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태국 메솟에 다녀왔습니다. 메솟은 미얀마 군부의 탄압으로 인해 이주하게 된 난민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간 미얀마의 민주화에 연대하며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조금씩 참여해왔지만, 현장에 가게 된 건 처음이었어요. 지구촌나눔운동이 현지의 한-메솟협력센터와 연계해, 지역 청년 활동가들을 위한 세계시민교육을 주최하셨는데요. 피스모모 평화/교육연구소 소장 대훈이 해당 교육의 진행자였고, 저는 교육 참관 및 현지 스터디를 위해 동행했습니다.
얕게만 연대해온 저로서는 미얀마의 최근 상황을 포함한 역사, 메솟 현지의 상황을 학습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었습니다만, 어떤 마음으로 현장에 가야할 지는 분명했어요. 국제개발협력 단체들과 연대하여, 세피안-세남노이댐 사고에 대해 비판적 평화의 관점에서 목소리 내온 피스모모 동료들의 활동이 참고점이 되었지요. 지구를 둘러싼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자기결정권과 욕구에 기반하면서, 지역 내 주민들의 자력화와 민주화를 위해 협력하는 위치를 생각하며 메솟으로 이동했습니다. 출장을 통해 답하고 싶었던 질문은 이거예요.
“메솟의 미얀마 난민분들과, 피스모모답게, 피스모모가 가진 자원과 역량을 잘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연대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이번 교육은 메솟의 청년 활동가분들이 세계시민교육의 지향을 이해하고, 각자의 현장과 연계해 적용할 수 있도록 힘을 기르는 것이 주요 목표였는데요. 2일, 총 16시간 동안 서로 깊이 만나며 배울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참여하신 분들의 활동 분야가 다양한 것이 큰 자산이었습니다. 미얀마의 민주주의, 난민 지원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면서도, 보건의료, 주거, 교육, 복지, 노동 등을 주요 의제로 삼는 35분과 함께 했어요.
교육은 유네스코의 세계시민교육 개념을 참고로 소개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세계시민교육은 인권, 정의, 다양성, 성평등 등의 가치를 담고 있으며, 내용적으로 담는 것 그 이상의 총체적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변혁적 역량’이 지속적으로 강조되었어요. 몸활동과 토론이 결합된 형태의 워크숍을 통해, 각자의 현장에서 학생분들을 만날 때, 환자분들을 만날 때, 다른 시민분들을 만날 때, 모든 사소한 만남들이 어떻게 서로 힘을 주고, 서로의 힘을 키우는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질문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각자 경험한 내용과 생각을 풀어내며, 웃음과 환대 뿐 아니라 도전과 긴장감도 마주하는 과정이 모두에게 깊이 남았던 것 같아요. 쉬는 시간에도, 교육이 끝난 시간에도, 배움과 관련한 대화를 이어가시거나, 대훈을 찾아 지혜를 구하시곤 했습니다.
모두의 상호연계성을 감각하고, 변화를 만드는 힘을 확인하고, 그를 위한 페다고지와 촉진자의 역할을 분명하게 만드는 배움이 계속 되었는데요. 마지막 토론이 백미였습니다. 이틀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시민교육의 원리는 무엇인지, 세계시민교육의 인지적, 사회-정서적, 행동적 층위에서의 목표는 무엇인지를 각자의 언어로 정리해보았어요. 혼자서는 불완전하더라도 내용을 서로 더해주며, 메솟 현장의 맥락을 고려한 세계시민교육 페다고지를 구상했다고 할 수 있지요. 미얀마의 민주주의 위기를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정치적-군사적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기후위기가 심각한 공동의 의제로 부각되는 상황에서 이 교육이, 그리고 각자의 진행자로서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누며 교육이 마무리되었어요.
한-메솟협력센터의 고미조 선생님 역시, 여기에서 경험한 것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적용하거나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과 실천을 부탁한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해주셨어요. 이후, 어떤 적용 경험이 있는지 사례를 나누고, 어려운 점과 과제를 풀기 위해 지혜를 모으는 공유회 자리를 마련하신다고 합니다.
전반적인 교육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활동 참여에 어려움을 겪는 분은 없었으나, 인지적으로 깊이 들어가거나 본인의 이야기를 하실 때는 버마어 사용이 익숙한 분들이 더 많았어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진행자가 그 언어를 이해하고 토론 내용을 교육과 연결시키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기도 했습니다. 이후 진행 시에는 영어 뿐 아니라 현지 언어 통역을 도와주는 분이 동행하거나, 중장기적으로는 현지 언어로 진행하실 수 있는 분들을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목표가 생기기도 했답니다.
