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아시아 평화활동가 연구 컨퍼런스에 다녀왔어요 by 영철

11월의 어느 주간, 캄보디아에 다녀왔습니다. CPCS(Center for Peace & Conflict Studies)에서 아시아 평화활동가 연구 컨퍼런스를 개최하며 피스모모도 초대해주셨거든요.

 

사실 언제부턴가 컨퍼런스/포럼에 참여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이러한 자리를 기회 삼아 새로운 내용과 관점을 나누고 배우는 것은 참 소중하고 계속 해야하는 일이지만요. 그와는 별개로 내용을 나눔으로써 무엇을 할 것인지, 돈과 시간을 많이 들여서 진행했는데 그 기대효과는 무엇인지, 다양한 내용이 사회적으로 축적되고 있는 것일지 불명확한 경험이 쌓여왔거든요. 위험하게 요약하자면 '운동'으로서의 컨퍼런스보다는 '행사'로서의 컨퍼런스를 많이 접했습니다. 참여하는 것이 어떤 대단한 효과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환상과 같이요.

 

그렇지만 민주주의와 평화,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성과가 후퇴하는 것 같은 현실에 암담해 하던 터라,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를 만나며 달라질 수 있을 무언가를 기대하며 참석했습니다. 피스모모를 대표해(?) 참여하게 되었기에 열심히 기록하고 공유할 좋은 책임감을 가지고요.

 

 

 

20개 이상의 지역에서 약 120분이 참여하셨어요. 

세상에, 이렇게 큰 원이라니!

 

21세기의 평화세우기를 위한 다원주의적 접근, 시스템과 구조를 넘어서기 위한 갈등전환 측면에서의 접근으로 공동의 논의 기반을 마련하고, 여러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발제가 진행되었습니다. 스리랑카, 암바조니아, 파타니를 비롯해 한반도에 대해서도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암바조니아와 파타니의 독립 투쟁에 대해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각각의 지역적, 종교적 특수성이 있지만 결국 식민지배부터 시작된, 해방 이후에도 온전히 보장되지 못한 자기결정권의 박탈이라는 측면에서는 한반도와 유사한 점이 많더라고요.

 

잘 살펴보지 않으면 한 줄의 뉴스로 지나갔을, 주로 힘 있는 자의 입장에서 서술되었을 이야기를 피억압자의 시각에서 낯설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거대해 보이는 폭력을 줄여가는 시민들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각 지역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투쟁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알고, 관심 가지며, 연대하는 것이라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재확인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컨퍼런스 내용의 요약입니다.

 

 

 

공간 뒤편에는 참여자가 컨퍼런스에 참여하며 드는 생각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이 있었어요.

새로 배운 것 / 여전히 남는 질문 / 나누고 싶은 성찰 지점이라는 3개의 카테고리로 나뉩니다.

 

 

여러 사례 발표가 있었는데요. 그 중, 한국 시민사회의 종전평화캠페인의 사례도 소개되었습니다. 2020년 시작된 한반도 평화 선언에 서명한 사람의 수는 현재 12만 여 명입니다.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닙니다만, 한국의 7대 종교를 비롯한 37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개인 제안자, 그리고 70여 개 국제 파트너 단체가 함께하며 전 세계 1억 명의 서명을 목표로 하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운 성적입니다.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들만을 기준으로 해도 약 0.2% 미만으로 추정되니까요.

 

'전쟁을 끝내자'는 명료하고 포괄적인 메시지, 어렵지 않은 참여 방법인 서명에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다른 사례들보단 한반도 케이스에 익숙한 저로서는, 내용이나 전략 측면에서의 잘한 점을 나누고, 아쉬운 점을 나누고, 도전과 한계를 나누고, 낯선 눈으로 보았을 때 더할 수 있는 지혜가 나눠지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코리아 피스 어필의 중요성과 의의에 동의하며 서명으로 연대하자는, 익숙한 방식의 논의가 진행되었지요.

 

한국전쟁을 끝내자는 메시지와 개별의 사례는 또렷하지만, 그렇게 또렷하게 보았을 때 놓쳐지는 지점들은 없을까요? 피스모모가 현재 한반도에서 진행 중인 갈등을 동북아시아-지역 갈등으로 규정하며 시선을 옮겨갈 필요를 제안하며 이야기하듯, '한국전쟁을 끝내자', '한반도에서 핵을 없애자' 등 한반도에 집중하는 메시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식 진형에서 결국 북에게 책임을 돌리는 방식으로 귀결되기 마련이었는걸요. 대리전으로서의 한국전쟁을 규명하기에도, 중미일러가 관여하며 현재진행 중인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다루기에도 충분하지 않고요.

 

피스모모의 관점이 맞으니까 이대로 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좀 더 얘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컨퍼런스에서 나눠진 모든 사례가 구조적-국제적 차원의 측면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공동의 연결고리인 탈식민주의적인 구상을 바탕으로 어떻게 연대하면 좋을지 등을 나누고 싶은데, 현장에서의 논의는 주로 평화를 위한 각자의 저항과 활동들을 보고하고 알리며, 개별의 고통에 집중하는 내용이었거든요. 여러 지역의 운동 사례에 대해 더 잘 알고 갔다면 현장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한반도 이외에는 새로운 정보들을 학습하느라 급급했던 저의 부족함도 같이 나눕니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필리핀의 JAY님과

 

 

처음엔 컨퍼런스 내용을 잘 정리해 공유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저는 '이런 구성의 컨퍼런스/포럼에 참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여야 할까', '이후 여타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다면 어떤 방향성이어야 할까'를 생각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로 힘주며 배우는 장을 만드는 것 정말 중요한데요. 서로 힘주며 배우는 장을 더 잘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 활동가로서 서로 힘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우리끼리 따뜻하고 좋은 것, 모든 사례에 긍정적으로 의미 부여하는 것 그 이상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동료로서 어떤 빈 공간을 채워줄 수 있을까, 현재의 전략/메시지에서 효과적이지 못한 부분이나 의도와 다른 영향을 내고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참여자의 경험/관점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더해질 수 있을까 등을 논의하고 실행하기 위한 방향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며 축하하는 자리보다는 다른 사람의 경험/관점에 비추어 나를 보고, 내 경험/관점에 비추어 다른 사람을 보는 자리, 그리하여 참여한 모두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자리, 여러 컨퍼런스가 그 방향성을 잘 담아냈으면 좋겠어요. 돈과 시간 많이 들여서 준비하고 진행한 일련의 노력들이, 정말로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