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24 모모평화대학 가을학기-평화권을 마치며 by 신현오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단어 중 하나는 “평화” 또는 “평화적 생존권”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새롭게 제정된 일본국 헌법의 전문에 있는 “평화 속에서 생존할 권리” 와 일본국 헌법 제9조의 “영구적인 무력 행사의 포기와 전력 불보유”, 즉 “전쟁 포기”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대다수의 일본 시민들은 일본국 헌법 전문의 “평화 속에서 생존할 권리”와 전력 불보유 및 전쟁 포기를 규정한 일본국 헌법 제9조를 매우 중요시하면서 평화의 개념을 “구조적 폭력과 결핍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까지 넓혀서 논의를 하고 “평화 국가”로서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있다. 일본에서 대학 학부생 시절부터 대학 강사가 된 지금까지 지내면서 궁금했던 것은 한국에서는 “평화” 혹은 “평화적 생존권”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고, 관련해서 ‘어떻게 논의가 되고 있을까’ 라는 점이었다. 마침 일본의 학계에서도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군축과 평화 실현 방안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일본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로서 한일 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평화담론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서 이번 2024 모모평화대학(평화권) 가을학기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다.


수업은 총 다섯 번이었고 네 번은 온라인으로, 마지막 다섯 번째 시간은 오프라인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첫 번째 시간에서는 “평화권”이라는 개념을 일본의 “평화적 생존권”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관련 개념을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인간을 중심으로 한 인권 논의가 이제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정의와 존엄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시간에서는 대한민국의 헌법 개정사를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훑어주셨는데, 1948년의 제헌헌법부터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헌법에서 “평화주의”가 어떻게 반영되고 어떻게 축소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특히 “국가안보” 개념이 1972년에 개정된 헌법에서 처음 등장하고 더불어서 한국군의 베트남, 이라크 파병의 빌미를 열어 준 “국토방위 삭제”의 의미를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시간에서는 이라크 파병과 평택 미군기지, 양심적 병역거부 등 평화권과 관련된 여러 사례들을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주셨는데, 헌법재판소가 평화권을 인권이라고 인정했다가도 인권이 아니라는 퇴행적인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법원이 미군기지 확장에 따른 시민들의 소송에 관해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회피한다는 “통치행위론”을 내세우며 사법판단을 회피하긴 했지만 평화적 생존권에 대해서는 인권으로서 깊게 다루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국방과 안보, 외교에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보게 되었다.


네 번째 시간부터는 게스트 스피커의 발제를 듣게 되었다. 먼저 김한민영님을 통해서는 한국의 군사주의 문화가 여성과 성소수자, 평화 활동가의 민주적 권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게 되었고, 김가연 님을 통해서는 이분법과 군사주의에 기반한 대중 미디어의 보도가 자칫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가연 님께서는 갈등 예방에 도움이 되는 보도 약속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제안을 해 주셨는데, 미디어의 보도의 방향에 따라 갈등의 방향이 크게 좌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평화권에 관한 중요한 담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프라인으로 진행되었던 마지막 시간에는 윤석님을 통해서 개발의 논리로 무마되어 온 자연 파괴를 범죄로 명명하고 이를 평화롭게 향유할 권리로 해석한 에코사이드의 담론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가람 님을 통해서는 지금까지의 불법적인 전쟁의 형태가 AI와 결합되어 부정적으로 강화될 수 있는 지점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특히 에코사이드와 AI를 평화권과 연결짓는 논의에 대해서는 조금 생소하기도했지만 헌법에서 말하는 평화권과 어떻게 연결짓고 논의할 수 있는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매우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더불어서 평화권에 대한 논의가 이제까지 알던 범위보다 훨씬 더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일본에 비해 한국에서는 “평화” 또는 “평화권”에 관한 논의의 범위가 분단 국가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주로 남북 통일과 관련된 이야기에 머무르는 등 매우 범위가 제한적이었다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이번 2024 모모평화대학(평화권) 가을학기를 수강하면서 지금까지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에코사이드와 AI등 훨씬 다양한 방면에서 헌법에서 말하는 평화권의 개념을 가지고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유익했다. 또한 피스모모에서 강조해 주시는 것 중 하나가 “서로 배움”인데, 참여자분들과의 토론을 통해서 보다 새로운 시각에서 이 평화권에 관련된 이슈들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최근에는 피스모모에서 정립해 주신 “조기경보론”을 참고하여, “군사적 억제력”에 근거한 기존의 안전보장론이 아닌 “군축”에 근거한 동아시아의 이른바 “새로운 안전보장론”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일본의 학계에서도 평화권과 관련된 한국에서의 논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우선은 소속되어 있는 연구회에서 이번 2024모모평화대학(평화권) 가을학기에서 배우고 토론한 내용을 공유하면서 일본 학계 여러분들의 의견을 청취하고자 한다. 그리고 앞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피스모모 여러분들과 연대하면서 “서로 배움”을 통해 일본 학계의 의견을 공유하고 한국에서의 논의 내용 및 방향에 대해서도 일본 학계에 공유하면서 한일의 평화담론,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평화담론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조금이나마 공헌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 본다.

다시 한 번 강의를 맡아 주신 이경주 교수님과 게스트 스피커 여러분들, 그리고 너무도
유익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주신 피스모모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