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뚤라, 뚤라 마마-” 2018년 피스모모 평화교육 진행자 입문과정에서 이 노래를 배 속 아기와 함께 듣고 눈물지었었다. 그 첫 만남 이후 아이를 둘이나 낳고, 코로나, 제주로의 이사라는 큰 일들을 보냈다. 그리고 2023년 하반기, 나는 다시 홑몸으로 서울에 와있었다. 그리고 심화과정의 소식을 들었다. 주말 부부(엄마)인 상태였기에 2주 연속 주말을 서울에서 보내면 아이들이 태어나 가장 긴 시간 엄마와 떨어져 지내야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내년엔 다시 제주로 돌아가야하기에 이번에 꼭 참여하고 싶어 심화과정을 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내가 이 과정을 통해 배우고자 기대한 것은 진행자의 언어를 벼릴 수 있다는 것과, 체계적인 기획을 하는 방법이었다.
#사전과제 #진행자들을_향한_모모의_마음
두 번의 토요일에 진행된 심화과정이었지만, 토요일만 비워둬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각 모임 전 두번의 글쓰기 과제가 있었다. 일주일 정도 전부터 퇴근 후 시간에는 내내 과제인 읽기자료를 보고, 에세이를 쓰는 데에 써야했다. 시간을 그렇게 들여도 읽기자료는 적지 않아서, 나는 혼자만의 결론을 냈다. ‘아, 이건 이 시간 안에 다 꼼꼼히 읽으라고 준 양은 아니다😅’ 다만 가능한 만큼 자료를 훑어본 후, 나는 내 블로그 기록들을 다시 보며 피스모모를 만난 후 나의 평화교육 진행을 돌아보는 글쓰기 과제를 했다. (첫번째 글쓰기 과제는 여기를 클릭) 지난 기록들을 다시 보니, 몇 년 전 모모들과 나누었던 대화들도 떠올랐다. 진행자들이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말들이었다. 그 때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무얼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몰랐는데, 이번엔 사전 과제로 받은 광대한 읽기자료가 바로 떠올랐다. 이 수많은 읽기자료가 심화과정에 참여하는 진행자들을 초대하는 모모의 마음이구나. 천천히라도 다 읽고 소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찐_심화과정 #평화교육_진행자의_말
언덕 위 새로운 모모의 공간에서, 두 번의 토요일을 보냈다. 첫 만남은 여전히 낯설기도 했지만, 두 명씩 만나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 모습은 익숙했다. 과제를 마치고 나는 모임에 오는 길까지 다른 참여자들이 쓴 에세이 과제를 보고 왔다. 참여자들이 이 과정에 오며 가지고 있는 질문이나 기대에 초점을 맞춰 보고 왔다. 여러 글들과 눈 앞의 얼굴, 별명도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지만 마주하는 이가 가지고 있던 질문을 다시 떠올리며 천천히 더 말을 붙이게 되었다.
심화과정은 진행자의 언어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일단 언어의 ’양‘을 늘렸다. 사전 읽기과제도 그러했지만, 이틀의 토요일이라는 짧다면 짧은 그 교육시간 안에서도 참여자들은 진행에 필요한 언어를 가급적 ’많이많이‘ 풀어놓는 시간이 많았다. 첫 만남에서 가볍게 늘어놓았던 나의 경험들이, 평화교육에서의 중요한 것들이 무얼지 고민하는 목록이 되었고, 이는 내 배움동료가 ’요약‘하고, ’바꿔말하기‘하는 재료가 되었다. 첫날 마지막 시간은 그 말들을 가지고 개념지도를 만들어보는 과정까지 이어졌다. 평화교육 참관을 다니며, 대훈이 진행할 때 하는 말들이 허투로 나오는 것이 참 없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작은 포스트잇에 끄적인 단어들을 가지고 몇 번을 다시 배움의 자료로 써먹는(?) 것을 보며 다시 한 번 진행자의 치밀한 기획에 대해 몸소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의 양은 늘렸지만, 대훈은 진행자의 말은 길어지면 안 된다며 “진행자가 짧게 말하는 것은 참여자들의 말을 듣겠다는 신호”라고 했다. 짧지만 적절하게 참여자들의 말을 요약하고, 다시 말하는 과정들을 반복하며 연습했다. 그렇게 참여자들의 말을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평화교육 진행자의 역할 중 하나였다.
첫째날의 배움 이후, 두번째 읽기자료와 과제는 공공안보나 평화커먼즈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최대한 많이 읽고 이해하려고 해도 삶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적어 부담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심화과정의 둘째날은 이 내용을 더 깊게 파며 이해하는 공부모임은 아니었다.(? 다행인 것이 맞나?😅) 그래도 ‘평화는 모두의 것’이라는 문장을 고민해온 아영의 경험을 함께 듣고, 내가 이해한 만큼의 자료를 재료삼아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함께 고민했다. 또한 다양한 질문법과 피스모모의 새로운 교구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배움_동료들과_함께라면
함께 배운 선생님들은 틈만 나면 질문을 이어가셨다. “‘저는 하기 싫어요.’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요?” 등, 본인의 현장에서 막히는 순간들을 떠올리던 질문들이 특히 많았다. 진행자라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장면이기에, 내 질문이 아니여도 그 모든 질문들을 통해 나는 더욱 함께 배울 수 있었다. 동료 선생님들은 심화과정이 끝나는 순간까지, 모모와 다른 진행자 분들을 더 만나고 싶고, 더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누어주셨다.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났다. 나도 더 잘해보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 때 나는 모모를 통해 배운 것들이 참 특별하다 느꼈고, 그것들이 어디 날아가거나 떨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누구보다도 더, 뭐라도 하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오죽하면 걷지도 못하는 아기를 안고 업고 그렇게 모모를 쫓아다녔을까. 그래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마냥 마음이 급하지는 않은 내 모습이 재밌었다. 내 현실은 학교에서도 아이들, 집에서도 아이 둘과 지내느라 정신 없을 것이고, 서울을 벗어나 살면서 더더욱 탈수도권의 현실을 깊이 맛보게 될 것이면서도 말이다. 곁에 함께 선 동료 진행자 선생님들이 있기에 더 같이 배움을 이어갈 물결이 생긴것 같아 2024년이 기대가 된다. 마지막 날 이야기 나눈것처럼, 진행을 준비하는 자리도, 더 공부를 하는 자리도, 오프라인으로도, 온라인으로도 계속 잘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배움의 자리가 나도 함께 만들어가는 커먼즈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다지며 후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