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한겨례_평화란 뭘까…머리 아닌 몸으로 배웁니다

평화란 뭘까…머리 아닌 몸으로 배웁니다

피를 흘린 채 쓰러진 사람을 구조하는 이들, 무장한 채 총을 겨누고 있는 한 남자, 꽃을 들고 추모하는 사람들, 십자군전쟁에서 싸우는 군인의 모습. 컴퓨터 화면을 빔프로젝터와 연결해 한쪽 벽면에 비추자 네 장의 사진이 나타났다.

청소년·일반인 대상 교육하는

비영리단체 ‘평화프로젝트 모모’

전쟁·통일 논하는 교육 벗어나

사회속 불평등 구조 등 살펴

역사속 사진 보고 편견 주제 토론

‘다른 사람 생각은 뭘까’ 이야기나누며

평화롭게 공존하며 사는 법 고민

“이 사진들은 뭘 의미하는 걸까요?”

“살인사건이요.”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추리해봅시다. 힌트를 줄게요.”

이대훈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 평화학 연구교수가 학생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그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를 했다. 사진과 관련된 사건은 이민자들의 시민권 보장을 논의하는 캠프 현장에서 일어났고, 범인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오랜 기간 동안 실업자였고,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을 싫어했다는 것 등의 힌트가 주어졌다.

사진들은 2011년 노르웨이 연쇄 테러사건에 대한 것으로 당시 폭탄테러와 총기난사로 77명이 사망했다. 범행을 저지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검거 당시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노동당에 있다고 비난했다.

“저 사람은 왜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였을까요?”

“이민자들이 자기 일자리를 뺏었다 생각해서요.”

“자신이 믿는 종교인 기독교를 그 사람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이 크죠. 주목해야 할 점은 저 사람이 정신이상자가 아니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학생들은 앞선 사진으로 사건을 접한 뒤 범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나라와 외국 이민자 등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했다. 학생들은 “이민자는 무조건 싫다”, “기독교가 최고다” 등 각자 추측한 범인의 범행 동기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이분법적인 사고가 왜 위험한지 알고, 타협이 가능한 지점을 논의하기로 했다. 무조건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평소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던 편견을 깨자는 데 목적을 둔 시간이었다.

이 활동은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이하 모모)가 진행한 ‘청소년 집시위크’의 일부 내용이다. 모모는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를 중심가치로 두고 다양한 예술가 및 교육기관과 피스(P.E.A.C.E) 페다고지를 기반으로 한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피스 페다고지란 ‘창의적 페다고지’(필리핀연극교육협회가 개발한 것으로 ‘창의성에 기초한 배움’을 뜻함)에 모모가 개발한 평화배움 프로그램을 적용한 것이다. 계몽을 통한 배움이 아니라 배우는 쪽에서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그 내용을 깨달아가는 방식을 추구한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김예진(성동글로벌고 3)양은 “특정 사건 안에 숨겨져 있던 편견을 찾아 그동안 내가 남을 함부로 판단 내리고 평가했음을 깨닫게 되었다”며 “편견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잘 몰랐는데 내가 어릴 때부터 지내왔던 환경과 굳어진 사고방식 등이 영향을 준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모모 문아영 대표는 “평화라는 화두를 놓고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하는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문제를 변화시키는 ‘적극적 평화’를 실천하는 게 우리 교육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집시위크에서는 ‘길’을 주제로 서울 곳곳의 낯선 길을 탐방하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걷기 워크숍’도 진행했다. 학생들은 서울 강남구 포이동에 위치한 판자촌 형태의 구룡마을을 방문하고 맞은편에 있는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타워팰리스와 비교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땅이라는 것이 소유될 수 있는 것인지, 마을의 주인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인지, 서류상으로 땅을 산 사람인지 등을 토론했다. 학생들은 용산 참사가 일어났던 서울 용산구 남일당도 둘러보고 본인이 살던 공간을 뺏긴 이충연씨도 만났다. 이를 통해 삶의 터전을 잃는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사람이 땅이라는 걸 소유할 수 있는 걸까에 대한 문제도 접하게 됐다. 평소 몰랐던 주제를 고민하고 다른 이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서로 나누기도 했다.

모모에서는 지난달 16일부터 19일까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퐌타스틱 평화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재한몽골학교 교사, 음악치료사, 청소년 교육을 담당하는 이부터 수녀, 공무원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필리핀연극교육협회 소속 교육연극 전문진행자 레아 에스파야르도가 강사로 나서 소리와 몸짓, 연극과 마임 등을 통해 자신의 감각을 깨우고 마음속 이야기를 끌어내는 활동을 펼쳤다. 한은경 재한몽골학교 교사는 “성격이 내성적인 탓에 처음에는 다양한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춤추는 게 부끄러웠다”며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고 내 몸에 나를 맡겨보자했는데 뭔가 응어리진 게 풀어지는 느낌이 들어 울컥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모모 누리집(peacemomo.com)에 들어가면 단체에서 진행하는 교육프로그램 일정과 평화배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

원본 링크: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7030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