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국제관함식, 대체 뭣이 중헌디?

 

지난 3월 30일, 강정마을 주민들은 마을주민 총회를 통해 강정해군기지에서의 국제관함식 개최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정부와 해군은 주민의 의사에 따를 것이라 했으나, 10월 예정된 국제관함식 개최를 위해 주민 의견을 다시 수렴하겠다고 합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구했고, 마을주민들은 국제관함식 개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런데 정부와 해군은 이제와 다시 마을주민들의 의사를 밝혀달라고 합니다. 정부의 이런 “답정너”식 태도는 낯설지 않습니다. 

 

강정마을 공동체를 갈가리 찢어 놓은 해군기지 건설이 시작되었던 그 즈음도 똑같았습니다. 공청회 다운 공청회 한 번 운영하지 않았고, 얼렁뚱당 정부와 해군이 듣고 싶은 결정을 소수의 주민들만 모아두고 후다닥 처리해버렸죠. 마을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은 정부와 해군에 의해 무시당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2011년 말, 국회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예산 1327억 원 중 1278억 원을 삭감하는데 합의했습니다. 삭감되지 않은 49억원은 설계비와 보상비여서, 사실상 공사비는 전액 삭감되었던 것인데요. 국방부는 이런 국회의 결정이 있었음에도 그동안의 ‘불용예산’으로 예정된 공사를 강행했습니다. 

 

생각할수록 이상합니다. 국회는 국민을 대의하는 기구인데요. 이쯤되면 국방부가 국회보다 더 힘이 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둘러싸고 마을 주민들의 자기결정권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기결정권 역시 철저히 무시당한 이 사건은 생각보다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습니다. 2009년 강정마을 주민들은 환경영향평가 종료 전에 해군기지 건설사업이 승인된 것은 무효라는 행정소송을 냈습니다. 1·2심은 이에 대해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지만 2012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방부의 손을 들어줬는데요. 그 당시 대법원장은 양승태였습니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했던 국민들은 ‘외부세력’이라 불렸고 시간이 흐르며 ‘종북좌파’, ‘종북빨갱이’라 불리게 되었지요. 이렇게 주민들의 오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예산삭감에도 불구하고 제주해군기지는 결국 완공되었고 이제 강정앞바다의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2017년 5월, 국민들이 정권을 바꾸었습니다. 촛불로 세워진 정부, 한반도 평화에 대해 속도를 내는 현 정부의 모습에서 한국 사회가 정말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감이 들었는데요. 국제관함식에 대한 현 정부와 해군의 태도를 보니 그 기대감이 와장창장 부서져 내리려 합니다. 

 

해군들이 주민들에게 공유한 국제관함식 설명자료에 보면, 국제관함식의 슬로건이 ‘제주의 바다, 세게평화를 품다’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군은 이번 국제관함식을 통해 대한민국 대양해군의 위력을 강조하고 강력한 군대와 안보를 원하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취지를 밝혔는데요. 

 

약 30여 개국이 참여하며 30척이 넘는 함정과 수륙양용장갑차, 헬리콥터와 전투기가 동원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해상화력시범과 상륙작전 및 해상침투훈련 등을 진행하겠다고 하는 이 하루짜리 관함식에 드는 비용만 36억이라고 하는데요. 지금 이 시점에 40여억원의 세금을 “바다 위 힘자랑”에 쓰는 것, 정말 괜찮은가요?

 

지난 7월 17일 마린온 헬리콥터 추락으로 5명의 소중한 이들을 잃었습니다. 1명의 생존자는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와중에 송영무 국방부장관은 유가족들에게 의전 운운하다 큰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깡통헬기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던 수리온개발에 쏟아부은 돈만 1조 3천억원입니다. 그 수리온을 추가 개조한 헬기가 마린온인데, 날자마자 4초만에 프로펠러가 분리되어 버렸습니다. 1조 3천억원의 세금은 과연 어디에 쓰인건가요?

 

2017년 8월, K-9 장갑차가 폭발해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고 크게 다쳤습니다. 온 몸에 화상을 입은 생존 군인은 사고 후 9개월이 지나도록 보상에 대한 어떤 정보도, 사고 원인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도 듣지 못해 청와대 청원을 시작했습니다. 30만명의 국민이 청원에 참여했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응답에 정작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담기지 않았습니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로써, 병역의무를 강조하는 것만큼 병역을 이행하는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강조했다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국방부가 세금을 써야 할 곳이 있다면 국제관함식이 아니라 국가안보를 위해 동원된 청년들의 안전이 아닙니까? 국가안보라는 허울 좋은 핑계속에 세금은 어디로 새고 있는 건가요?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지만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는 정작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에서 남북한이 서로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습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이 무기한 연기되고 서로를 향한 대북, 대남방송 역시 중단되면서 한반도는 평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의 간절함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한반도에서 국제관함식이라니요? 

 

국제관함식은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나 각국의 거대한 열병식처럼 군사력을 과시하는 강력한 군사적 도발입니다. 비폭력 평화 시위로 세워진 촛불 정부가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다말고 이런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려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요? 좀처럼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사무총장은 군축보고서를 통해 인류가 전쟁을 준비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70여년의 분단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한반도에 주어진 과제는 북한의 비핵화를 넘어서 한반도의 비핵화입니다. 한반도의 영속적 평화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계적이지만 꾸준한 군축입니다. 

 

전국의 교육감들은 촛불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민주시민교육을, 한반도 평화를 위해 평화교육을 하겠다 약속했습니다. 민주시민교육과 평화교육은 교실과 학교안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공식입장을 인정하지 않고, 관함식 개최를 강행하기 위해 새로운 입장을 요구하는 현 정부의 비민주적인 태도는 잠재적 교육과정으로서 전국민에게 전달됩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우습게 여기는 정부가 민주시민교육을 이야기하고, 한반도 평화를 이야기하는 정부가 세계 30여개국의 함대를 바다에 불러모으는 아이러니. 국민과의 약속을 어겨도 되고, 민주적 토론을 가장한 ‘답정너’식 태도는 국민, 시민, 주민들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강력한 도전입니다. 

 

이 국제관함식은 촛불정신에도, 한반도 평화에도,전쟁으로 고통받는 지구의 동료시민들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기를 전시하며 힘을 과시하는 것이야말로 구시대의 적폐입니다. 수많은 인류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여전히 힘을 통해 평화를 얻으려는 안보패권주의는 사라져야 할 악습입니다. 적폐청산을 핵심 국정과제로 잡고 있는 현 정부는 이를 반드시 기억해야합니다. 

 

피스모모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결정을 마음 깊이 지지하며 문재인 정부의 옳은 선택을 촉구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10월 예정된 국제관함식을 지금 당장 중단하십시오!

 

2018년 7월 22일 피스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