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정은 기자, 기자 같지 않지?”
“엥? 기자같지 않은 게 뭔데요?”
“칭찬이지. 하하하”
“교사같지 않다는 것도 칭찬이잖아요.”
5월 26일, 구정은 기자를 카페 트랜스에서 처음 만나고, 집에 가는 길에 영주샘과 나눈 대화다. 기자 같지 않은 기자를, 교사 같아 보이고 싶지 않은 교사가 만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구정은 기자를 처음 만난 건 ‘코로나19와 세계’ 온라인 집담회였다. 구정은 기자는 역사 교사들 사이에서 세계사 시간에 독서 수업으로 자주 활용하는 『10년 후 세계사』저자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 ‘구정은 기자의 평화를 위한 미디어 읽기’ 모모평화대학은 내용도 보지 않고 신청했다. 구정은 기자라면!
구정은 기자의 강의는 내내 차분했다. 강의 내용을 놓치고 싶지 않아 바쁘게 필기해야 하는 내 손과, 새로운 지식을 쉴새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내 머리만 바빴다.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이 쉴새 없이 쏟아졌고, 강의를 들으면서 파편으로 흩어져 있던 지식들이 신기하게도 서로 꿰어져 연결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많은 국가들과 그 나라들의 복잡한 역사들이 나왔고 그것들이 공간적/ 시간적으로 연결되었다. 2000년대 일어난 프랑스 테러가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간 침공과 연결될 줄이야!
#1.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고 왜 말을 못해?
‘이라크 전쟁’이 아니라 ‘미국의 이라크 침공’
세계사 수업을 하면서 『오늘의 세계분쟁』 책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한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자기가 선택한 국가의 분쟁과 해결방안을 발표하는 수행평가 과제를 내주었다. 팔레스타인, 이라크, 시에라리온, 브렉시트, 로힝야족…등등 30명이 각자 하나씩 주제를 발표했다. 발표는 주로 분쟁의 복잡한 인과과정을 밝히는 데 집중했고, 그걸 설명하고 이해하느라 무척 어렵고 복잡한 수업이 되어버렸다. 이번 강의를 들으며 그 수업 생각이 났다. 구정은 기자의 강의를 들었다면 그렇게 수업 안 했을 거라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렇게 어렵게 복잡한 인과관계를 따질 게 아니라, 간단하게 어떤 놈이 나쁜 놈인지 이야기해주고, 그 분쟁 속에 피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이야기할 것을…. ‘이라크 전쟁’이 아니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라고! ‘터키와 쿠르드 족의 갈등’이 아니라 ‘국경 넘고 탱크를 가지고 쿠르드 족을 학살하러 간 사건’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할 부분은 명확하게 이야기해줘야 한다. 쓸데없이 중립적 관점을 내세우지 말고! 국제 이슈 기사들은 도대체 누구의 눈치를 보느라 복잡한 것처럼, 중립적인 것처럼 쓰게 되었을까?
#2. 전쟁 보도 화면 속,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국제 뉴스는 복잡하고 어렵고, 아주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느껴진다. TV에서 보여지는 전쟁 장면을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무심하게 바라본 적도 있다. 폭격이 벌어지고 있는 장면이 아주 오래전 사건의 자료화면인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 구분하지 않고 볼 때도 있었다.
구정은 기자가 말했듯 ‘전쟁’은 남의 일처럼 들리게 한다. 다른 국가가 하는 외교정책인 것마냥 보이게 한다. 전쟁을 ‘사람을 많이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써준다면 사람 죽이는 일을 태연하게 바라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동티모르 핍박’이라는 글자 속에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인간이 인간의 신체와 정신에 대고 하는 짓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면 그들이 겪는 고통에 그제서야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세계사 교과서에는 전쟁터, 무기들의 나열, 누가 이기고 지는지 전개과정만 서술되어 있다. 전쟁으로 인해 죽고 다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빠져 있다. 세계사 수업에서 ‘전쟁’, ‘폭격’ 과 같은 추상적 언어, 포괄적 언어에 숨겨진 의미를 풀어, 전쟁으로 삶이 파괴당하는 것, 전쟁 속에 숨겨진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표현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20명 타는 배를 몇 십명이 타고 바다를 건너 난민들이 그리스로 건너간다’고 자세히 전달하면 추상적으로 여겨지던 ‘난민’ 문제가 다르게 다가온다.
