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26년 평화교육진행자되기 입문과정을 마치고 by 보리사자

몇 년전 큰 인기를 얻었던 ‘나의 해방일지’에서 등장한 ‘추앙’이란 단어는 존재하나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말이었다. 그 생소한 단어는 한동안 나와 내 주변에 머물렀다. 나에게 평화라는 말은 추앙이란 단어만큼이나 낯선 말이다. 존재하지만 현실에서 사용될 일이 거의 없는 유토피아적인 말. 그 단어를 떠올리면 지나친 이상주의자나 취기에 기대어야 뱉을 수 있는 드문 말이었다. 그럼에도 난 늘 함께 공존하며 평화롭기를 바랬다. 그런 평화는 지금 현재 애쓰고 있는 사람들이 명맥을 유지한다면 드문 일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에서나 맛볼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피스모모에서 [평화교육자진행자되기 입문과정]을 듣고 ‘지도자’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피스모모에 대해서도 경험하고 싶고 혹시라도 이 과정을 듣게 되면 내 친구들과의 관계가, 내가 속한 작은 공동체에서만이라도 평화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그 팁을 툭~! 하고 던져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막상 참여해보니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같았다. ‘답’이란게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어 머리가 아파왔다. 난 큰 걸 바라고 참여한게 아닌데… 내가 할 수 있는 팁만 얻어 적당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과정에 참여하기 전보다 나는 더 복잡했다. 함께 하는 나의 배움친구들은 나와 다르게 기초가 단단한 사람들인가… 나만 혼란스러운가… 그 혼란스러움을 숨기며 퇴근(?)을 했다.

의견이 유사하거나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과의 소통도 속도를 늦추고 새롭게 보고 다르게 바라봐야한다는데… 심지어 의견이 다르고 싫어하는 공동체에서는 어떻게 그 노력이 가능할까… 한 두번 시도하고 지치고 포기하고 단정하고 이분법적인 사고로 더 사이가 벌어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현실에서 소통을 위해 느긋하게 기다린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경청하고 다정하게 해석하고 싶지만 그동안의 경험이 나를 차가운 태도로 다시 몰아넣었다. 더 자세히 말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나 자신도 신뢰하지 않고 인류애도 부족하고 성급하고 효과를 보지 못하면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바로 냉소적으로 바뀌는 사람이었다. 과정을 거듭할 수록 나 자신을 발견했고 그 사실과 마주할 때는 불편했다. 적당히 잘 살고 있었는데… 괜히 입문과정을 들어서 나의 보기 싫은 모습을 봐 버렸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도 괜찮다며 수용받을 수 있다고 환대를 받고, 나의 배움친구들에게도 환대를 하게 해준 과정이었다. 냉소나 포기가 끝이 아니라 환대의 마음이 끝에 남아 말랑한 뭔가가 남았다. 휴..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당장 실천하고 싶었다. 거대한 담론은 나를 더 무력하게 한다. 나에게 비타민 같았던 배움동료들은 내 주변에 없으니 나에게 평화는 조용한 하루일 수도 있고 내 친구들에게는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내가 그들에게 비타민 같은 존재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나와 관계맺고 있는 사회에서 차갑게 반응하지 않는 것, 흔들리는 사람을 함부로 밀어내지 않는 것. 그래서 평화는 거대한 선언이라기보다 내가 속한 관계(공동체)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감각에 가까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네 번의 긴여정을 통해서 경험한 것은 평화는 싸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 내 감정과 의견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관계, 사회, 그리고 서로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적어도 작은 희망을 더 이상 유토피아적 상상으로만 치부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해도 어디에서 바람이 불면 흔들리며 그 바람에 반응하는 배움동료들이 있음이 나를 조금 더 안심시켰다.

땡큐 배움동료 & 피스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