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축하하고, 애도하며

 

 

“당신이 나에게 왔을 때 그때는 딸기의 계절

딸기들을 훔친 환한 봄빛 속에 든 잠이

익어갈 때 당신은 왔네”

 

2020년 겨울이 봄을 맞이할 때 모두에게 다가온, 자신을 자신으로 규정하며 혐오에 당당하게 맞서고자 했던 변희수님을 기억합니다. ‘군생활을 계속 하고 싶다’, ‘나라를 지키고 싶다’는 의사를 존중하면서도 군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던 사람. 한 번도 만난 적 없어도 깊은 애정과 연대감을 느끼게 했던 신비한 사람. 누구나 그렇듯이 존재가 선물인 사람.

 

한창 딸기 철이어서 그랬을까요. 사람이 딸기만큼이나 아름다워서 그랬을까요. 허수경 시인의 “딸기”를 읽으며 자연스레 그녀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2020년의 봄은,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사회에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가시화되었던 시기였어요.

 

존엄하고 고유한 존재를 반대하는 터무니 없는 목소리에 같이 맞서고 싶었고 용기를 보태고 싶었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주어진 이분법을 넘어, 자신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빈 이름표를 건네고 싶었습니다. 2009년 레이첼 크랜달(Rachel Crandall)이 ‘트랜스젠더로 사는 것, 트랜스젠더인 것을 긍정하자’며 제안한 국제트랜스젠더가시화의날을 축하하면서요.

 

“당신이 오는 계절,

딸기들은 당신의 품에 얼굴을 묻고

영영 오지 않을 꿈의 입구를 그리워하는 계절”

 

꼬박 1년이 지나 다시 딸기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꿈의 입구는 어디였던가요, 어디일까요. 은용님, 김기홍님, 변희수님, 동료 시민들이 연달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국제트랜스젠더가시화의날을 축하하고 싶은데, 축하의 말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기를 기억하며,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엔 무엇이 있을지 챙겨보고 싶습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안전함을 만들어내는 여러 시공간 조각을 차곡차곡 모아봅니다.

 

“Anyone can use this restroom regardless of gender identity or expression.” (성중립 화장실 문구)

“네가 너인 것에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필요는 없어.” (웹툰/드라마 ‘이태원클라쓰’ 중)

“언젠가 우리에게도 스톤월 항쟁처럼 투쟁과 승리로 기억될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우리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하고 있는 싸움에 지치지 말아요. 끊임없이 연대하고 함께 투쟁합시다. 혐오는 절대 이길 수 없으며,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걸 기억합시다.” (숙명여대 합격생 A님과 변희수님이 주고받은 편지 중)

 

이밖에 어떤 조각들이 있을까요. 동료 시민들의 죽음을 마음 깊이 애도하며, 인간으로서 존엄함을 지키고 확장하며 치열하게 만들어내 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다른 존재의 안전함을 해치는데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기여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고민과 함께요.

 

※ 본문에서 인용한 시구는 허수경 시인의 “딸기”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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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모모 #평화는모두의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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