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2일, 케냐 삼부루 자연보호구역에서 아프리카코끼리를 관찰하던 연구자들이 코끼리 누르를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누르는 저 자리에 혼자 한참을 서서 눈물을 흘리다가 무리로 돌아갔다고 하는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 자리에는 사실 코끼리 35마리가 누르와 함께 있었습니다. 누르가 속해있는 무리뿐 아니라 할머니 코끼리들이 수장으로 있는 다섯 무리, 그리고 혼자 생활하는 수컷 코끼리 다섯 마리를 포함해 코끼리 36마리가 한자리에 모여있었습니다. 한참을 머물던 그들이 떠나고 난 후에야 연구자들은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는 누르의 엄마 빅토리아가 자연사하여 쓰러져 있었습니다.
10살이었던 누르는 다른 코끼리들이 모두 떠난 후에도 엄마 빅토리아 곁에 마지막으로 혼자 남아있었던 것이지요. 다음 날부터 코끼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연구자들은 7월 3일까지 코끼리 여러 무리와 혼자 사는 수컷 코끼리들이 빅토리아의 무덤을 찾아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젖먹이 코끼리부터 할머니 코끼리까지 연령대는 다양했습니다. 찾아온 코끼리들은 가만히 눈물을 흘리거나, 조용히 곁에 서있거나, 조심스럽게 주변을 서성이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의 몸짓을 했습니다.
코끼리들은 특별한 인연을 가진 다른 코끼리의 무덤을 종종 다시 찾아와 애도의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무리 지어 이동하던 중에 코끼리 유골을 발견하면 잠시 머무르며 애도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요. 아픈 이, 죽어가는 이를 발견하면 그들을 돌보며 나아지도록 애쓰기도 합니다. 이러한 돌봄은 자신의 무리뿐 아니라, 친척, 다른 존재들에게도 이어집니다.
영어 표현 중에 “Elephant never forget.”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코끼리는 어떤 것도 잊지 않는다는 뜻인데요. '기억한다'는 것은 코끼리 공동체가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아주 특별한 힘이 아닐까 싶어요. 가뭄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위험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코끼리 무리가 비슷한 상황에 닥쳤을 때 현명하게 대처하도록 합니다. 또한 구성원 하나하나를 특별하게 기억하기에 놓치는 이 없이 서로를 돌보게 합니다. 누군가를 잃었을 때 함께 애도하고 기억하는 코끼리 공동체는 아픔과 슬픔을 나눔으로써 그와 가까웠던 이에게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그 안전한 느낌이 공동체를 만들고, 그 기억은 더욱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힘이 되겠지요.
코끼리들은 자신의 기억을 다른 코끼리들에게 공유함으로써 여러 세대에 걸쳐 공동체의 지혜를 쌓아간다고 해요. 그렇게 공동의 기억을 만들고, 공동체의 지혜로 바꿔갑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사회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공동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더 채워야 할 기억의 조각은 무엇일까요. 코끼리 공동체의 삶을 통해 함께 만들어가는 기억의 힘, 함께 채워가는 지혜를 배워 봅니다. 일곱 번째 찾아오는 4월 16일, 우리는 여전히 잊지 않았어요.
2021년 4월 14일, 카시오페아는 코끼리 누르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듣고 싶고 알고 싶은 존재의 이야기가 있을까요?
카시오페아가 전하는 편지를 떠올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