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교육 입문과정 10기’ 후기글
– 참여자 정푸른님 나눔
2017. 7. 6.
이 날만을 기다렸다.
어떤 선물(같은 사람)들이 있을까
어떤 보물(같은 배움)들이 있을까
하며 신청한 그 날부터 설레어 했다.
아무래도 KTX는 사치인 것 같아서, 무궁화호로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러려면 적어도 새벽 3시 반에는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서야 했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4시간 30분, 서울역에서 불광까지 다시 40분.
하지만 그 여정이 전혀 고생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설렘을 증폭시키는 것만 같았다.
혁신파크의 한 구석, ‘스페이스류’가 모모스럽게 물들어있었다.
곳곳에 놓인 꽃과 식물, 알록달록한 배려들, 다정한 음식 테이블…
누군가와 어울려 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낯설기도 하고, 잔뜩 긴장한 마음이었는데
모모는 그런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느려도/늦어도/달라도/낯설어도 괜찮’다고 해주었다.
(‘괜찮아’는 내가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말이다.)
빈 의자에 손님을 모셔오고, 손님이 되어 초대받고-
커다란 종이에 내 안의 것들을 풀어놓고 소개하고-
반짝이는 눈을 마주하고 다른 이의 이야기에 섬세하게 반응해보고-
몸을 움직이고 부대끼며 이야기를 쌓아가고-
우리가 쌓아둔 이야기를 재료로 풍성한 배움을 만들어가고-
1회차 일정이 모두 끝나자, 시작 전보다 더욱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랜만에 이토록 환대를 받아보아서 얼떨떨했고,
‘나도 누군가를 이토록 환대할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잘 논건지, 잘 공부한건지 모르겠고, 도대체 ‘평화교육’이 무엇인가 싶어서 복잡했다.
(‘평화교육’이 평화로운 교육환경과 교육방식를 말하는지, 평화를 교육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리고 지난 2015년 모모평화대학에 참여했을 때,
내 안에 긴장과 고민이 가득해서 프로그램에 충분히 스며들지 못했는데
이번 평화교육 입문과정 1회차에서도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배움을 만드는 대화 속에서 긴장하고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하곤 답답하고 화났다.
말랑말랑한 태도로 고민하는 것과 치열하게 고민해보는 것의 적절함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존재와 교감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런 생각들이 마구 뒤엉킨 채로 일주일을 보내고 다시 토요일을 맞았다.
어렴풋하게나마 다짐했던 것은 나도 다른 이들을 환대하기,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배움의 시간에 빠져들기 였다.
이번에도 내 마음을 읽은 듯한 ‘뭐든지 OK’, ‘서로 힘주기’, ‘보이지않는 실찾기’라는 약속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꽃게놀이, 의자로 권력 이야기하기, 역할과 몸의 표현 관찰하기,
인형극, 삼각형 활동 등 2회차는 1회차보다 몸을 쓰는 활동이 더욱 많았다.
‘몸을 쓴다’는 것에 대해 평소에 관심이 많아서 2회차의 시간들이 더욱 마음에 들고, 진하게 와닿았다.
지각과 몸 감각의 관계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했다.
일정이 끝날 쯤엔 제법 졸려올만큼 열심히 움직였다.
몸의 상상력을 발휘하는동안 머릿속엔 새로운 질문들이 쌓여갔다.
몸 활동 후에는 항상 관찰하고 성찰하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내게는 그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몸이 내게 던진 질문들에 대답하고 싶었지만 대답은 커녕,
함께하는 벗들의 생각까지 더해지니 오히려 질문이 더 쌓여버렸다.
내 몸이 느끼는 것을 표현하기에 내가 가진 언어가 너무 가난하게 느껴져서 답답하기도 했다.
게다가 모모에서는 정답이 없다고 하니 더욱 막막했다.
‘뭐든지 OK’가 이렇게 어려운 숙제가 될 줄 몰랐다.
나름대로 유연하게 느끼고 사고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모모에서 나의 뻣뻣하고 굳어버린 부분 -내가 가진 한계들- 과 마주하며 조금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토요일이 지나면 나는 배움자료와 벗님들의 후기, 활동사진이 메일로 오는 수요일만 기다렸다.
특히 모모가 담아준 사진 속 내 모습들이 반가웠다. 그 순간들의 푸른은 반짝이는 눈빛을 갖고있다.
