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늑대가 나타났다! 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에 부쳐

이솝우화중에 “늑대와 어린양”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는 어린양을 발견한 늑대가 ‘오늘 저녁 메뉴는 저 녀석이다’하고는 어린양에게 다가가지요. “이 녀석아. 네가 물을 진흙탕으로 만들어놔서 내가 마실 수가 없지 않느냐”하고 나무라자 어린양은 “저는 냇물에 혀끝만 살짝 대고 마셨어요. 게다가 어르신은 저보다 위쪽에 계시고 저는 아래쪽에 있으니 물이 더러워질 리가 없잖아요.” 머쓱해진 늑대는 소리를 지릅니다. “지난해에 우리 아버지를 모욕했던 놈이 바로 너지?” “아저씨, 저는 지난해에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어린양을 잡아먹을 구실을 찾지 못한 늑대가 말했습니다. “상관없어, 그게 너이든, 아니든, 나는 지금 배가 고프거든!” 그리고 늑대는 어린양을 잡아먹었습니다. 

 

네가 뭐라고 하든, 나는 이 교육과정에 꼭 “자유민주주의”를 넣을거라는 교육부의 일방성을 보면, 늑대들에겐 미안한 마음입니다만, 이 “이야기 속의 늑대”는 지금 정부랑 꼭 닮았습니다. 몇 달 전엔 교육부 관료들이 연구모임에 들어와 ‘정치의 시간’을 운운하며 집필진들의 초안에 없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추가해달라고 요구했다는 뉴스가 전해지기도 했지요. “바이든”이 “날리면”이 되고,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미국 의회의원들을 대신해서 “이 새끼”가 되는 사회에서 교육과정의 결정권을 정부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애석합니다. “공화주의”에 대한 고민없이 “자유”를 외치는 정부는 그 “자유”를 자기편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다분하거든요. 

 

청와대를 마음대로 옮기는 자유, 대통령 관저도 마음대로 고르는 자유, 도어스테핑도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하는 자유, 부마항쟁 기념식 총연출과 초대가수를 일방적으로 자르는 자유, 수사하고 싶은 사람만 골라서 수사하는 자유, 10.29 참사의 근본원인 역시 선출된 권력의 책무를 외면하고, 개인들의 “자유”로운 삶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안타까운 사고쯤으로 여기는 정부의 위험한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정부의 욕망은 노골적이다 못해 투명하지요. 으아, “늑대가 나타났다!!!” 

 

11월 9일 행정예고된 교육과정안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의 우려가 쏟아져 나옵니다. 피스모모 역시 교육과정 개정안을 두루 살펴보았고, 답답하면서도 애틋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까라면 까”라는 교육부가 “됐고, 자유민주주의”를 시전하는 와중에도 한 줄, 한 줄, 애썼던 집필진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교육과정 개정안은 디지털 전환과 기후, 생태환경의 변화로 인한 미래 사회의 불확실성을 전제로 ‘협력과 상호 존중, 자기 주도성과 공동체의식’을 강조하는 토대 위에서 만들어졌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의 공동체의식은 “적”을 전제로 한 “우리”에 여전히 머물러 있습니다. 교육부가 주창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등장한 것은 1972년 유신헌법이었습니다. 그 시기, 군부독재정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열찬 반공교육을 전국적으로 시행했지요. 이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는 냉전구도 속에서 “적과 아”를 구분하기 위해 필요했던 표식이자, 군부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채택되었습니다. 이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향수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소수의 “방종”에 대한 향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은 정당하고 합리적입니다. 

 

이러한 정부의 국정철학은 평화·통일교육이라는 과도기적 개념을 또 다시 통일교육으로 주저앉히려고 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전, 대선 후보 시절부터 “선제타격”을 강조해왔고, 출범 직후부터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미국 사랑을 표현해 온 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점 하나 찍고 다시 나타난 것 같은 담대하지 못한 “담대한 구상”을 세상에 내어놓았습니다. 이 모든 정책의 방향은 하나입니다. 적을 무찌르고, 우리 편만 잘 살아보자는 것이지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이명박 정부의 교육부 장관, 미래 사회의 불확실성에 대처하겠다는 정부가 어쩜 이렇게도 과거에 연연하는 것일까요? 단언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이 정부의 정책으로는 미래사회에 전혀 대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들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이 세계에서 “우리”만 잘 살기를 도모하는 것은 결국 이 세계의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우리 중심의 편협한 사고는 근시안적인 정책을 낳고, 그 근시안적인 정책은 적대적 문화를 심화시켜 온 세계의 과밀한 군사화를 추동해 왔으니까요. 

 

2022 개정 교육과정안은 기후위기와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두루 담고자 했지만 성소수자의 인권과 노동의 의미를 퇴색시켰고, 4.3을 포함한 국가폭력의 문제를 우회합니다. 자기주도성을 이야기하지만 안보에 대한 시민들의 자기결정권은 국가교육과정의 관심 바깥에 놓여 있으며, 기후위기를 이야기하지만 군사영역이 기후위기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전혀 담고 있지 않습니다. 도덕, 사회, 역사, 지리 교과 모두 논쟁적인 배움을 촉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분단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국가와 군대가 독점하고 있는 안보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육과정 개정을 위해 수고하신 것을 압니다. 그러나, 변화란, 쉬이 오지 않는 모양이예요. 엎치락, 뒤치락하는 과정속에 때때로 힘이 빠지기도 하겠지만, 서로의 존엄함을 일깨워 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 세상이 급속히 나빠지지 않도록 버티는 힘이 되어왔다는 사실을 함께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2015 개정 교육과정과 비교하면, 아이고,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은 많이 나아졌어요. 고민하고 실천하기를 쉬지 않았던, 바로 당신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함께 변화를 만들어보아요, 찡긋! 

 

 

피스모모 드림

 

 

 

초중등학교 교육개정안 피스모모 검토의견서 보기 

*피스모모의 검토의견서는 교육부(nacur@korea.kr)에 전송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