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 들어보셨나요? 국제 환경단체인 국제생태발자국네트워크(Global Footprint Network)에서 매년 발표하는 날짜로, 인간이 지구 자원을 사용한 양과 배출한 규모가 지구의 생산 능력과 자정 능력을 초과한 날을 말합니다. 처음 발표된 1970년대 초반 이후 점점 빨라져 2018년에는 7월 말이었지만, 2020년은 코로나의 영향을 받아 8월 22일로 조금 늦춰졌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일상을 되찾으며 2021년 7월 30일, 2022년 7월 28일로 다시 빨라졌다고 해요.

 

오늘부터 배출하는 탄소와 사용하는 자원은, 앞으로 지구가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을 미리 빌려오는 셈입니다. 요즘 금리가 높아져서 돈 빌리기도 겁나는데, 금리보다 더 무서운 생존을 담보로 하며 빌려서 쓰게 된 것이지요.

 

제로웨이스트, 플로깅, 채식 등, 덜 쓰고 덜 파괴하려는 개인의 실천은 점차 늘어가지만, 구조적 전환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개인의 실천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근래, 페트병에 비닐포장이 없어지고 페트 그 자체에 글자가 새겨진 것을 보신 적 있으실거예요. 이 변화와 더불어서 일부 기업들은 정부가 금지요소를 법제화해서 강제적으로 규정해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어요. 생산단가에서 발생하는 차이를 극복하고도 그 결정을 할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것이지요. 이렇듯, 각 국 정부들은 파리협약을 이뤘다는 것을 축하하고 홍보했을 뿐, 그에 따르는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후위기와 기업의 연계, 기후위기와 개인의 삶의 방식,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책임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거의 주목받지 않는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군대”입니다.

지구가 생태용량을 초과해버린 이 순간에도 하와이 진주만 일대에서는 사상 최대규모의 환태평양훈련(RIMPAC)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8월 3일까지 진행되는 이 훈련은 세계 26개국에서 수많은 전투기와 항공모함이 동원되었습니다.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이 연쇄적인 어려움을 보면서 더 큰 군사력으로 압도하는 대안에 집착하는 국제사회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매우 절망스럽습니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이 지구 공동체가 정말 안전해질까요?

 

2019년 미국의 브라운대의 왓슨연구소는 <전쟁프로젝트의 비용>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2001년 9.11 직후, 당시 미 대통령 조지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미 국방부는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그때로부터 2017년까지 미 국방부가 배출한 온실가스는 최소 12억1200만톤(CO₂e)이라고 니다. 단일조직으로는 세계최대라고 해요. 미국 정부 전체가 아니라 “미 국방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전 세계 “국방부”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어떨까요? 이 수치는 아직 발표된 적이 없습니다. 추정치는 있을 수 있지만요. 지금 이순간에도 태평양 위의 항공모함과 전투기들이 뿜어낼 온실가스를 생각해보세요. 수소차다,전기차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지 않나요?

 

그동안의 기후위기 대응노력이 무색해지도록 매일같이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전쟁과 군사훈련들. 군대에 대해 기후위기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왜 그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국가안보라는 이름 뒤에 숨어, 군대는 탄소 배출과 환경 오염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면제받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군대를 기후위기의 책임으로부터 면제해준 결과가 지금 이 지구가 직면한 인류 멸종의 현실이라는 것이지요.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군대에 투자할 수록 지구의 수명을 단축시켰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몇 주 전, 강원 철원군에서 대전차지뢰로 추정되는 폭발물이 터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농삿일을 위해 이동하시던 마을 주민 한 분이 이 사고로 인해 사망하셨습니다. 기후위기시대, 농업을 일구던 한 농민의 죽음이 한국전쟁 이후 지속되어 온 분단으로 인한 지뢰때문이라는 이 현실의 아이러니. 지난 정부의 군사비지출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신냉전을 이야기하는 현 상황 속에서 군사비 증강의 정당성을 만들어내는 정부들은 여전히 “안보”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안보를 위해 매설한 수많은 지뢰들이 그 농민 한 분의 안전보장에 실패한 현실에서 어떻게 더 큰 안전보장을 자신할 수 있나요? 그 안전에 포함된 사람들은 대체 누구며, 그래서 나는, 당신은 그 안전에 포함되었을지 궁금합니다.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을 맞으며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후위기를 고민한다는 것은 분단의 문제와 그에 따른 한국 정부의 군사비 지출문제를 포함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적대하고 대립하는 관계는 서로의 안전을 위협하는 전쟁위기와 생태위기의 악순환을 초래할 뿐, 모두의 안전보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 일부의 안전보장에는 물론 도움이 되겠죠. 예를 들면,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그걸 피할 수 있는 우주선 티켓을 살 수 있는 0.00000001%의 사람들이요. 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자 하시는 분들께 공존의 조건과 평화의 조건이 맞닿아있음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루고 있는 영상을 추천드리며, 피스모모와 함께 목소리내는 회원이 되시는 것도 제안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