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어느 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와 출근 시간이 겹쳤습니다. 먼저 동료들에게 사무실 도착이 조금 늦어진다고 양해를 구했어요. 평소라면 핸드폰 화면만 보다가 사무실에 도착했겠지만, 지하철이 멈춰선 참에 같은 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천천히 살폈지요.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겉으로 분노를 표시하거나 불편을 토로하는 분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저는 미디어가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적대감을 과다재현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자가용 없이 다니다 보면 종종 무거운 짐을 끌고 다니게 될 때가 있는데요. 엘리베이터 없이 펼쳐진 까마득한 계단을 보면 아찔해지거든요. 이럴 때마다,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덕을 크게 봅니다.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으실 거예요. 유아차와 같이 외출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몸의 일부를 다치게 되거나, 저처럼 무거운 짐을 들거나, 어떤 날은 정말 피곤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은 날도 있으니까요. 엘리베이터는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든 모든 이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셈이지요. 장애인 이동권 운동의 덕을 모두가 보고 있는 셈입니다.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는 2022년 기준 수도권 지하철역의 93%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고 언급하면서 장애인 이동권 시위의 방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그 93%의 설치율은 그런 장애인 이동권 시위 덕분에 만들어진 숫자입니다. 이준석 대표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의 결과를 예로 삼아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비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뿐인가요?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인해 피해를 받는 ‘선량한 시민’을 옹호하는 이준석 대표의 갸륵함은 그저 가장 쉬운 이분법, 갈라치기의 전형에 지나지 않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는 엘리베이터 설치비율로 설명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장애가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시민들이 동등한 이동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책임이 이 사회에 있으니까요. 특정한 시민들에게 이동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것은 차별이 맞으니까요.
저상버스가 도입되었지만 휠체어를 이용하시는 분들에게 저상버스를 통한 이동은 여전히 불안하고 어렵습니다. 배차시간에 쫒기는 기사님들이 휠체어를 안전하게 고정시키고 출발해야 할 운전자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도 빈번하고, 휠체어가 타고 내리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탑승객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비장애인들이 앱을 통해 택시를 예약하고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10분을 넘기지 않는 현실에서, 장애인 택시의 평균 대기시간은 1시간에 육박합니다.
나는 차별주의자도, 혐오주의자도 아니지만, 이런 시위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이런 시위 방식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데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은 어떨까요? 부디, 장애인 이동권을 둘러싼 이 논의들이 얄팍한 논리로 면피하는 토론에 멈추지 않고, 안전을 모든 시민의 것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동권은 모두의 것이며, 모두의 이동권이 보장되는 것이 곧 평화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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