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교육 입문과정 10기_2회차 후기 나눔
– 작성 : 입문과정 10기 참여자 홍록기님
2017. 06. 21.
“타치오라는 소년과 호텔 승강기 안에서 마주쳤을 때, 주인공 아셴바흐가 말해. ‘아름다움은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구나.’ 그 구절을 읽고 나는 죽을 때까지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 되기로 결심했지.”
『원더보이』 – 김연수
모모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해준 공간, 그 곳에서 교육 참여자들과 함께 만든 시간은 그토록 아름다웠다. 2번뿐인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동안 적은 노트와 찍은 사진들을 죽 훑어보고 있자니, 남은 2번의 만남이 더욱 기다려진다. 후기를 이어서 더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교육을 받으면서 끄적끄적 정리해본 서로 배움의 결과물들을 나름의 짜임으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정리해봐야지… 해봐야지…’하는 메아리가 귀를 살살 긁어대는 요즘인지라 스스로의 게으름을 실감하고 있었는데, 적절한 타이밍에 글을 써볼 기회를 준 모모에게 감사를 보낸다.
교육 참여자들은 이곳에서 2가지 모습의 부끄러움을 만난다.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부끄러움은 모종의 낯설음에서 비롯된다.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 나의 목소리, 언어, 몸짓을 드러내는 것에서 오는 부끄러움이다.
‘중심과 주변’에 관한 활동의 막바지에, 무언가 부당한 것 같고 꺼림칙하지만 진행자가 고정한 중심으로 모이는 참여자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물었다. “어떤 경험과 시간이 우리의 몸에 쌓여서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는가?” ‘여기’의 의미는 중의적이다. 이 물음은 진행자가 지정한 중심까지 발걸음을 옮긴 것에 대한 물음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보다 훨씬 큰 의미를 숨기고 있다. 왜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과 언어에 끊임없이 의심을 하게 될까. 어떤 교육이 우리의 몸과 얼굴을 경직되게 했는가.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어떤 위치에 서서 구성원들과 교류하고 연대해야할까. 평화 교육에서 참여자들이 가져가야할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몸의 감수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모의 철학에 따라 교육 참여자들은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고, 스스로와 서로를 관찰하고 거기서 오는 느낌을 계속해서 나눈다. 평화교육을 통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언어를 나누고, 일상을 다시 살아보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며 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때로는 등과 등으로, 때로는 손끝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체온은 생각보다-흠칫 놀랄만큼-굉장히 따스해서 희미했던 서로의 존재를 또렷하게 느껴지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우리의 감각과 감수성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교육 과정에서는 스스로의 언어와 외면, 그리고 가치에 대해 의심을 품게 하는 부끄러움을 두고 ‘머릿속의 경찰관’이라고 부르곤 한다. 이 경찰관들을 몰아내고 온전한 만남과 배움에 닿기 위해서, 교육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우리는 몇 가지 ‘모드 세팅’을 실행한다.
” 늦어도 괜찮아 / 느려도 괜찮아 / 달라도 괜찮아 “
” 뭐든지 OK / 서로 힘주기 / 보이지 않는 실 찾기 “
‘늦어도 괜찮아’, ‘느려도 괜찮아’, ‘달라도 괜찮아’, ‘뭐든지 OK’, ‘서로 힘주기’, ‘보이지 않는 실 찾기(배우는 것들을 일상으로 가져가기)’ 등이 그 일환이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많은 교육 참여자들의 마음을 울린 ‘모드 세팅’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바로 ‘환대의 자세’다. 이 환대라는 키워드는 정말 인상이 깊었다. 다른 교육 참여자들 또한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실천하고 배우고자 하는 환대의 개념은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보통 환대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장면은 ‘집들이’와 비슷할 것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어떤 사람을 기다리고, 또 만나서 기쁘게 맞이하는… 그런 그림이다. 하지만 평화교육을 통해 배우는 ‘환대’의 성격은 훨씬 지속적이고 차별이 없으며, 몸의 감수성과 밀착된 개념이다.
나에게 특별하거나 어떤 이유로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환대해줄 수 있는 마음을 다듬어 간다. 비단 만남의 한순간에 큰 동작과 목소리로 기쁨을 표출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표정으로, 목소리로, 눈빛으로, 발걸음으로, 손끝으로 하여금 마치 피톤치드를 가득 머금고 노송지대를 잔잔하게 흐르는 공기처럼 환대의 기운을 느끼고 익혀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교육 참여자들은 서로의 존재를 더욱 또렷하게 재인식한다.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이고,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간에 고정된 권력은 없으며 우리는 모두 서로 배울 수 있다. 각자는 교육 참여자이자 교육 진행자이고, 배우이자 연출이다.
