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로그] 5년 후, 10년 후 세상은 어떻게 될까?: 드라마 “이어즈 & 이어즈(Years & Years)”를 보고

 

 

 

5년 후, 10년 후 세상은 어떻게 될까?    

: 드라마 “이어즈&이어즈(Years&Years)”를 보고

글 세현

 

*이 글은 드라마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2019년의 영국, 생방송 시사 토론회를 보여주며 드라마는 시작된다. 방청객 중 한 사람이 패널에게 질문한다.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이스라엘이 전기 공급을 하루 2시간으로 줄였다는데요.

 

 

그러자 패널로 나온 비비언룩이 대답한다.

솔직히 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라면… 신경 조또 안 씁니다. (I don't give a fuck)

 

 

이어서 그녀는 말한다.

세계 각지에서 헤드라인이 빗발치는데, 저는 우리 집 쓰레기만 매주 수거되면 바랄 게 없어요.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가 쓰레기 처리를 잘하면 좋겠고,

제발 바라건데 제어머니가 지팡이 짚고 다니시는데 인도에 주차하는 짓 좀 그만하면 안 돼요? 그만 좀 하라고요.

 

그 도발적 메시지에 방청객들은 통쾌해하며 박수치며 환호하고, 인지도랄 것이 없었던 정치 신인 비비언룩은 그 방송으로 단숨에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서며 주목 받는다. 데자뷰처럼 어딘가 겹쳐보이는 막장의 시작, 세상은 대체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드라마는 그 후 2034년까지, 15년 간의 미래를 여섯편의 회차에 꼭꼭 담아 차례로 보여준다. 마치 한 번쯤 상상해봤던 현실적 디스토피아의 종합선물(?)셋트처럼!

 

> “이어즈&이어즈” 중 한 장면

 

비비언룩이 구석기 시대에 살고 있다면, 저 발언이 그리 시대착오적 막말은 아닐 수도 있겠다. 동굴에서 먹고 자고, 자연에서 채집과 사냥을 통해 먹거리, 입을거리를 직접 구하던 그 시절에는 집 근처에 열린 열매들이 먹을만한 것인가, 앞바다에는 어떤 물고기가 있나 그게 중허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어드메 붙어있는지,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몰라도 상관 없었을거다. 그걸 가지고 무식하다거나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의식이 운운하는 사람도 없었을테고.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꽤 많이 바뀌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첨단 디지털,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하나의 우주다”, “볍씨 안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라는 이야기 들으며 마음 몽글몽글해 본 경험, 한번씩은 있을거다. 그 멋진 은유를 살짝 빌려보자면, 내가 사는 집구석에 전세계가 담겨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마신 블렌딩 커피는 온두라스, 인도, 에티오피아 커피 농부의 손길을 거쳤고, 내가 입은 미국 스포츠 브랜드의 맨투맨 티셔츠에는 메이드 인 파키스탄이라고 적혀있다. 최근 건강한 삶을 흉내내볼까 싶어서 산 유기농 퀴노아는 볼리비아와 페루에서 온 것이다. 일본 투자 기업으로부터 큰 투자를 받은 한국판 아마존, 쿠O에서 구입한 샴푸에는 프랑스의 장미향과 모로코의 일랑일랑향이 담겨 있다. 내 형편에 맞춰 가성비를 요모조모 따지며, 최대한 값싸게 구입한 이 물건들은 얼마나 정당한 노동을 통해 나에게로 왔을까. 오늘은 분리수거날이라 그간 베란다에 모아둔 플라스틱, 비닐, 깡통, 종이류를 잘 분류하여 배출했는데, 그 중 일부는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가 쓰레기섬의 일부를 이룰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타는 마을버스를 굴러가게 하는 기름은 중동 어딘가에서 왔을 확률이 높고, 그 원유 때문에 누군가는 전쟁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내 삶은 이미 신경 조또 안 쓰고 살기는 글러먹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이들의 노동과 자원, 생명에 빚을 지고 살고 있다.

 

내가 특별히 더 지나치게 의존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마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저마다 이 지구를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존재들에게 빚을 지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우리가 있다. 그러니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무작정 힐난하고 탓하기도 어렵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요 엉엉😢하며, 뾰족한 수는 없지만 그래도 덜 죄짓고 덜 상처주는 방식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이 당장에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다른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 끄고 내 집 앞만 챙긴다면 그것 참 편리하고 단순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전지구적으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윤리적 태도는 아니다.

 

문제는 드라마 속 비비언룩처럼 오늘 버린 쓰레기가 집 앞에서 수거되면 그 다음은 전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무신경과 차단의 욕구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걸 다 감각하며 살아가면 삶이 몹시 무거워지고 불편해지기 마련이니까. 빚쟁이가 나는 빚진 적 없다고,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발뺌하면 그것처럼 황당하고 염치없는 일이 있을까? 그러나 나 살기가 급급해지고 각박해지면, 사람은 종종 염치를 잃거나 잊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시켜주는 온갖 말들에 현혹된다. 만약 그런 목소리들이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세상을 지배한다면 어떻게 될까? 드라마 “이어즈 & 이어즈”는 그런 상황에서 세계의 꼴이 어떻게 되는지를 예고편처럼 보여준다.

