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22 평화교육진행자되기 과정을 돌아보며 by 앙금

   처음은, 기대가 없다 못해 전무했다. ‘평화’에 대한 관심보단 ‘교육’이란 단어에 눈길이 갔을 뿐이었다. 소중한 친구가 추천해주니 마지못해 설명이나 읽어보자 싶어 소개글을 보았다. 역시 큰 반전은 없었다. 다만 ‘현재 속한 공동체 안에서 민주주의 실천하기’ 엇비슷한 문구가 마음을 끌었다. 4주간이나, 한 달 동안 토요일을 내리 바쳐야 한다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정말로 친구의 강력한 추천이 아니었다면 꼬박 후회할 뻔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선택은 2022년 새해를 맞아 가장 잘한 선택이 되었다. (물론 앞으로 많은 날들이남았지만!) 매 순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 채 즐거웠다. 의미있었다. 뿌듯했다. 보람찼다. 재미있었다. 어쩜 이렇게 좋을 수가 있지, 끝나지 않길 바랐고 얼른 끝나서 세상에 흘려보내고 싶기도 했다.  무엇이 좋았냐 하면… 역시 한 손에 꼽기가 어려울 정도다! 피스모모가 보여준 교육은 내가 학부 시절부터 그토록 바랐던 서로 배움과 상호 존중, 섬세한 알아차림, 환대 등이 모두 녹아져 있는 교육 그 자체였다. 창의성을 기르라면서 교실은 주입식, 일제식 교육으로 가득찬 현실에서 나는 교육자로서 수도 없이 답답하고 막막한 벽에 가로막혔다.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나날이 발전하고야 있다지만 큰 틀이 바뀌었는가? 교실 안에서 과연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고 있는가? 교사도 학생도 함께 즐거운 배움이 가능한가? 교사는 업무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냉소적인 회의주의자가 되어가고, 학생은 초중고 12년 동안 자유와 독특함과 창조성을 잃어버리며 사회의 기성품 중 하나가 되어간다. 그래서 일개 교사일 뿐이었던 나는 내 교육철학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시스템 안에 들어가길 거부했고 그래서 지금은 방랑 중에 가까운 교육자이지만 ‘교육’ 만큼은 참된 배움이 있어야 진정한 ‘교육’이라는 신념은 양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모에서 느꼈던 모든 경험들은 나에게 신선한 물이었고 반짝이는 오아시스였다. 이런 교육이 가능하구나. 이런 배움이 가능하구나. 비록 어른과 어른 사이에서 일어나는 교육 경험이었지만, 아이들과 해볼 수있는 다양한 시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색하고 낯설던 사이가 좀 더 친밀해지고, 이게 뭐지 했던 활동들은 의미 깊은 관찰과 고찰로 이어졌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몰랐던 것을 다른 이에게서 다시 배우는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났다. 토요일 10시부터 5시까지, 정말이지 반짝이는 것들로만 가득 채워져서 나에게 피곤하기만 했던 토요일이 설레고 기다려지는 날이 되었다. 그래, 가능하구나. 그리고 이런 교육을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애를 쓰는 이들이 있구나. 그 사실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이제는 ‘교육’ 뿐만이 아니라 ‘평화’ 에도 눈길이 간다. 내가 생각했던 단순한 의미의 ‘평화’ 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확장된 ‘평화’ 를 ‘교육’ 과 연결시킨다는 게 얼마나 놀랍고 경이로운지, 또 그 교육이 얼마나 다채로운 배움들을 일으키는지, -마치 언 바다를 망치로 쩡 내려치듯이-, 그런 충격을 받았다.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는 일을 나는 무척이나 사모한다. 피스모모에서의 시간은 교육을 향해 멈춰 있던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해주는 시절이 되었다. 만난 이들, 이끌어준 이들, 준비해준 이들 모두에게 깊은 사랑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다시 내가 어디로 갈진 모르지만, 어디에서라도 이곳에서 배운 가치들을 실현하는 참된 배움이 일어나도록 교육하는 ‘facilitator’ 가 되고 싶다. 2022년 3월, 앙금 나눔 ▶ 같은 과정에 참여한 "돌멩"의 후기도 여기에서 확인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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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피스 큐레이션: 평화기행,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를 마치고 by 윤슬

올 여름엔 제대로 휴가 한 번 못 다녀오고 2021년 여름이 지나가는 구나 하고 있던 차에 피스모모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뭐? 평화와 여행을 주제로 하는 과정이라고? 평화기행을 기획한다고? 철원에 직접 다녀오기도 한다고!? 이름은 조금 생소한 피스큐레이션 과정 참가자 모집 공고였다. 피스모모 프로그램에 언젠가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눈팅만 하다가 공지를 보고 신청을 했다. 여행을 좋아하고 평화이슈에 관심이 많은데다 기획자 정체성도 있어서 피스큐레이션은 꼭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9월 한달, 토요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시간을 피스 큐레이션에 쏟아부었다. “기획”이라는 단어에 혹했고, 외갓집이 있어 어렸을 때 부터 다닌 철원을 “평화”라는 시선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가 컸다. 요즘 서울을 떠나 살고 있어 오전부터 시작하는 피스큐레이션에 참여하기 위해서 서둘러 나와야했다. 홍대입구역을 나와 플레이스디로 찾아가는 길에 화창한 가을 하늘과 화단에 피어있는 세이지를 보고 마음이 환해졌다. 플레이스디로 들어가는 문 앞에는 여섯 빛깔 무지개 깃발이 반겨주고 있었다. 