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모모가 꿈꾸는 "평화커먼즈를 실현하는 시민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요?어떤 과정을 통해 평화커먼즈를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질문에 답하기 위한 한 가지 시도로서, 피스모모의 평화교육진행자 그룹의 공부모임이 운영되고 있습니다.커머닝(commoning, 커먼즈를 가꾸는 구성원의 기여와 그 일련의 과정들)으로서 공부하고 사유하는, '존재하기 위해 변화'하는 서로배움 공동체의 소식을 나누어요😊 언제: 2023년 11월 10일(금) 저녁 7시-9시 어디에서: 피스모모 사무실 누가: 아싸, 그린하, 영철, 사다리, 가지 배움자료: 피스모모(2023) 『모모평화대학 초여름학기 자료집』 (발제: 영철) 지난 공부모임에서는, 안보론 비판을 토대로 공동안보에 대한 상상력을 모아보았지요! 군사적 위기와 기후위기를 포함한 복합위기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그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으로서 공동안보를 이해한다면, 이번 모임에서는 그 '복합위기'라는 것이 과연 어떤 내용인지 조금 더 살펴보았어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이 득세하며 만들어 온 군사안보 중심의 세계가 얼마나 지속가능하지 않은지, 기후위기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따져보았지요. 이번 "2023 모모평화대학 초여름학기: 공존의 조건, 평화의 조건 - 기후 위기와 군사활동, 그 드러나지 않은 관계"에서 다뤄진 내용을 중심으로요.*대략의 내용은 프로그램 스케치 영상(클릭)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어요. 자료집은 현재 출간을 위해 편집 작업을 거치고 있어요. 수다 떨며 서로배웠던 시간의 생생함을 나누고 싶어서, 참여한 분들의 언어를 최대한 살려 몇 장면을 공유해요😊 #1"저는 솔직히, 이 자료집 읽기 전에는 기후위기와 군사활동이 무슨 관계가 있나 싶었어요. 감도 안 왔는데 읽을수록 정말 그렇구나 싶었어요. 아직 이 내용을 종합적으로 연결해서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나누고 실천을 구상하기는 좀 어려웠어요." "저는 제일 첫 번째 글에 꽂혔어요. 기후위기 담론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군국주의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낯설게 보는 글이요. 현재 우리 앞에 닥친 위기를 강조하고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켜서,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권력 독점을 당연하게 만드는 언어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는 논지로 이해했거든요. 그럴 수 있겠다 싶어요.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이고, 우리의 인식을 담아내니까요. 그렇다면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걸까요? '긍정적인 언어'라고 말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는데, 기후위기를 사람들과 나눌 조금 더 실천적인 언어, 긍정의 언어를 발굴하고, 관련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조금 비슷한 고민, 이게 정확히 연결되는 고민인지 모르겠는데요. 평화 이야기를 하다 보면 무엇의 반대말로서 정의되곤 하잖아요. 평화의 정의도 폭력의 부재 또는 폭력이 줄어드는 과정이라고 말하죠. 그리고 평화와 관련된 집회나 시위에서 많이 보이는 슬로건 중에 OO반대, OO폐지하라 이런 것들이 많잖아요. 명료하게 잘못되었음을 알리는 언어가 되게 유효하고 필요한데, 반대항이 존재할 때만 평화라는 개념이 유효한 것인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지거나 확장성을 담보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꼭 누군가를 궁지에 몰아넣지 않더라도, 긍정의 언어 플러스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 대안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게 너무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려워요. 마케팅 책을 공부해야 하나요?" "저는 아무리 그래도 군사안보에서 이야기하는 위기-비상사태와, 기후정의를 추구하며 위기-비상사태를 제기하는 것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왜냐면 군사안보에서의 위협이라는 것은, 그 위협을 해석하고 제기하고, 위협으로부터 지켜야 할 대상과 수단이 굉장히 단순하고 위계적인 개념이잖아요. 권한-권력 독점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비판해야 하죠. 