 관점에서만 이야기되어 왔다. 한국전쟁을 평화교육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한국전쟁에 대해 보다 더 다양한 당사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지 않을까. 한국전쟁 당시 강제동원된 노무자들, 전쟁미망인과 한국군·유엔군 '위안부', 민간인 피학살자와 그 유족, 아동과 장애인, 폭격과 포화에 의해 파괴된 동식물들까지 말이다.
요즘 부쩍 자주 부르게 되는 '평화가 무엇이냐'라는 노래의 가사로 글을 마무리해 본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