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감과 무력감.
수 년간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자주 느낀 감정을 꼽으라고 하면 이 둘이지 않을까 한다. 작년 10월에 가자지구에서 학살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장애인으로서, 외국인으로서, 타자로서 할 수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 사이의 간극을 고민하면서 이러한 감정은 한층 심화되었다. 피난민 마을에서 태어나 군사기지 주변에서 살고 실향민 등 전쟁과 군사주의를 직접적으로 경험해온 가족들에 둘러싸여 자란 나는 무엇이 전쟁과 군사주의를 가능하게 하고 지속시켜 왔는지, 어떻게 폭력과 착취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하며 이에 관한 연구 활동을 작년에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피스모모의 평화대학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못하는 장애 외국인 활동가로서의 고민을 안고 참여하게 되었다.
4주라는 짧은 기간이었고 시차 때문에 매 수업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는 수고가 있었지만 내용 구성이 알차고 다양한 진행자와 참여자들과 함께 배움의 과정을 하는 것이 좋았다. 한국이라는 맥락 안에서 평화권과 평화주의가 어떻게 이야기되었고,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기초적인 부분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호사스럽게 느껴졌다. 각 회차마다 강연 후 담화가 이어졌는데 다른 참여자들의 의문점이나 관점들을 듣고 나의 개인적 경험과 연구와 연결지어서 참여할 수 있어서 매우 유익했다.
비록 마지막 대면 회차에는 참석할 수 없었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느꼈다. 어떻게 평화라는 것을 추상적인 관념이 아닌 실제 삶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관계 맺는 소소한 부분에서 부터 찾아 볼 수 있는지, 평화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어떻게 형평성 (equity)와 포용성 (inclusion)을 고려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 앞으로 좀 더 깊게 탐구할 부분들에 대해 명확히 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긴 것 같다.
고립감과 무력감은 계속해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겠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평화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에 희망을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