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23 한일청년평화포럼 참가 후기 -진선

 

2023년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 2022년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된 2023한일청년평화포럼에 다녀왔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만남들이 다시 한번 이어지는 것도, 또래들을 만나는 것도, 또 피스모모 소속으로서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행사에 참여하는 것 자체도 너무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피스모모에 오게 된 근래 3개월간 이전에 몰랐던 것을 아주 많이 알게 되어 시야가 트인 것도 포럼에 참가하는 저의 태도에 영향을 많이 미친 것 같았습니다. 작년의 포럼에서는 한일 관계에 중점을 두고 생각해 보았다면, 이번에는 평화라는 키워드에 맞춰서 모든 것을 고민해 볼 수 있었거든요. 이런 관점에서 이번 포럼의 전체 일정 중 몇 가지에 집중하여 기록을 남겨 보고자 합니다.

 

그라운드룰

 이번 포럼에는 작년과는 다르게 자료집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그라운드룰'이 사전에 취합, 작성되어 현장에서 적용되었는데요. 특히 종교, 배경, 직업, 나이, 젠더 등 다양성을 존중하고, 불필요한 언급을 피하자는 조항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이것들을 다 빼버리면 어떻게 대화를 하나?”싶은 것들도 많지만, 상호 간 위계질서가 생기거나, 위화감/불편감을 줄 수 있다면 되도록 지양하는 게 맞겠죠.

 

 저는 이번에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고 돌아온 이에게 아무 생각 없이 “여자친구랑 통화했나 보네요?”라고 물었다가 바로 사과를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실 애인의 유무도 밝히지 않았고, 애인의 성별도 밝히지 않았고, 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제 배경이 방금 생략된 전제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이 발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스스로의 이러한 '권력'과 스스로가 누군가를 '상처 입힐 가능성'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다양성에 대한 포용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러한 그라운드룰은 저에게도 조금 어려웠던 터라, 함께 포럼을 이끌어주셨던 실행위원회의 어른 두 분의 발언에 대한 리포트가 조금 있었다고 합니다. 스태프들의 회의 끝에, 두 분이 프로그램 시작 전에 앞으로 나와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신 내용과 사과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저는 그 순간 굉장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제가 바라던 존경할만한 어른들의 모습, 그리고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상대방의 사과를 받아들이는 청년들의 모습 그 자체를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번 포럼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과를 하셨던 어른 분들이나, 그것을 지켜보았던 실행위원회의 다른 어른 분들에게도 아마 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을 거고요. 리포트를 하였던 청년 참가자들과 의식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리포트에 대해서 듣고 자신의 위화감을 깨닫게 되었던 청년들, 또 자신과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던 청년들조차도, 우리들이 용기 내어 전한 목소리에 어른들이 반응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잖아요. 이 경험이 있기 전과 후는 영영 같을 수는 없을 겁니다.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이 일어났던 강변 근처에 세워진 추도비.

관동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

 관동대지진 학살의 역사현장이라는 테마로 아라카와 강변 필드워크를 하고, 관동대지진 학살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설립된 일본 시민단체 봉선화의 니시자키 마사오 선생님께 직접 설명을 듣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니시자키 마사오 선생님은 관동대지진 당시 있었던 학살에 대한 증언을 모으고, 이를 토대로 진상을 밝혀, 후대에 남기기 위해 강연 등을 진행 중인 분이십니다. 『증언집 관동대지진 직후 조선인과 일본인』,『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기록-도쿄지구별 1100개의 증언』와 같은 책을 내셨고 이 중 두 번째 책은 한국에서 번역이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책 번역을 진행하고 있기도 한 1923역사관(한국, 천안)의 상설 전시를 통해 '간토 코리안 제노사이드'에 대해 조금 더 배워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진 이후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얼마나 빠른 시점부터 일본 정부가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데에 개입했는지 보여주는 전보의 기록 같은 것을요. 하지만 이번 테마에서는 그런 구조적인 분석보다는 수많은 개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처럼 이야기를 꾸려주셨습니다. 아무래도 관동 대학살에 대해서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에 맞춘 방식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덕분에 해당 학살이 벌어졌던 현장에서 생생하고 많은 증언을 듣고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론, 너무 자극적이고 잔인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듣고 싶지는 않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한일 간의 역사를 배울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아야 하겠지만, 그것이 이렇게 자세한 방향이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늘 있었거든요. 일본 측에게는 그 사실들이 충격과 반성을 주기도 하겠지만, 한국 측에게는 대개 적개심만 심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그래서 이러한 사실들을 다룰 때 타인의 고통을 어디까지 드러낼지, 어떤 목적으로 드러내는지 고민이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요코스카 기지에 정박중인 자위대의 배

