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평화교육 진행자 되기 입문과정을 통해 느꼈던 서로 배움의 온기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일상에 이내 찾아온 봄처럼 새롭고 따뜻했기 때문이리라. 입문과정을 마치고 난 후에는, 모모를 통해 경험한 이 따스한 온기를 빨리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일상 속에서 평화를 이야기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낯설게 보고, 서로 배움의 기운을 촉진하는 자리를 만들어 보려는 작은 시도들이, 때때로 거절당하거나 좌절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에 따스하게 간직해온 배움의 온기도 조금씩 식어가는 것 같았다. 그때 문득, 따스한 온기와 용기를 불어넣어주던 모모와 배움 친구들이 떠올랐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고 했던 아프리카 속담처럼, 나는 이 배움의 여정을 더 천천히, 그리고 멀리 걸어가 보기로 했다. 어쩌면 지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배움 친구들의 손을 꼭 잡고. 🙂
어느덧 알록달록 고운 옷을 입고 찾아온 가을, 10월의 마지막 주에 우리는 평화교육 진행자 되기 심화과정으로 다시 반갑게 만났다. 무릎과 무릎을 맞댄,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거리 속에서 다정하게 건넨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동안 일상에서 직접 실행해보았던 평화교육의 진행 경험, 주제, 대상,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포스트잇에 정리해보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몇 번의 평화교육 진행 경험을 통해 느꼈던 질문과 고민의 지점들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또다시 나에게 새롭고 낯설게 다가왔던 시간이었다.
생각이 많아지고 질문이 많아질수록 ‘당’ 또한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 몸이 반응하는 것을 보니, 지금 내가 스스로 사유하며 배우고 있는 것이 확실하구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나는 쉬는 시간마다 풍성하게 채워진 간식 테이블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왜 모모 교육 때 나누어 먹는 모든 음식은 이토록 달고 맛있는 것일까. 🙂
오후에는 입문 과정 때 배웠던 내용들을 다시 정리해보면서, 평화교육 진행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다양한 생각들을 주고받으며 진행자의 역할에 대해 새롭게 고민해볼 수 있었다. 특히 입문과정에서 중요하다고 느꼈던 배움 준비&열기 과정에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진행자의 요약&연계 역할에 대한 중요성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어서 ‘군사주의와 젠더‘라는 주제로 ’개념 지도‘(Concept map)를 그려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마인드맵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 다른 체계도였다. 의미를 연결하는 동사를 찾아보고 함축적 언어로 표현해 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하나하나 연결해 보면서 전체적인 내용과 구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질문법 시간이 찾아왔다. 이번 심화과정을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싶었던 것이 바로 질문법이었다. 평화교육 진행자로서 어떻게 좋은 질문을 찾아내어 건넬 수 있을까? 항상 고민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소그룹별로 제시된 사진 카드를 보며 질문을 구성해보는 활동을 했는데, 역시나 녹록지 않았다. 8가지나 되는 다양한 질문법을 익히는 것도, 사진 카드와 질문을 적절하게 연결시키는 것도 무척 어려웠다. 그래도 다양한 의견 제시와 토론을 통해 조금씩 질문의 실마리들을 찾아나갈 수 있었고, 다른 소그룹에서 파견 나온 진행자와 만나며 또 한 번 새롭게 성찰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심화과정 2일 차에는, 어제 진행했던 활동을 떠올리며 배움의 흐름들을 되짚어보았다. 오전에는 활동 실습 위주로 진행되었는데, ‘윗마을, 아랫마을’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마을에 큰 홍수가 나면서 윗마을과 아랫마을에 벌어진 갈등 상황극이었다. 활동을 통해 갈등의 진행상황을 관찰하고 분석해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건들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렇게 일상에서 마주치는 갈등 상황들을 어떻게 조정하고, 중재하고 전환할 수 있을까? 베르크 호프재단의 갈등 카드를 살펴보면서 조정과 중재, 전환의 방법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오후에는 평화교육 디자인 및 시연 준비를 시작했다. 운명적으로 만난 짝꿍과 함께 활동을 구성해보고 직접 시연해보면서 피드백을 받아보는, 심화과정의 ‘고농축 에센스’ 같은 시간이랄까. 짝꿍과 활동을 구상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아서 아쉬운 면이 있었지만,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조율해가며 활동 안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 참 좋았다. 먼저 준비가 된 다른 팀의 진행 시연을 관찰하면서 구성의 기발함에 놀라기도 하고, 유연한 대처 능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진행의 흐름상 조금 더 보완했으면 하는 부분들을 같이 발견하고 피드백 해주었다. 진행자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든든한 서로 배움의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막상 내가 진행 시연을 했을 때는 떨리는 마음에 말도 잘 못하고, 생각했던 것처럼 진행이 되지 않아 애태우기도 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얻게 된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무척 뿌듯했던 시간이었다.
이틀간의 심화과정을 마치고 나서 느꼈던 것은, ‘아직도 나는 갈 길이 멀다‘ 는 것이다. 하지만 평화를 향한 이 먼 여정을 함께 걸어가 줄 배움 친구들이 있어서 참 고맙고 든든하다. 삶의 여정 가운데 만나게 될 모든 존재들과도 서로 보듬으며 함께 손잡고 걸어갈 수 있게 되길. 불편하더라도, 더디더라도 모두가 함께 평화를 노래하고, 춤추고, 행동하는 세상이 되길 기대하며 오늘도 힘차게 한걸음 내디뎌본다. 🙂
– 참여자 갱갱(이수경)님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