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모모와의 만남_장현 / 2018 평화교육 입문과정 11기

 

 

1.

인생은 만남과 이별의 조합이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자아의 모습은 각각의 특이성을 띄면서 변형된다. 어찌보면 사람은 만나온 사람들이 조연이 되는 책 속의 주인공이다. 따라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가 살아오면서 겪은 산전수전과 질곡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과 같다. 시집이나 수필집처럼 감성적인 사람도 있겠고, 철학이나 수학처럼 분석적인 사람도 있겠고, 화첩이나 악보지처럼 예술적인 사람도 있겠고, 모두를 아울러 가진 백과전서적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이 때는 단순한 점이나 선, 색칠한 도형, 몇 개 단어와 문장으로 쓰여진 책이었다면 점차 이런 사람책, 저런 사람책을 만나면서 어휘와 문장이 늘어가고 책은 한 장 두 장 추가되면서 두터워질터이다. 그렇게 우리 세계는 풍부해진다.

 

2.

모모도 내 책의 한 챕터를 차지할만큼 중요한 책들의 서고이다. 모모의 인연은 몇 년 전 우양평화강사들의 워크숍의 한 과정을 담당했던 아영과 세현의 평화감수성 강의를 들으며 시작되었다. 몸으로 익히는 평화교육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두뇌도 몸의 일부인데, 왜 나는 몸으로 익힌다는 의미를 두뇌를 제외한 신체을 이용한 배움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여튼 전통적 교실교육처럼 책상에 앉아 한 명의 강사에게 수업이 아니었다. 참여자가 모두 가르치고 배우는 형태의 교육은 모모의 교육관(모두가 모두에게 배운다)과 함께 집단토론, 협력, 경청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다.

 

3.

그 이후 우양평화강사로 평화교육을 하면서 마음 한 켠에는 모모의 평화교육철학과 그 시스템들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이 늘 가득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어느날 기회가 닿아 또다시 지인과 함께 모모가 주최한 행사에 참여했다. 눈에 익은 아영과 세현이 보였지만, 그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영과 세현은 동시에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고 나는 모모의 “꽃”이 되었다. 한 사람이 내게 온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고, 하나의 세계가 다가오는 것이라고 정현종이 말했다. 한 사람이 멀어진다는 것, 더 이상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안부도 묻지 않으며 지어 그의 얼굴이나 이름까지도 잊는다는 것은 역시나 엄청난 일이다. 그의 세계와 함께 했던 나의 세계-우리세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대부분 우리는 “우리세계”가 망각되어가는 것조차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들은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을텐데, 나와는 2시간 정도의 만남이 전부인데, 나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주는 그들이 너무나 놀라웠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틀림없다.

 

4.

또 다시 이어진 인연으로 6월에 진행되는 11기 모모 평화교육 입문과정도 듣게 되었다. 모든 활동과 강의들이 별처럼 빛나지만 몇 가지만 추려서 이야기하자. 첫 날 참여자는 네임카드에 본명을 써도 되고 닉네임을 써도 되었다. 이름은 그 지시체를 지시하는 기능만 있을 뿐 그 본질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나는 본명을 쓰기로 했다. (장현이라는 내 이름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발음도 어렵지만, 종종 어떤 사람들은 나를 창현이라고 부른다. 다년간의 이런 경험으로 시력이 저조한 사람들만이 창현으로 부른다는 우주과학논문에 실릴만한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해내었다) 따라서 본명이든 닉네임이든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참여자들의 얼굴도 그들이 살아온 세계를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5.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중 하나는 “평화의 시 짓기” 이다. 각자가 쓴 한 구의 시를 서로 이어 붙여 한 편의 시를 창작하는 활동이다. 각자 의도하려는 바는 달랐겠으나 그것들을 합치는 훌륭한 시가 되었다. 우리 조의 시도 뛰어났지만 다른 조의 시도 빛났다. 하지만 무슨 의도에선지 이 교육의 진행자 대훈이 각 조에 하나의 서류봉투를 전했다. 봉투 안에는 볼드체의 고딕체로 어떤 “[활동지침]”이 담겨 있었다. 망설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곧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훈이 카운트다운을 했다. 미션 완료 후 대훈이 물었다.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왜 지침을 따랐는지 혹은 따르지 않았는지, 어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들의 아름다운 시를 찢는데 성찰없이 동참하게 했는지?… 진행자의 더 큰 의도가 있을 것이라거나 화가 났다거나 침묵이 소통을 불가능하게 했고 종이를 찢는데 제동을 걸 수 없게 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제일 큰 난관은 이 활동이 너무 폭력적이라고 생각해서 고통스러워하던 한 참여자 때문에 생겼다. 우리 사회 구조와 개인 안에 숨어 작동하는 권력과 폭력을 알아보고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기획되었던 이 활동은 그 참여자에겐 너무 버거운 항원이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상대에게 깨우침을 주려는 시도도 때때로 그에겐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평화교육의 딜레마를 깨달았다.

 

6.

입문과정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나열하고 그 의미를 여기에 적기엔 너무나 지면이 모자라다. 또한 11기 참여자들의 하나하나의 얼굴들이 자아내었던 따뜻한 표정들, 그들의 온 몸에서 발산되었던 지혜로운 명언들과 배려들 역시 어떤 아름답고 명료하고 날카로운 언어로도 담아내기엔 너무 크다. 하지만 표현되지 않고 기록되지 않으면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 경험이므로, 졸필로라도 모모와의 만남, 입문과정 참여자들과의 만남을 적어본다.

 

 

 

 

 

 

 

 

 

 

 

 

– 참여자 최장현님 나눔

2018.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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