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23 모모평화대학 초여름학기 by 푸른

 

 

모모와의 인연을 시작한 것도 모모평화대학이었다. 2015년 봄학기! 그 때부터 몇 차례 모모평화대학 과정에 참여했는데,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참여할 때마다 나는 늘 마음 한 켠에 '쪼글쪼글 꾸깃꾸깃' 들키고 싶지 않아 숨겨둔 마음이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토론이라니. 내가 그런 어려운 주제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너무 멍청한 질문밖에 생각나지 않으면 어쩌지?’

 

게다가 나는 지리산 언저리에 살고 있다. 길거리에 서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광판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원한다면 아주 한참 동안도 책이나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 일상에서 빈틈없이 지속되는 세상과의 소통은 지역민들이 삶에 필요한 정보를 나누는 밴드(SNS) 몇 가지와 직접 만나는 사람들과의 교류 정도다. 우리 지역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일만 해도 다 참석 못할 만큼 가득하고 (동네 카페의 북콘서트와 동네 뮤지션들의 공연, 동네 장터와 동네 배움터의 강연자리, 이웃동네의 영화제나 문화제, 잔치 등등), 우리 지역에서 생겨나는 문제만 해도 하나도 채 제대로 붙잡고 해결하기 어려울만큼 크고 많다. 반복되는 지리산 케이블카 추진 문제, 골프장 문제, 다양하게 후퇴하는 정책들이 그렇다. 게다가 나는 최근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돌을 앞둔 아기를 육아하며, 뱃속에 또다른 아기를 품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정부에서 쉴틈없이 망가뜨리는 많은 것들과 정치 흐름, 세계의 분쟁과 외교문제 등에 관심을 가질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그런 커다란 국가/세계의 문제들과 나는 더 거리가 멀어진 것처럼 느끼는데다, 내 눈앞의 삶, 우리 집안 돌보기와 내 가까운 이웃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둘러보기에도 빠듯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내가 아무것도 못 알아들을까봐, 나는 듣기만 하고 아무에게도 배움의 재료가 되지 못할까봐)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모모에서라도 꾸준히 세상의 이야기를 충전하고 싶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싶은 마음 하나로 덜컥 모모평화대학에 참가신청을 했다. 

 

육아모임을 이끌고 있기도 한, 육아 경험이 있는 가연님께서 미리 아이도 함께 참석하는지 물어보고 바닥에 깔 매트를 챙겨주셨다. 매트에 짐을 풀기가 무섭게 먼저 와 계신 모두가 아이와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어주셨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모모의 무지개빛 환대의 에너지를 흠뻑 느끼는 것 같았다. 이렇게 온 몸의 감각으로 느끼고 익히는 평화는 참 소중하고 중요하다. 

 

자, 이제 기후위기와 군사활동의 은밀한 관계를 들여다보기. 진짜 내가 알아들을 말이 있을까? 일단 열심히 들어봐야지. 가연과 뭉치의 발제에 끄덕끄덕, 계속 끄덕여졌고 내 안에 무언가 쌓이고 조금 더 연결된다는 느낌은 있지만 평소에 공부를 꾸준히 하지 않아서인지 여전히 정돈된 말로 그것들을 꺼내기는 아직 어렵다.

 

대훈의 발제 쯤부터, 아이가 격하게 호응하기 시작했다. 대훈의 한마디 한마디에 커다란 비명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통역: ‘이모, 삼촌들! 공부 그만하고 나랑 놀자!’) 마음이 옴싹옴싹, 다른 분들의 공부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잠시 아이를 달래는 데 집중했다. 아영의 발제도 멀찍이서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참여해주신 모두께, 이해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그룹 토론에서는 발제를 들으며 떠오른 나의 일상 경험들을 나눴다. 아기가 5개월 때 문화센터를 알아보다가 ‘군인놀이’ 수업을 보고 화들짝 놀랐던 경험에 대해, 아기를 키울 때 흙과 풀은 더러운 것 취급받고 물티슈는 깨끗한 것 취급받는 모순에 대해, 아기에게 소고기 이유식을 필수라고 강권하는 한국소아과학회 지침이나 필수예방접종에 의문을 제기할 때 경험했던 슬픈 ‘묻지마! 따지지마!’의 순간들에 대해, 어린이들과 공부하면서 마주하는 이분법 사고의 순간들에 대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주제와 연결해 설명해보려 했다.

 

그리고 모두 둥그렇게 둘러앉아 전체 토론을 나누는 시간에,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듣던 중 어느 순간에 꼬깃꼬깃 숨겨 들어왔던 웅크린 마음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개운하고 신나는 느낌.

