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레이디경향 – “국제회의에서 우리 교육 자화자찬, 촌스럽지 않나요?”

높은 교육열 덕에 급성장했지만 뒤편에 드리워진 그늘도 만만치 않은 한국 교육. 세계인들이 모인 교육 회의에서 자랑만 늘어놓은 교육계 인사들을 향해 일침을 가해 박수를 받은 평화 교육자 문아영 대표를 만나 오랜 대화를 나눴다. 우리 교육이 처한 현실과 고민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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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 문아영 대표

 

문제점도 말하자

 

지난 5월 20일 인천에서 ‘2015 세계교육포럼’이 열렸다. 대중에게는 생소하지만 유네스코가 주최하는 세계 최대 국제 교육 회의이자, 향후 15년간 추구할 새로운 교육 목표를 정하는 중대한 자리다. 그런데 한국이 개최국이었던 이번 포럼에서 돌발 상황이 벌어져 화제가 됐다. ‘한국 교육 특별 발표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백순근 한국교육개발원장과 염재호 고려대 총장이 발표 내내 한국 교육의 성과에 대해 자랑으로 일관하자 토론 말미, 한국 대표 중 일원으로 행사에 참석했던 문아영(33) 대표가 청중석에서 ‘돌직구’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90분 내내 잘한 점에 대해서만 언급하더라고요. 특히 염재호 총장은 청년들이 결혼도, 출산도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 한국은 교육열이 높아서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서 대학을 보낸다고 했어요. 그런데 실상은 청년들이 대출을 받아 학비를 대고 빚을 갚기 위해 고생하느라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현실이 분명 존재하잖아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말하는 것이 균형 있지 않나 싶어서 이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했어요.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네요(웃음).”

하지만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문 대표의 마이크가 꺼졌다. 토론의 진행자 및 패널들은 문 대표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대로 토론을 종료하자마자 객석에 있던 세계 각국의 교육 관계자들은 일제히 문 대표 주위로 몰려들어 그녀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말이 끝나자 청중 사이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앞으로 15년 동안의 교육 목표를 정하는 중요한 회의에 개최국으로 참가한 건데, 세계 교육계에 진실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을까요? 한국 교육을 모델로 삼는 국가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우리 교육의 양면을 모두 보게 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태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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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도 경쟁시키는 교육 풍토

문 대표가 이끌고 있는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는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닌, 수평적으로 서로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알리는 비영리 단체다. 사람간의 존중과 평화를 중시하는 평화 교육자로서 문 대표는 경쟁을 부추기는 현재의 교육에 대해 안타까움이 크다.

“교육 현장에서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해 걱정하는 부분들은 거의 비슷해요. ‘다양성이 결여돼 있다’, ‘학생들이 꿈이 없다’라는 의견이 많죠. 그런데 이런 고민에서 시작된 여러 프로그램도 또다시 경쟁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좀 더 독특한 다양성, 더 튀는 꿈. 결국 또 다른 경쟁을 요구해요. 경쟁적인 교육 방식에 너무 익숙해졌어요.”

하지만 문 대표는 이런 풍토가 만연한 것이 학생이나 학부모 개인의 책임만은 아니며, 우리 사회에 구조적인 문제가 많기 때문에 사회 전반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조가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이 바뀌어야 한다고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다면서 말이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지금처럼 경쟁적인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인재가 많아지는 건 굉장히 건강하지 않은 일이란 거예요. 성적만 우수하면 되고 남을 돌아볼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 지금의 교육 풍토에서 우수한 스펙만을 위해 달려온 인재들이 과연 어른이 돼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거나 주변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을까요? 장기적으로 볼 때 결코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지요.”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은 높은 대학 진학률로 이어졌다. 단시간 내에 사회가 발전하는 데 매우 큰 원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빚어진 부작용도 존재한다. 사교육에 의존하는 풍토, 지나친 대학입시 경쟁, 세계 최고 수준의 청소년 자살률과 높은 학업 스트레스 지수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 교육의 성과를 거론할 때 흔히 높은 교육 수준과 우수한 학업 성취도를 꼽곤 한다. 이번 세계교육포럼의 ‘한국 교육 특별 발표회’에서도 지난 2012년 학업성취도평가()에서 한국 학생들이 수학 과목 1위, 읽기 2위를 차지했다는 점을 국민소득 증가와 결부시켜 성과를 강조했다. 문 대표는 안타깝다고 했다. 화려한 숫자 뒤에는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부 잘하는 우리 아이들, 행복한가요?

“지금 공교육에서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아이들,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데리고 가겠다는 거예요. 그게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인재 양성 교육이라고 여기는 것 같고요. 경쟁이 중요하다 보니 사교육 없이는 안 되는 환경이 됐고, 그 안의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모두 불행해요. 시스템이 인재만을 위해 달려가면 안 돼요. 성적 좋은 아이들에게만 초점이 맞춰지면 뒤에 따라오는 아이들도, 앞의 아이들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어요. 부작용이 있다는 걸 숨기지 말고 공론화시켜서 같이 이야기하고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문 대표는 공교육 시스템에 대해 좋은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 교육이 지금보다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한 가능성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에서 교육청, 각 학교 교사들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무척 체계적으로 잘돼 있어요. 권력이 남용되지 않는다면 이런 시스템이 건강한 교육 생태계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거든요. 교육열이 높은 만큼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도 많고요. 이번 포럼 이후 제 기사에 응원 댓글들이 달린 걸 봤어요. ‘용기 내줘서 고맙다’, ‘할 말 했네’ 이런 반응이 많았어요. 다수가 교육 현실 개선에 대해 극심한 갈증을 갖고 있다는 것도 느꼈죠. 그런 고민이 모이면 건강한 변화를 꾀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사회가 구조적으로 높은 스펙을 선호하다 보니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녀를 경쟁에 내몰 수밖에 없는 현실도 존재한다. 1등부터 순위를 매기는 사회 안에서 내 아이가 뒤처질까 봐 불안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충분히 공감해요. 저도 학교 다닐 때는 모두가 가는 길에서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불안감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돼요. 그런데 불안과 불확실성을 피할 수는 없는 게 삶의 속성이잖아요. 불안감을 해소하는 삶의 방식을 택하면 인생이 너무 피폐해져요. 대학 입시, 취업, 성공 등 끝이 없으니까요. 불안을 담보로 경쟁에 볼모 잡힐 것인가, 거기서 벗어나서 불안과 불확실성을 주도적인 가능성으로 전환하는 삶의 방식을 택할 것인가. 그런 것을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보셨으면 좋겠어요.”

학창 시절 흔히 말하는 모범생이었던 문 대표는 경쟁적으로 성적에 집착했던 시절, 자신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모두가 가는 그 길에서 벗어났다고. 인생의 목표를 정하기 전에는 방황도 하고 천천히 가는 것이 좋은 것 같다고도 했다. 이번 세계교육포럼에서는 ‘2030년까지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을 보장하고 평생 학습 기회를 진흥하자’라는 비전에 합의했다. 모두를 위한 교육이란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다 같이 적극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Profile 문아영 대표는…

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독일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초등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다. 이후 코스타리카에서 유엔평화대학원 평화 교육 석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학생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평화적 언어와 소통 방법 등을 중시하는 평화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비영리 단체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정성민(프리랜서) ■사진 / 안지영>

 

기사입력 2015-06-30 19:05

원본링크: 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13&artid=201506301905141&pt=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