이틀 동안의 교육을 마친 뒤에는, 교육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현지 활동가분들을 만나며 어떤 방식으로 연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어요. 어떤 분들을 만났는지 이어 나눕니다.
(왼쪽부터 MaungMaung, Naw Friday, 대훈, 영철)
Naw Friday (이하 Naw)님은 군부에 대항하는 무장 항쟁에 참여하다가 탄압으로 인해 2022년 여름 국경을 넘어온 분이에요. 메솟에 도착한 초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에 비해 적절한 지원이나 대안이 충분하지 않아 낙심하셨다고 해요. 적절한 교육과 정착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마음이 맞는 분들과 Progressive People's Responsibility Functions(PPRF)를 조직하고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군부에 의한 탄압과 강제 이주 과정에서 사람들의 피로감과 정서적 고통이 심각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연결감, 정신적 돌봄,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고 평등하다는 인식, 계속 투쟁할 수 있는 힘과 연대의 확인 등을 목표로 하신다고 해요. 자신이 설립자로 불리지만, 동료들 모두가 같이 설립했다고 계속 강조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현재 PPRF는 주로 미얀마 난민 거주 지역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일에 집중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학교를 잘 운영하는 것이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한 저항의 방식이라고 생각하시지요. 한글로 번역하자면 ‘우리의 학교’와 ‘9개의 집이 있는 학교’인데요. 대훈과 저는 ‘우리의 학교’에 초대받아 방문하게 되었어요. 학교는 교육기관이기도 하면서, 마을의 소중한 사회적-커뮤니티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학교가 평일 9시부터 5시까지 운영되기 때문에, 학생분들은 학교에서 집에 가기 싫다고 장난스레 말하거나, 주말에 선생님 안 오냐고 연락을 하는 일도 잦다고 해요.
학생분들은 주로 12-14세, 약 50여 명이 있는데요. 학교에서는 기초학습역량으로 불리는 읽기, 쓰기, 셈하기, 말하기, 듣기에 더해, 음악, 그림, 춤추기와 같은 재미있고 예술적인 수업을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신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학교에 다니는 분들이 소중한 유년기, 청소년기를 잘 놀면서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기여할 수 있는 재능이 있는 누구든,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연결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학생이 교사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생한 경험과 눈빛이 돋보였어요. 학생들과 함께 하며 자신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정신적으로 돌봄 받았다는 언어가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할 때, ‘teach’보다는 ‘share’라는 단어를 더 선호하신다고 합니다. 누군가 가르치고 누군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나누는 과정이라는 거죠. “I share them, they share me.” 서로배움을 중요시하는 피스모모의 배움철학과도 공명하는 언어였어요.
(소중한 저녁을 대접해주셨어요.)
한편, 학교에서의 교육이 ‘인가 과정’이 아니라는 것에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계신 것 같기도 했어요. Naw님의 말을 빌리자면, ‘진짜 학교’와 최대한 비슷하게, 부족함 없이 학교에 다니는 느낌을 받도록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현재 PPRF 동료분들과 통합교육재단(InEd Foundation)에서 진행하는 교사 역량 강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교수법, 소통과 연구방법론 등을 배우고 계시다고 해요.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에 필요한 역량을 더더더 많이 쌓고 싶다는 욕구와 열정을 계속 표현해주셨습니다.
Naw님은 현재 메솟을 중심으로 국경에 거주하는 청소년의 정신적 경험을 연구하고 계세요. 비자발적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공동의 트라우마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더 적절한 지원 시스템, 나아가 구상하고 싶은 사회의 모습을 그리면서요. 피스모모의 교육과 맞닿아있는 교육철학과 시도를 접하며, Naw님이 그리시는 역량 강화에 피스모모가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지, 피스모모가 Naw님의 교육실천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방안이 있을지, 초보적인 구상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더 구체화시켜가려 해요.
Thinzar Shunlei Yi (이하 Thinzar) 님은 2017년 미얀마 군부에 의한 로힝야 난민 학살 규탄을 비롯해,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어온 활동가예요. 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고자 했으나, 자신이 바라는 사회, 할 수 있는 역할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교사로서는 한계가 있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2022년 메솟으로 오게 되었고, 현재는 People’s Goal이라는 단체에서 주로 활동하는데요. 안보 기구(군대)를 둘러싼 시민들의 대화와 협력을 촉진하고자 하셔요.