 

‘아, 그동안 어렵게 느껴지고 복잡하게 보여 나와 너무 멀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의 해결책이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구나. 지금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고유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정답과 오답으로만 세상을 가르지 않는 것(달라도 괜찮아. 낯설어도 괜찮아.), 서로의 이야기를 비춰주고 전해주는 것(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 ‘우리’라는 울타리를 다시 보는 것(갸우뚱 하는 것. 더 슬래시!). 대훈의 말처럼 우린 이미 평화의 실마리를, 그런 상식과 지혜를 (정말로) 갖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내가 그간 내가 살고있던 곳 -모모와 멀리 떨어져있고, 그래서 모모의 지지가 고프고, 평화배움의 동료가 고프고, 모모에서의 평화배움이 고팠지만 그런 ‘고픔’들을 잘 이겨내면서- 에서 얼마나 열심히 모모에서의 배움들을 살아내려 애썼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가 평화를 이야기하고 싶었고, 전하고 싶어서 애썼던 여러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산청에서 ‘함께평화’라는 작은 단체를 꾸려가고 있고, 어린이들과 글을 쓰거나 배우고 노는 일을 합니다. 가끔은 문화행사나 워크숍, 교육 등을 기획하거나 진행하기도 합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참가자 주원에게 이야기 순서가 돌아왔다. (주원은 내가 서울에 살면서 활발히 모모의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할 당시의 피스모모 활동가였고, 주원이 피스모모를 떠나고 내가 서울을 떠난 후에도 우린 꾸준히 마음을 나누며 지냈다. 낯선 곳에서 내가 힘든 마음으로 지낼 때 많이 힘이 되어준, 모모가 이어준 소중한 인연이었다. 그러다 아주아주 오랜만에 서로 예상치 못하게 여기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긴 시간을 통과해 내게 피어오른 깨달음과 좁은 길을 통과할 때 나의 존재를 지지해주며 큰 힘이 되어줬던 주원의 목소리가 겹쳐지자 갑자기 나는 엉엉 눈물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바로 다음 순서를 이어받게 된 나는 내 생각을 또박또박 나누지 못하고 울음에 잠긴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어갔지만, 어쩐지 그렇게 소중한 이야기 기회를 망치며 울고 있는 나도 밉지 않고 부끄럽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폭력과 평화 부재와 갈등, 분쟁, 전쟁, 기후비상사태에 내가 더이상 무력하지 않을 수 있게 되어서 기뻤다. 내가 그 문제들에 도무지 아무런 도움도 되지않는, 나만을 위한 삶을 살고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느껴져서 기뻤다. 절대 웃을 수 없는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 나눴는데 기쁨을 느끼는 내가 이상하다고도 생각하긴 했지만, 내가 서울-모모에서 얻어가는 이 배움과 에너지를 돌아가서 산청-내 삶에서 어떻게 씨뿌리고 일궈갈지 생각하는 일이 기뻤다. 아이가 있어도 멈추지 않고 배움의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실험하고 경험해서 기뻤다. 나의 배움과 소박하기만 한 실천들을 여전히 긍정하고 지지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또 한번 확인해서 힘이 났다. 

 

지리산으로 돌아와서, 나의 최애 이웃이자 최애 동료에게 조잘조잘 모모평화대학 기행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 같이 하고싶은 일이 많아졌어! 평화를 위해 뭔가 해보고 싶은,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를 잔뜩 얻고 왔거든? 여기서 살면서 느끼는 것들과 평화의제들을 연결지어보는 거, 우리 그거 꼭 하자. 그리고 (속닥속닥속닥) …’ 재미난 꿍꿍이를 위한 느슨한 계획을 세웠다. 

 

뭉치님은 반전운동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가 탱크 위에 올라서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지만, 그처럼 눈에 띄지 않더라도 다른 많은 역할의 활동가들이 있음을 얘기해주셨다. 나는 이웃 동료들과 이 지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해보겠다. 그리고 기회가 되는 만큼, 수도권 혹은 다른 먼 곳의 모모들과도 서로의 자리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꾸준히 나누고, 활동을 교류하고 싶다. 

 

 

 

+

모모평화대학은,

대학 밖의 대학, 대안 대학으로서의 모모평화대학은

평화를 함께 세우기 위한 실천적, 비판적 공부와 모색의 장으로

평화학과 평화교육학의 중요한 주제를 함께 고민하고 탐구합니다.

2023 모모평화대학 초여름학기는 지난 6월 17일에 진행되었어요.

가을학기는 영어로 진행되며, 10월 중 진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