총 4회로 진행된 피스큐레이션은 참가자들이 서로 알아가는 과정부터 조를 짜서 평화기행을 기획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피스큐레이션 과정을 시작한 9월 4일은 마침 피스모모가 9년이 된 생일이라 참여자들이 같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첫째 주에는 참가자 중에 한명은 택시운전자가 되고 한 명은 승객이 되어 운전자가 매직운전대를 잡고 승객은 눈을 감고 따라가는 활동을 했다. 참가자들이 같은 활동을 하고 서로 다른 감각을 느끼는 것이 신기했고, 긴장과 불안을 줄이기 위해 어떤 장치가 추가되면 좋을지 토론을 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평화기행을 함께 기획하기 위해 모인 조는 이름을 ‘지리산’으로 정했다. 산청, 함양사건을 생각하는 기행을 해보자고 결정하고 “지금까지 이런 산청, 함양 여행은 없었다!”를 줄여서 일사천리로 정했다.  둘째 주에는 몇 가지 키워드가 적혀있는 테이블에 놓여있는 글을 골라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했다. 나는 처음엔 한국전쟁시기 민간인 학살사건에 피해를 입은 분의 증언이 적혀있는 글을 읽고 다음 테이블에서 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가 썼던 편지와 기록을 묶은 글을 읽었다. 전쟁의 피해와 가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전쟁에 참여한 가해자라고 해도 어떻게 보면 거대한 국가폭력에 피해를 입은 부분이 있지 않은가?하는 의문점에 대해 토론을 했다. 오후에는 피스큐레이션이 무엇인지 알아보며 낯설게, 새롭게 보기 위한 질문들을 마주하고 삼삼오오 모여 철원에 가서 방문할 노동당사와 백마고지에 대해 팀을 짜서 조사를 했다.   9월 18일, 드디어 철원으로 향했다. 소이산 -> 오픈더문에서 식사 -> 노동당사 -> 백마고지 순으로 이동을 했다. 참가자들은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직접 큐레이션을 했다. 강원도 철원에 어렸을 때 부터 다녀보았지만 소이산에 올라가서 철원 평야를 바라본 것은 처음이었다. 너른 평야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모습에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식사를 하고 노동당사에서는 돌멩, 자연님과 함께 준비한 큐레이션을 참가자분들 앞에서 발표했다. 자연님은 노동당사가 지어졌을 때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해보자고 했다. 나는 어린시절에 노동당사를 방문했을 때 팬스가 없이 내부로 드나들 수 있었고, 2층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돌멩님은 눈을 감고 노동당사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철원군에서 노동당사를 설명하는 방식은 한국전쟁당시 공산당에 의해 사람들이 고문, 학살을 당한 공간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 내용도 섞여  있으며, 누가 누구를 어떻게 죽였는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음에도 정부, 관에서 노동당사를 설명하는 방식은 일률적이다. 그러한 접근방식과는 다른 식으로 접근한 것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조별로 평화기행을 기획하고 발표하고 피스 큐레이션 과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다. 시소, 자연님과 함께 “지리산”조로 산청, 함양 민간인 학살사건을 기억하고 새로 이름을 짓는 여행을 기획한 것을 시소님이 발표했다.  나에게 피스큐레이션 과정을 몇 단어로 표현하자면 이름 짓기, 기억/획, 낯설음, 확장이다. 윤슬이라고 새로 지은 이름으로 참여를 하면서 새로운 이름을 짓고 기억하는 여행을 기획했다. 피스 큐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듣는 과정에서 내 시선이 다른 시선으로 이동하고 확장됐다. 이번 과정에 참여하면서 끊임없이 기존에 갖고 있던 ‘평화적’이라고 하는 생각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며 낯설게 보기를 시도했다. 철원에서 다닌 답사지들에서는 우리와 적으로 나누어 나쁜 적과 피해를 입은 우리로 설명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나쁜 적과 우리, 너와 나를 구분할 때 생기는 경계는 전쟁터가 된다. 한반도는 휴전상태, 그야말로 전쟁을 쉬고 있는 상태이다. 전쟁을 그만두기 위해서 필요한 건 어쩌면 대치하고 있는 상대를 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인식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 세 가지 키워드로 피스 큐레이션 과정에 대한 소감을 나누면서 다른 참가자들과 적은 단어를 교환했다. 내 손안에는 “Togetherness”와 “질문”이란 단어가 들어왔다. 새로운 이름, 정체성에 필요한 것은 질문하기다. 피스 큐레이션은 참가자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져서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고, 답사지에 대해 직접 찾아보고 큐레이션을 하고, 평화여행을 기획하게 했다.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내야 하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았다. 분주했던 9월의 황금같은 토요일을 통째로 들이는 것이 아깝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피스 큐레이션을 마치고 피스 큐레이터가 된 기분이다. 앞으로 해병대를 나온 동생과 함께 철원 땅굴 여행을 하며 피스 큐레이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나와 사뭇 다른 시선으로 땅굴을 바라볼텐데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피스모모의 첫번째 피스 큐레이션이 다음 프로그램으로 잘 이어지면 좋겠다.   🌼 같은 과정에 참여한 "효니"의 후기도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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