교육 참여자들은 이러한 세심한 환대를 느끼면서 서서히 처음 맞닥뜨린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햇볕이 들어오는 넓은 창, 경직되지 않은 공간, 아름아름 서로 모아온 간식들, 깊고 맑은 종소리,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에서 베어 나오는 기분 좋은 배려심, 서로의 일상에 대한 공감과 응원. 최소한 교육 당일 6시간 동안은,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불안과 부당한 권력을 도려낸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교육 참여자들은 전과 다른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글의 머리에서 인용한 글에서 말하듯, 어떤 아름다움 것들에서 오는 부끄러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얼굴을 후끈후끈 빨개지게 하고 몸이 따끔따끔해지는 부끄러움과는 다른, 긴 호흡의 자기 성찰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차분하게 되돌아볼 수 있는 감수성을 벼려낸 교육 참여자들은, 서로의 삶에 공감하고 나와 우리의 삶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 다른 곳에서 한 명의 진행자로서 이벤트를 진행한 일, 집에서 가족들과 긍정적인 소통을 하지 못한 일, 직장에서 동료들과 보낸 일들, 사랑하는 사람과의 순간들. 나의 몸과 그들의 몸이 닿았을 때, 서로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얼마나 그 순간에 성실했을까. 기꺼이 나를 대화에 초대해준 상대와의 시간에 충분한 감사와 환대로 참여했을까. 나는 왜 온전히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을까. 왜 부당한 것에 목소리를 내지 못했을까. 또 반대로 나의 가족들, 제자들, 동료들, 그리고 스스로의 목소리에는 얼마나 귀 기울였던가.
반을 달려온-아니, 춤 춰온-평화교육은 어떤 면에선 남은 2주차가 더 중요하다. 평화교육의 공간과 시간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교육 참여자들은 2주간 어느 정도 익혔을 것이다. 교육을 이수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의 준비, 몸이 풀리는 느낌, 긴 시간을 버티기 위해 틈틈이 당을 충전해야 한다는 것(게다가 간식이 정말 맛있다), 몸의 감수성에 집중해보는 것, 우리가 가지고 가야할 문제의식의 실루엣.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서울혁신파크 밖에 있다. 남은 2주는 위에서 언급한 종류의 부끄러움을 안고, 우리의 일상 속 일터와 인간관계 속에서 어떤 실천과 변화를 만들 것인지 고민하고 행동해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평화교육 진행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우리는 어느 정도 그런 의무를 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발을 빼기엔 늦었다! 교육 과정 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고 어떤 부당한 권력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섬세한 몸의 감수성과 변화의 관계, 그리고 그 가능성 또한 몸소 느꼈다. 우리의 ‘평화로운 미래’는 교육 참여자 한 명 한 명으로부터 이미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행복하게 살면 사는 것이지, 이 세상의 평화와 나의 삶 사이에 어떤 결정적인 관계가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나는 매주 6시간 동안 일어나는 놀랍도록 충만한 삶의 현장을 경험했고 이로 인해 어떤 삶의 변화를 느끼는 참여자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 빛나는 순간들은, 빈 의자에 귀한 손님을 모셔오면서 맞닿은 작은 면적의 손끝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아, 충분히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끝으로, 첫 주차 교육 이후에 집에 돌아가는 길에 노트에 적었던 글을 옮긴다. 빈 의자가 생기면, 그 양 옆 사람이 랜덤으로 참여자 한 명을 모셔서 자리를 채우는 활동을 한 뒤에 느낀 내용이다.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아주 재미있는 느낌 중에 하나는 ‘새삼스러움’이다. 몇 시간 전에 느낀 것이 뭐냐면, 새삼스럽지만,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빈 의자에 손님을 모시는 것 자체도 특별한데, 양 손을 잡고 손님을 모셔 와서 의자에 앉으며 ‘손을 놓는 순간’이 굉장히 더더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민들레 씨앗을 바람에 날리듯이 잡고 있던 손을 놓아 보내고, 어떤 사람은 잔잔한 호수에 풀로 만든 배를 띄우듯 살포시 떨어뜨리고, 누군가는 나보다 한 박자 빨리 혹은 느리게 헤어짐을 고한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는 그 당연한 사실이, 이토록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의 쾌감은 정말이지 묘한 설렘이다.”
작은 에세이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 – 홍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