전쟁사를 수업할 때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와 영향이 있었는지, 얼마나 잔인했는지, 누구에게 가장 피해를 주었는지, 이 일이 얼마나 슬프고, 관심가져야 할 일인지’ 이런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에 새겼다.
#3. 국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해야 한다고? 니가 루이 14세냐?
국익은 누구의 이익?
파병 문제를 토론할 때 늘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국익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심정적으로 반대였지만, 논리적으로 반박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구정은 기자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에 딱 맞는 반박거리를 찾았다. 바로 이 질문!
“니가 루이 14세냐?”
“누구를 위한 이익인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어떤 기업을 위한 이익인가?”
오지랖 넓게 국익까지 고려하던 나는 이제야 비로소 시민의 위치를 자각하게 되었다. 나는 시민으로서의 상식에 비추어 나의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 내 위치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 국가의 입장까지 고려해서 고민하지 말고!
반전 평화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였던 헬렌 켈러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거대 기업과 자본주의자를 위한 것이다“
#4. 죄책감 없이 드론 무인 폭격기로 사람을 죽이는 세상
무인 폭격기로 사람을 죽이면 누구를 죽이는지, 누가 죽이는지 죄책감이 없어진다. 오폭의 가능성도 많다. 게임을 하듯 좌표를 설정하고 폭격을 퍼붓는다. 감정이 없는 비행기는 폭격으로 파괴하는 것은 목표에 설정된 좌표일 뿐이다. 전쟁은 사람의 이름, 얼굴, 스토리를 지워버린다.
‘교량번호 211’ 대신 ‘한강대교 폭파’ 라고 한다면!
‘좌표상의 지점’이 아니라 ‘마을 이름’을 쓴다면!
‘폭격한다’라는 표현을 ‘폭격으로 누군가가 갈기갈기 찢겨 죽는다. 먼지를 뒤집어 쓰고 질식하게 만들었다.’라고 자세하게 쓴다면!
‘키르기스스탄의 오슈라는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오아시스 도시’에서 일어난 전쟁이라고 한다면!
사람을 죽이는 일을 이렇게 죄책감 없이 계속할 수 있을까?
#5. 평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알고자 하는 것!
강의 도중 이 질문을 받았다.
“나는 전쟁의 수혜자이지 않은가? 수혜자는 아닐지라도 방관자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질문을 받자마자 내가 전쟁의 피해자일지언정 수혜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국전쟁으로 분단되어 반쪽 짜리 이념과 반쪽의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강의를 들으며 전쟁의 배경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와 연관되지 않은 전쟁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알게 되면 공감하게 되고, 시야가 넓어지면 공감의 범위가 넓어지게 된다. 구정은 기자의 이 말이 강의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멈추기 위해 딱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자 하고 분노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6. 세계사 수업 토론 주제
구정은 기자가 던져준 이 이야기를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좀 더 공부해서 토론 수업으로 해 보고 싶은 주제들이다.