 

> “이어즈&이어즈” 중 한 장면

*

미국에서는 막말을 일삼으며 혐오를 조장하는 트럼프가 재선된다. 중국은 홍샤다오라는 인공섬에 군사시설을 조성한다. 중국과 군사적 긴장을 이어오던 트럼프는 홍샤다오에 핵미사일을 발사하고 그 섬에 있던 많은 이들이 죽거나 피폭된다. 미중 간 분쟁의 여파로 은행들은 줄줄이 도산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파산하고 직장을 잃는데, 그 와중에 난민과 성소수자들은 더욱 사지로 내몰린다. 세계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난다. 세계가 혼란하고 앞길이 막막하니, 그에 지친 사람들은 단순 명료하고 자극적인 메시지로 선동하는 비비언룩 같은 극우 정치인에게 더욱 쉽게 열광한다. 북극의 빙하가 모두 녹고, 80일 이상 비가 내리는 이상 기후로 사람들이 살 곳을 잃고, 원숭이 독감이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들은 문을 닫고,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납치되어 어디론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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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어즈&이어즈” 중 한 장면

 

 

<2020 우주의 원더키디>가 그렸던 2020년을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그 공상과학 만화가 그렸던 미래의 지구는 사람 살 곳이 못 되어서 주로 주인공들이 우주를 떠돌았는데, 올해부터 현실로 살고 있는 2020년은 코로나19로 힘들기는 해도, 아직 여전히 압도적 다수가 우주가 아닌 지구에 살고 있다. 이어즈 & 이어즈가 그리는 세계도 실제 우리가 현실로 살게 될 미래와 다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유독 서늘하고 암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지금의 현실과 꽤나 많이 겹쳐보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피스모모를 시작할 즈음만 해도 “장기적 낙관론(*지금 당장은 변화가 보이지 않더라도, 길게 봤을 때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에 기대어 활동의 의미를 찾으며 마음 두근거리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쩌면 정말 많은 것이 늦어버렸다는 비관적 예감에 압도될 때가 더 많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지구의 위기에 대해 우리는 30년 넘게 이야기했고, 이젠 너무 늦어버렸고, 아무리 재활용을 하고 캠페인을 벌이고 행진에 참여해도, 우린 천천히 소멸하는 일만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거스를 수 없는 내리막길에 우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내가 하는 이 모든 활동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닌, 폐허 속에서 더 인간답게, 존엄하게 소멸해가는 과정을 위한 연대와 연결도 가능할까. 그 과정을 즐겁고 유쾌하게 할 수도 있을까.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지려는 찰나,

드라마 속 90세의 할머니 “뮤리엘”이 가족들이 모두 둘러 앉은 2029년의 연말 식사자리에서 호통치는 장면이 스쳐간다. 쓸데없는 감상에 젖지 말고, 세상을 더 나쁜 지경으로 만들지 않도록, 지금 당장 정신 똑디 차리고 살라는 나를 향한 꾸짖음 같이 느껴지는 것은 그냥 느낌적인 느낌일까. 갑자기 무력함에 얹혀가려던 마음이 뜨끔해진다.  

 

“잘못된 일은 모두 다 너희 탓이야. 왜냐하면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앉아서 종일 남 탓을 해. 경제 탓을 하고, 유럽 탓을 하고, 야당 탓을 하고, 날씨 탓을 하며, 광대한 역사의 흐름을 탓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핑계를 대지. 우린 너무 무기력하고 작고 보잘것없다고 말이야.

 

그래도 우리 잘못이지. 왜 그런줄 아니? 1파운드 티셔츠 때문이야. 1파운드짜리 티셔츠는 거부할 수가 없지. 우리는 모두 1파운드 티셔츠를 보면 이렇게 생각해. '완전 거저네 맘에 들어' 그러곤 사지. 좋은 품질은 아니지만 겨울에 받쳐 입을 티셔츠 하나 있으면 좋잖아. 가게 주인은 티셔츠 값으로 달랑 5펜스를 받아. 밭에서 일하는 어떤 농부는 0.01펜스를 벌고. 그래도 우리는 그게 괜찮다고 생각해. 값을 치르고 평생 그 시스템을 믿지.

 

난 모든 게 잘못되는 걸 봤다. 시작은 슈퍼마켓이었어. 계산대 여자들을 자동계산대로 바꾼 게 시작이었지. 그게 싫어도 다들 아무것도 안 했잖아. 거리 시위는 했니? 항의서는 썼어? 다른 곳에서 장을 봤니? 안 했지. 씨근덕대기만 하고 참고 살았어. 이제 계산대 여자들은 다 사라졌다. 우리가 이 지경으로 놔둔거야. 실은 우리도 좋아해. 그 계산대를 좋아하고 원해. 거닐다가 장 볼 물건을 고르기만 하면 되거든. 계산대 여자와 눈 마주칠 일 없지. 우리보다 적게 버는 여자 말이야. 이제 없어졌어. 우리가 없앴고 쫓아낸 거야. 참 잘했지. 그러니까 우리 탓이 맞아.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

 

축하한다. 다들 건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