잘 배워가고 있는지 고민스러워 하다가도 사진 속 내 표정들이
그 대답을 조금은 해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곤 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다른 참가자들의 시선과 표정들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토요일, 세번째 시간은 혁신파크 내 다른 장소(미래청 모두모임방)에서 이뤄졌다.
그래서인지 또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모모의 안내문구를 따라가니, 입구에서 대훈이 부채질을 하며 반겨주었다.
모모 식구들과 참가자 벗들은 분주하게 공간을 채워주고 있었다.
내게 한 주간 쌓인 긴장이 사르르 녹는 시간과 풍경이다.
3회차에서는 울컥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정지극을 만들며 내 어깨에 다른 이들의 손이 얹혀졌는데 그 온기가 듬뿍 전해져서,
처음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어 인간에게 말을 건네면서,
누군가의 편안한 밤을 빌며 부르던 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지구 반대편의 우리에게까지 온 과정이 놀라워서,
울컥 울컥 했다.
이 날 만큼은 나의 사사로운 걱정과 고민들에 휩싸이지 않고, 활동에 듬뿍 빠져들었다.
내가 어떻게 이 활동과 배움들을 다른 만남, 다른 공간에서 잘 풀어갈 수 있을지만 고민했다.
벌써 마지막 회차만을 남겨두었다니 아쉬운 마음이 들어,
3회차를 마치곤 더욱 애틋하게 인사를 하고 혁신파크를 나왔다.
4회차를 기다리는 한 주 동안은 본격적으로 1~3회차를 곱씹었다.
모모에서 함께했던 고민과 느낌들이 증발해버리지 않게 붙잡아두고 싶었다.
그런 찰나에 모모에서도 후기를 요청해주어서 조금씩 글로 정리하게 됐다.
내게 딱 떨어지는 느낌들, 드라마틱한 변화, 감동적인 스토리는 없지만
내가 부끄럽거나 너무 별 것 아니어서 꺼내기 망설였던 내 고민과 느낌들을
솔직하게 나눌 기회라 생각했다.
입문과정 마지막 토요일, 왜인지 첫만남보다 더 두근거렸다.
4회차에서는 즉흥 예술가가 되어 소리로, 몸짓으로, 시로 평화를 이야기했다.
참가자 벗들의 재주가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새로이 귀기울이게 되는 소리, 새로이 놀려보는 몸들이 무척 아름다웠다.
다시 한 번 함께하는 벗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서로배움을 위해 각자가 가진 몫을 기꺼이, 힘껏, 충분히 공유해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잊힐 수 없는 장면이 될 마지막 회차의 마지막 시간,
마지막으로 둘러앉은 마법의 원 안에서 저마다 뜨거운 순간을 맞이했을 것 같다.
한 존재는 그저 존재만으로 얼마나 소중한 지- 그 믿음을 얼마나 잊고 지내왔는지-
몸으로는 마주한 한 사람을 껴안고, 맘으로는 더 많은 존재들을 꼬옥 껴안으며…
입문과정 10기의 여정을 닫았다.
나는 3년 전, 그쯤부터 아주 많이 아팠다.
아픈 시간들을 통과하는 동안, 나조차도 낯선 모습으로 내가 바뀌어갔다.
나를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모에서 순간순간, 내가 ‘나’라고 믿는 내 모습들-푸른-을 다시 만났다.
‘푸른’은 내 이름이기도 하고, 곧 내가 살아가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모모의 아영은 입문과정 중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푸른은 정말 푸른같아.”
내겐 구원과도 같은 한마디였다.
나는 그 말을 오래 기억하며
“푸른은 여전히 푸른이야. 내 안의 푸른은 죽지 않았어.”하며 힘을 낼 수 있게 됐다.
모모에서 만난 ‘푸른’을 계기로, 고통을 조금 덜어내고 건강한 내 모습을 꺼내고 만들어가고 싶다.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다른 존재들의 고통에 더 정확하게 아파하고 싶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평화의 기운을 전하고, 그들의 곁을 푸르게 물들이는 사람이고 싶다.
여전히 어렵지만, 여전히 꿈꾸기로 한다. 평화의 나라를.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온 세상 아이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뉴스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평화가 왔다는 뉴스 말입니다.”
– 이스라엘의 8살 아이, 바르디트 페르토우크
~ 푸른님의 다정한 손글씨 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