요코스카 기지 

 요코스카 기지는 재일 미국 해군 사령부가 있는 미군시설입니다. 1871년 요코스카 조선소가 설립되었고, 일제 시기에는 일본군 해군에게, 45년 이후에는 미군 해군에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요코스카의 주요 시설 및 공장이 반환받아야 하는 지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룹과 함께 부두에 도착하자마자 보트에 타서 요코스카 항구의 모습을 한 시간에 걸쳐서 둘러보았습니다. 산 밑을 뚫어 탄약을 보관 중인 콘크리트 시설들과 적재하기 편하게 조립된(?) 탄약들, 순양함과 기뢰를 추적/파괴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커다란 배들을 사이로 요리조리 바다를 누볐습니다. 새 부두를 건설 중인 현장도 지나가게 되었는데요, 사실 미군이 남의 땅을 멋대로 이용하고 있는 거야 처음 본 일이 아닌데도, 이게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폭력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 캠프 데이비드 정신이니 뭐니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소리를 했었지요. 필리핀, 대만, 한국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전쟁 대비용 방어선”을 자기네 땅에서 한참 멀리 떨어지는 곳에다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 중인 모습이 좀 괘씸했습니다.

  

분명히 법적으로 '군대'가 없는 일본일 텐데, 걸프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각각 가장 많이, 또는 선제공격으로 토마호크를 발사한 것은 요코스카의 모항의 '파이프'와 '카우펜스'라고 합니다. 게다가 군사비는 세계 9위인 541억을 지출 중입니다. 세계 군사력 랭킹 2021에는 5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유사시 즉각적인 대응을 위한 무기 장비들과 부두시설들이 요코스카에 어마어마하게 설치가 되었고, 최근까지도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와중에 '평화헌법' 대신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근거가 삽입되고캠프 데이비드 정신 타령 같은 것을 하고 있으니, 요코스카 시민들은 전쟁의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요코스카 등 일본의 반기지 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긴장감이 굉장히 높게 느껴졌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반전/반기지 운동을 하려는 시민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아, 다양한 대안을 모색 중이셨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눴습니다. 군수산업과 군사활동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을 근거로 환경 단체와 연합을 하는 방안, 청년과 여성들이 운동에 함께 하기 쉽도록 기획단계에서부터 함께 논의하기, 제가 속한 단체인 피스모모에서 계획 중인 동북아시아가 다 함께 조기경보 외치기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요코스카의 반기지 활동가 분들을 만나 이렇게 연대의 씨앗을 만들어낸 것도 너무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성명문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배운 것들을 정리한 성명문을 발표하며 마쳤습니다. 성명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고민과 서로배움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평화적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가 가하는 가해를 어떻게 조심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 끝에 저희 성명서 초안위원회 끼리 나눈 결론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이후 상대방에게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통해 서로 성장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많은 고민을 담아낸 성명문에는 아래와 같은 실천을 위한 선언이 담겼습니다.

 

1. 지금까지의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었는지, 무관심했었는지를 깊이 반성하고 진실을 배울 권리를 행사하여 역사적인 증언을 계승해 나가겠습니다.

 

2. 상상력을 발휘하여 현 일본 사회의 안에서 공포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재일코리안을 시작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일본의 잘못에 의한 아픔과 괴로움을 계속하여 짊어진 사람들의 깊은 고통에 함께 하겠습니다.

 

3. 현실 사회에 및 인터넷상에서의 모든 차별과 폭력을 절대 용서하지 않고, 그와 같은 언행에 대하여 용기를 가지고 목소리를 높이겠습니다.

 

4. 다양한 다름을 포용하며 상호 간에 존중을 하는 커뮤니케이션을 계속하여, 대화에 열린 사회를 만들어가겠습니다.

 

5. 내면화하고 있는 자신 안의 가해성을 마주하고, 국적이나 성별, 개인의 배경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목숨과 존엄이 지켜지고 누구나 개인으로서 존중받는 사회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해 나가겠습니다.

 

6. 힘에 의한 지배를 거부하고 군사가 아닌 시민에 의한 평화외교를 진행해 나가기 위해 실제로 행동하겠습니다.

마무리

사실 함께 작성했다고는 해도 성명문에 전부 동의하기는 어려운 강한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우리들의 이 고민이 담긴 실천의 과정을 모모들과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