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모모와 함께 한 나의 봄과 겨울
작년 이맘때 광장으로 나갔다. 큰 광장, 많은 사람들 속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나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광장으로 나서던 것도, 촛불을 드는 것도, 피켓 한 장 드는 것도, 다 겁이 났다. 거대한 힘에 반대의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기에, 행동 하나하나가 다 어색하기만 했다. 하지만 겁나고, 어색한 것 이상으로 속상했던 것은 바르게 볼 줄 아는 힘이 없는 내 자신이었다. 동물적 감각으로는 지금 이 사회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도무지 뭐가 잘못 된 것인지를 바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없는 내가 무식쟁이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장으로 나섰다. 순전히 내 욕심이었다. 몇 십 년 후, 역사책에 기록이 될 이 장면을 책에서 마주할 때마다 ‘그때 나는 집에 있었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낯선 광장, 추운 겨울 날이었지만,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초를 잡고 있는 순간만큼은 내가 밖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따듯했다. 사회 속에 산다는 것은 추운 밖에 내던져 지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의 온기를 나누고 사는 삶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해가 바뀌었고, 겨울이 끝나 봄이 찾아오면서 조금씩 사회 속 변화가 생겨났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삶은 지난 겨울과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회를 보는 눈도, 생각하는 사고관도 크게는 해오던 대로였다. 촛불 그 이후, 난 뭘 해야 하는 거지? 사회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 거지?에 대한 답을 해주는 곳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후~ 불면 꺼져버리는 촛불처럼 정의를 갈망하던 논쟁이 한숨에 꺼져버리는 것은 아닌가 겁이 나기도 했다. 여러 단체들이 하는 강의들을 하나, 둘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이 피스모모의 평화대학. 8주 과정 동안 다루어지는 소재들은 그 전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성평등, 양심적 병역거부, 한국 난민 문제 등등. 전에는 이런 이야기는 나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문제였으므로 그들이 풀어가야 하는 숙제로 두고, 외면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때는 뭐든 일단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약간의 기대감과 ‘무심코’ 참여하게 된 피스모모 평화대학. 매 강의 때마다 눈물이 터지기 일쑤였다. 때로는 강의 내용 자체가 나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는 것 같아서, 때로는 말을 전해주시는 분들의 사례를 접하면서. 한 주, 한 주 감성적이지만 감정적이지 않았던 지난 시간들이었다. 바르게 분노하고,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는 가슴을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고 하면 말이 복잡하지만, 사실 그렇다.
봄 그리고 8주간의 시간은 감사함 그 자체였고, 겨울 그리고 6주간의 피스모모 액티비스타 활동으로 그 여운을 이어가게 되었다. 8주간 받았던 ‘환대’의 추억을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별명을 정하는 것부터 신중했다. 액티비스타로 활동 확정이 되기 전부터 별명에 대한 고민을 하고 결정한 것은 ‘반가워’였다. 불러주는 이도 환대를 받는 것 같고, 듣는 이도 환대를 받는다는 생각을 해주는 것이었다. 나의 이름 보다는 ‘반가워’라는 별칭으로 지낸 6주는 또한 새로움이었다. 다루는 주제와 강의 내용은 처음 접하는 것들이 많아 강의를 기록할 때마다 자습을 하는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기록이 어려울 정도였다. 내가 과연 이 주제들을 소화해낼 수 있을까? 이번 평화대학을 괜히 욕심 냈나? 하는 흔들림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나의 일기장에는 강의시간에 다루어졌던 단어들과 소재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일상을 보내면서 ‘걸리는 것’들이 드문드문 생겨났다. 그전에는 흘려 보내던 것들이 일상의 ‘무엇’들이 턱,턱 걸리면서 사유를 하게끔 되는 것이다. 일상을 좀 더 낯설게 보게 된 지금이다.
일년 동안, 개인적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피스모모와 함께한 시간’도 그 많은 일 중에 굵직한 하나이다. 피스모모와 함께한 8주 그리고 6주의 시간을 정리하는 지금 이순간을 바로 작년 이맘때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문득 내년 이맘때에는 어떤 이야기를 자판으로 찍어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함께 할 수 있어 저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피스모모.
by 피스액티비스타 반가워(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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