| <세계사 토론 수업 주제> 몇 명이 죽으면 큰 사건이라 느끼나? 어떤 걸 전쟁이라 부를까? 이라크전보다 더 많은 사망주를 낸 쿠르드족, 멕시코 마약과의 전쟁에서는 15년간 20만명의 사망자 파리 테러와 세계의 연대 표시…그럼 중동은? 우리 인식의 범위에 따라 공감, 애도, 분노의 범위가 확장된다. 애도, 공감, 분노의 범위를 얼마나 넓힐 수 있는가? 프랑스, 벨기에 테러와 소련 아프간 침공이 무슨 상관? 지리적으로도 멀고, 시기적으로도 1980년대와 2000년대인데? 냉전 시기 이데올로기 싸움과 이슬람 세력의 테러의 연관? 아프리카 내전에 제국주의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책임이 있다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까? 인도적/군사개입 논리적 모순! 인도주의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도록 돕는 것이고, 군사개입(평화 재건, 건국 보조 등) 은 무력을 사용하는 것. 인도주의와 군사개입은 서로 모순되는 개념. 무력으로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면 개입해야 한다? – 1990년대의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발칸반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대학살의 위협을 막기 위한 나토군의 공습으로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 르완다 내전에 미국은 개입했어야 했었나? 르완다에 사과한 미 클린턴 대통령! – 2011년 아랍의 봄, 개입 –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어야 했나? 우리는 미국의 요청 거부 못하지 않나? ‘인도적 개입’과 ‘국익’ 사이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들 베트남전쟁, 국익을 위해서 파병, 결과적으로 경제적 이익도 가져오지 않았나? 모두가 반대하는 이라크 전쟁에 파병을 했어야 했나? 평화유지활동을 일환으로 의료, 재건 활동을 위해 파병했으니 괜찮은가? 호르무즈 파병, 소말리아 해적 소탕작전에 참여하고 있던 청해부대 작전구역 변경이므로 파병이 아니다? 이라크에 파병하고 사우디 석유를 써도, 난민은 안 받아? 우리가 쓰는 사우디 석유를 팔아서 번 돈으로 예멘에 폭격을 해서 난민이 발생한 것이다.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 쿠바 관타나모에 10년 이상 갇힌 위구르인! 왜? 아프간에서 잡힌 중국 위구르인, 혐의가 없이 아프간에 있었기 때문에 관타나모 수용소에 감금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 어떤 집단에는 적용되지 않는 평화, 인권, 민주주의, 자유 김정은 독재정권을 만나야 하는가? 적대시해야하는가? 평화의 보편적 잣대는 어떤 집단의 힘이 없는 사람들을 늘 염두해 두는 것이다. 평화를 생각할 때 어렵지만 좀 더 복잡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식으로 평화가 필요한 삶을 가져오는 방법이다. 산재가 2400명인데 왜 김용균의 죽음만 애달파하는가? 사회의 감성을 움직이는 것, 심리를 움직이는 임계치가 있다. 시리아 아이의 죽음 사진처럼 의회 여성비율 높고, 성폭행은 살인강도에 준하는 강력한 처벌을 하는 나라, 르완다 르완다 내전 진상규명 및 화해절차를 스스로 밟았다. 마을 단위로 위원회를 두고 힘겹게 진상을 규명하는 절차를 밟았다. 국제형사재판소 반인도범죄 이스라엘 기소하지 않고, 아프리카만 기소, 아프리카 재판소냐? 형평성 문제! 김선일 씨의 죽음 전쟁의 맥락을 너무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등한 인격으로 보지 않는다. 존중하지 않는다. |
[덧붙임] 피스모모가 쏘아올린 작은 공
피스모모를 알고는 있었지만, 강의를 직접 들을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학교는 코로나 때문에 개학이 연기된 상태였고, 마침 온라인으로 강의를 한다고 하여 2020년 3월 18일!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피스모모! 모모평화대학 초봄학기에서!
피스모모는 알까? 피스모모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어디까지 날아갔는지? 역사교육에서 평화를 생각하게 되었고…….등등 이런 중요한 효과 말고! 부수적 효과도 있었다. 피스모모가 시도한 Zoom 강의를 듣고, 온라인 화상강의를 처음으로 맛보게 되었다. 온라인 화상강의의 가능성을 알게 되어,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도 온라인으로 시도해보자고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결국 화상으로 전국운영위원회를 개최하고, 새내기 교사를 위한 수업페스티벌, 직무연수도 온라인으로 하게 되었다. 피스모모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이렇게 전국의 역사선생님들에게도 전해지게 되었다. 용기 내어 새로운 시도를 해준 피스모모에게 감사를 보낸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후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본다. 늘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벌이는 피스모모! 항상 응원합니다! 정말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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