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19 평화교육 입문과정 12기 / 사리따

 

0. 드디어 평화가  

 

5월은 꽤 바빴다. 아이들을 만나는 데에도 자잘한 스트레스들이 그득 쌓여 지쳐가고 있었다. 

지난 월요일, 꿀 같은 주말을 보내고 출근하기 싫은 맘을 겨우 다스려 교실 앞에서 한 주 안내를 하려던 아침. 날씨 탓인지, 월요병 탓인지, 교실 안에서는 서로 비아냥거리는 말소리들이 오고 갔다. “안내할게요” “안내할게요” 몇 번을 말했는데도 전해지지 않고 탁구공을 주고받듯이 비난을 주고받는 아이들을 보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손에 들고 있던 종이뭉치를 바닥에 냅다 내팽개쳤다. 순식간에 교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목소리를 깔고 지금 이곳이 어떤 장소이고, 누구와 함께 있고, 무엇을 하려는 시간인지 알고나 있냐며 쏘아붙였다. 아이들은 모두 침묵하고 있었다. 시간을 살필 줄 알아야한다며 꾸러기1,2에게 눈빛을 날리고는, 문득 정신이 들어 “선생님이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오가는 것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해 거칠게 표현한 것을 사과”하였다.

“휴,.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

한 아이의 중얼거리는 목소리.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니.. 순간 너무 당혹스럽고 화끈거렸다. 이 교실에서 매우 순식간에 긴장을 만들고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은 (혹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너희를 사랑한다’는 기린쌤, 나였다. 

 

 

0. 평화의 수호자

 

부끄럽게도 위의 장면은, 피스모모에서 평화교육 입문과정 2주차 수업을 듣고 난 바로 다음날이었다. 좋은 선생님들과 충분히 마음을 나누고, 소통 없는 일방적인 권력 관계의 모습에 대해 탐색하고, 교실 속 나의 모습이 어떤지 돌아보고 반성하고, 아이들과 비슷한 시선으로 만나야지 다짐한 바로 그 다음날. 

아..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백 번 읽고 듣고 생각하고 다짐해봤자, 그 어수선한 역동의 교실 속에서 나의 태도는 한 순간에 원점으로 돌아가고,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뒤통수 맞아 정신 차리는 것도 순식간이다. 

아무리 경계하자 마음먹어도, ‘절대지존’처럼 아이들이 나의 손바닥만을 보고 모두 따라 움직이라고 압박하는 것은 꽤 달콤하다. 일단 나는 나이권력에서 아이들보다 20년이나 앞서고, 공간에서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여 모두를 살필 수 있는 곳에 서있고, 우러러볼수록 높아만지는 ‘선생님’이라고 불리운다. 말 한마디에 모두 일어나 자리에 앉고, 청소하고, 책을 펴는 모습에 익숙해지면, 감히 교사인 나의 말을 따르지 않는 어느 아이의 행동을 볼 때 화가 난다. 그 아이의 감정이 어떻고, 상황이 어떻고, 생각이 어떤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물론 다른 아이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를 지키는 것도, 공동체 질서나 생활습관을 가르치는 것도 나의 역할이기는 하지만, 달콤한 말의 힘에 중독되고 카리스마 있는 교사인 나의 모습에 도취되고 나면 역할에 따른 책임과 교사권력을 이용한 갑질 사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학급 공동체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최고권력자. 더 강력하고 빈틈없는 카리스마로 교실 내 모든 갈등을 조정하고 마무리 짓는 교실평화의 수호자. 

꽉 움켜쥔 나의 권력과 책임을 놓지 못한 채, 사자후 한방이나 낮게 깐 목소리, 매의 눈빛 등으로 ‘평화를 만들거’나, 혹은 그 ‘평화를 지키지’ 못한 권력의 붕괴에 자괴감을 느끼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느끼는 평화의 감각과, 교사인 내가 느끼는 평화의 감각은 무조건 같은가. 아이들이 바라는 평화에 대한 요구는 외면한 채, 교사 입장에서 ‘편한’ 평화를 강요하는 권력을 부리고 있지는 않았나. 

 

 

0. 평화적으로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여러 좋은 선생님들과의 대화 덕인지, 몸으로 경험했던 모모의 교육 덕인지, 어쨌든 ‘평화’라는 말에 맘이 움찔거리고, 공간 안에서의 위계가 조금은 보이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평화로운 교실이란 무얼까. 서로 다투지 않는 것? 쌤이나 친구들이 큰소리를 내지 않는 것? 욕설이나 폭력, 따돌림이 없는 것? 혼자 있는 친구에게 다가가 손내미는 것? 모둠활동에서 모두 비슷한 목소리를 내어 협동하는 것? 모두가 완벽히 수평적인 관계로 만나는 교실은 가능할까. 

허나 적어도 교사권력으로 아이들이 느끼는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는 않다. 비난과 욕설이 오가는 정글같은 교실을 카리스마 있는 교사의 힘만으로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교사 앞에서 그런 척 할 수 있지만, 긴장된 몸과 얼어붙은 마음으로는 평화를 지속하기 어렵다.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교실평화의 최고 수호자라고 나를 오해하지 않는 것. 아이들의 갈등을 맥락과 관계 안에서 보는 힘을 기르는 것. 아이들과 함께  평화적인 방향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 감각을 온몸으로 물들이고 경험해보는 것. ‘평화로운’ 교실을 눈앞에 만들어내기보다는, ‘평화적으로’ 같이 나아가기를 연습하는 것. 

 

 

0. 끝

 

덧붙이자면, 그 날 내 마음을 더 쿡 찔렀던 것은 나의 사과 후 “또 사과하시네요”라는 어느 꾸러기의 한마디였다. 와, 예리하다.. 똑같은 일로 또 사과하지 않게 진심으로 반성하라고 매번 애들한테 잔소리를 하는데, 나는 또 사과하고 있다..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다음 다시 날 일으켰던 소리는 “왜, 나는 사과하는 선생님이라 좋은데.”라는 아이들의 말였다. 

아마 난 앞으로도 큰 소리나 눈빛 한방으로 교실을 얼어붙게 해서 쉽고 편하게 평화를 만들려는 유혹을 떨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미안하겠지만.. ‘미안해’를 말할 것을 약속함!

 

 

 

 

 

 

 

 

 

 

 

 

 

사리따 님 

2019.6.15.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