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교육', '진행자', '되기'
단어 하나하나에 모두 이끌렸던 타이틀이었다. 막연하지만 평화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여기에 더해져 평화에 대한 교육이라니! 더욱이 교육을 진행하는 진행자 과정이라니! 내용이 궁금해졌고 설레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을까, 이 과정을 통해 만나게 될 사람들은 누구일까, 과정을 마친 후 내 모습은 어떨까? 웹자보를 보고 마음은 너무 끌렸지만 동시에 망설여지기도 했었다. 평일에 직장생활로 바쁜 삶을 살아가는 상황에서 토요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내야 하는 것에 몸이 따라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고민이 무색할 만큼 피스모모와 함께하는 매주 토요일이, 매 순간순간이 '참여하길 너무 잘했다'라는 생각으로 가득 채워졌다.
아하! 하는 순간들
활동 하나하나를 함께하며 가장 많이 맴돌았던 말은 아하!, 와…!, 아니 도대체 이 활동은 어떻게 기획하신 거지? 였다. 첫 시간 나누었던 ‘사소해도 괜찮아’, ‘느려도 괜찮아’, ‘달라도 괜찮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배움은 이미 시작되었던 것 같다. 당연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만 했던 말들이 실제로 내 삶에서 나는 어떻게 적용하며 살았나 돌아보았으니 말이다.활동 하나씩을 마칠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배우는 평화교육, 일방향적인 교육이 아닌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교육, 처음에는 막연하게 느껴졌던 이 말들이, 그때그때 너무 확실하게 다가왔다. 여러가지 새로운 방법의 인사를 나누는 활동을 통해서 비언어적 소통에 대해 관찰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섬세함과 알아차림의 중요성, 곧 평화 감수성에 대한 배움이 시작되었다. 인형극 활동을 통해서는 힘, 관계, 권력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갖게 되었는데, 관계안에서의 권력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섬 활동을 통해서는 경계에 대한 경험을 시작으로 위축의 경험과 느낌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위축을 느끼는 또 다른 존재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졌다. 활동이 진행되는 4주 동안 어느 누구도 평화란 OOO이라고 정의를 내리거나,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각자의 키워드와 생각들, 그리고 아하! 하는 순간들로 평화에 대한 배움이 채워지고 풍성한 나눔이 이루어졌다.
낯설음에서 안전함으로
평화교육 진행자되기 과정 첫 시간에 뽑았던 나의 표현 카드는 ‘낯설음’ 이었다. 낯설음으로 시작했던 모임의 시간이 안전함으로 가득 채워지며 마무리되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나와 다른 경험과 배경을 가진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안전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우리가 ‘평화’라는 키워드 하나로 모였기 때문이 아닐까. 함께하는 선생님들 가운데서 그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환대와 따뜻함을 느꼈다. 나의 이야기와 생각을 편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곳, 나를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곳, 참 소중하고 감사했던 안전한 배움의 시공간이었다. 교육 장소에 처음 도착했던 순간 가지님의 환대의 그 따뜻함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아지랑이 같은 평화
마지막 4주차 모임에서 지난 4주간의 시간을 돌아보며 조별로 평화의 시를 적어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 평화의 시의 내용 중 한 문장이었다. '아지랑이 같은 평화'. 4주간의 시간을 돌아보니 평화가 아지랑이처럼 느껴졌다. 활동을 통해 평화에 대해 고민하고 배움동무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평화가 가까워지는 것 같았고, 마치 만질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고민할수록 평화는 잡히지 않는 거대담론 같았고, 낯설게 느껴졌다. 평화에 대해 굳이 고민하지 않고, 단순히 머릿속에 떠올랐던 이미지처럼 분쟁이 없는 상태로만 생각했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던 평화라는 단어가, 평화에 대해 고민하면 할수록 무언가 이룰 수 없는 이상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안에서 느낀 평화는 분명 존재했기에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일상에서의 평화
나는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며 지원하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활동의 현장에서 일을 할수록 이 사회에서 평화는 너무 먼 이야기 같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데 이 과정에 함께 참여한 선생님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금 희망을 보았다. 이 분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에 돌아가서 평화를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나가겠구나. 그러면 조금씩 이 세상에 평화가 드리워지겠구나. 나도 얼른 내 자리에 돌아가서 내가 느낀 이 희망과 가능성을 나누고 싶어졌다. 평화를 모두의 것으로 만드는 일, 일상에서 평화를 경험하는 일. 그것에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싶어졌고, 가능성을 보았다. 평화는 모두의 것이니까.
위 사진은 활동하면서 내 마음에 콕 박힌 단어 ‘더듬이’를 표현했던 사진이다. 감수성이라는 단어를 어느 순간부터 자주 사용하면서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었는데, 더듬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머릿속에 콕하고 잘 박힌 것 같다. 우리가 그동안은 느끼지 못했던 것을 세심함과 섬세함으로 더듬이를 쫑긋 키워 알아차리는 것. 이번 4주의 시간을 통해 내 더듬이가 조금은 더 자라난 것 같다.
2021년 11월의 어느 날,
하랑/김하은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