매주 온라인으로 교육을 진행하며, 심층적인 대화를 통해 연대를 재확인하고, 연대의 범위를 확장하는 공론장을 마련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데요.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자 주제와 패널을 다양화하는 것이 주요 고민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전쟁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지, 시민불복종운동의 이익을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지,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고, 모든 배움 과정은 특히, 종교와 국가의 이름을 빌어 정당화되는 폭력을 비판할 수 있는 시각을 기르기 위해서라는 점을 중요시한다고 해요.
최근에는 전직 군인을 패널로 초대해 그의 경험을 듣는 교육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군인에게 배우는 교육의 의의와 한계에 대해 이야기 나눈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패널이었던 군인은 쿠테타가 발생한 2021년 은퇴했으며, 거대한 군 조직의 일부였던 경험과 은퇴하게 된 결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고 해요.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군부가 득세할 수 있었는지, 폭력의 발생과 정당화는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복합적인 층위를 함께 살펴보는 배움의 기회가 된 것 같았습니다. (People’s Goal의 초기 이름은 People’s Soldiers 였으며, 쿠테타에 반대하는 전직 군인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단체라고 합니다. 미얀마의 전직 군인들이 공적인 발화자가 되어, 문제를 고발하며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을 해오고 계시지요.)
Thinzar 님은 군인을 군부와 등치시켜 악마화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어요. 인도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군인, 명령을 따르는 것을 주저하거나 멈칫하는 군인들도 있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촉진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찬성-반대, 선-악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스펙트럼으로 보려는 시도, 병역거부를 넓은 의미로 확장하여 각자의 자리에서 매 선택의 가능성과 의의를 중요시하려는 지향과도 연결되어 반가웠습니다.
Thinzar 님은 군인들을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할로 초대하는 것에서 시작해, People’s Goal에서 함께 활동하며 인권, 민주주의, 페미니즘, 포용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프로세스도 중요하다고 덧붙였어요. 군 조직에서의 위계적인 문화와 군사주의적 남성성을 배우고 행하는 데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기존 경험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재사회화 과정으로서요.
더불어, 일상과 문화 속 군사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점도 나누었어요. 이 맥락에서 Thinzar 님은 ‘Sisters2Sisters’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해오고 있기도 한데요. 군에 의한 미얀마 여성에 대한 성범죄를 알리고, 의식을 고취하고, 더 많은 여성과의 국제적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주 목적이라고 합니다. 난민 여성, 구금당한 여성을 포함해 다양하게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여성들의 연대에 집중하려고 하지요.
물론 미얀마군에 의한 폭력만이 전부가 아니며, 반군부 혁명 그룹에서도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사례가 많다고 해요. 피해 여성과 연대하며, 나아가 모든 형태의 성폭력, 성착취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로 확대하는 활동을 해오고 계시다고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남성/성, 가부장제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사람들, 불교도 남성의 이슬람혐오 등의 사례를 들려주셨고, 연결된 한국 사례를 나누며 수다를 떨었어요.
활동의 많은 부분이 만났어요.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연구소의 활동을 소개하기도 했고, 미얀마 군부에 의한 시민 탄압에 사용된 무기를 포함하는 무기박람회 저항행동, 전세계 군비경쟁-군비지출, 경쟁적 군사화 진단과 시민들의 대안으로서 조기경보 등 피스모모가 하고 있는 활동의 방향에 대해 나누기도 했답니다. 당장 함께 할 수 있을 무언가가 명확하지는 않더라도 서로 소식을 팔로우업하며 느슨하게 연대하자고, 기회가 된다면 뭐라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공통 기반을 확인하고 헤어졌습니다.
(메솟에 도착한 첫날, KMCC 고미조 선생님의 도움으로 찾아간 미얀마-태국의 국경. 다리를 넘어가면 미얀마라는 것, 다리를 오가며 살아왔고-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누군가에게는 불가능하다는 것 등을 떠올리고, 존재하고 있지만 앙상한 철조망을 보며 여러 생각에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메솟에 다녀오며 답하고 싶었던 질문을 다시 상기해봅니다. “메솟의 미얀마 난민분들과, 피스모모답게, 피스모모가 가진 자원과 역량을 잘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연대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참 어려운 질문을 잡았다 싶어요. 다만 거대한 질문만 둥둥 떠다녔던 때와는 달리, 작게라도 시도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감각은 생긴 것 같습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메솟에 다녀오며 맺은 인연들을 중심으로, 올해 조금씩 구체화하여 시도하고 평가하며 더 많은 소식 나눌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