그런데 기후위기는 정말 모두가 살고 있는 세계가 망가져가고 있으니까, 누구도 누구를 위해서 해줄 수 없고 모두가 같이 대응해야 하니까(물론 특정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죠), 경종을 울리기 위한 언어로서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해요. 저는 오히려 다른 측면으로, 위기랑 비상사태라는 언어를 계속 발신하는 게, 오히려 대중적인 피로감을 높이고 구조적 원인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언어 사용을 비판할 수 있지 않은가 생각했어요." #2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1997년 교토 의정서에서 군사분야의 탄소배출 감축 책임이 면제됐고,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서는 군사분야 탄소배출량 보고 의무도 선택 사항으로 남겨졌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데이터가 많지가 않아요. 관련된 글을 보면 매번 인용하는 통계가 똑같아요. 몇 안 되는 통계만 봐도, 보고하지 않는 게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라서, 이 말 안되는 일이 어떻게 정당화되었는가 비판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진행된 일인데 과연 국가안보가 무엇인가, 누구의 안전을 지키는가, 단순하지만 핵심을 꿰뚫는 질문을 계속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더불어 반복되는 통계도 누군가에겐,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알려지지 않았기에 더 많이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 같아요. 2020년 기준으로 한국 국방부가 배출한 탄소 배출량이 388만 톤인데 이게 다른 783개 공공기관보다도 더 많다, 그리고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5.5%는 군대인데 국가로 따지면 세계 4위에 해당한다, 근데 이게 심지어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는 데 있어서 scope1, 2, 3이 있는데 scope 3+는 더해졌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수치라는 것 등이요." "모르기 쉬운 환경 같아요. 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잖아요. 자료집 중 담론복합체 이야기도 나왔는데, 노조 파업이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 등에서 숱한 예시를 찾아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몇몇 사람들은 감춰진 사실을 알고 나서 내가 무지했다고 자책도 하겠지만, 구조적 원인이 있기에 누굴 탓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것도 모르냐고 비난할 수도 없죠." "개인을 탓하거나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일회용품 줄이는 것이 더 생태적이라고 하는데, 당장 더 저렴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선택지가 없는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기가 쉽지가 않죠. 그렇지만 개인에게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가 현재 모여있듯 풀뿌리 조직에서 성찰적 대화와 실천이 어떻게 더 많아지게 할 것인지 고민과 함께,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변화를 같이 봐야하는, 참 어려운 고민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여느 이슈처럼 길게 봐야 하는 것 같아요. 길게 보았을 때 변화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언론에서 잘 안 다뤄진다고 하지만, 군사비 지출이나, 군사활동과 기후위기 관련된 뉴스들이 불과 5년 전과 비교하면 그래도 많아졌다고 느껴요. 피스모모에서 스톡홀롬국제평화연구소에서의 연감 요약본을 한국어로 번역한지 6년이 되었는데요. 각 지역에서 군사비 지출이 얼마나 되는지 동향과 데이터를 담은 보고서거든요. 한국어 번역본이 없었을 때는 영어 원문 자료에 접근이 가능한 소수의 사람들만 자료를 인용했는데, 이제는 언론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인용하는 것 같아요. 군사비 지출이 전세계적으로, 동북아에서, 한국에서 과연 얼마나 되는지, 이 정도의 재원을 군사비에 지출하는 게 합당한지 등의 논지가 담기기도 하죠 가끔. 군사활동이 탄소 배출에 있어 가지는 책임에 대해서도, 불과 2-3년 전만 해도 오마이뉴스 같은 곳에 활동가들이 기고한 글이 전부였는데, 이제 메이저 언론이라고 불리는 곳에서도 공부하고 취재하고 보도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3"정말 실용적으로 보았을 때, 군사비가 너무 많이 쓰이고 있는 것 같아요. 평화적 신념이 아니더라도 군비 축소해야 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아요. 불필요하게 쓰여서 정작 필요한 복지, 환경, 교육 등에 못 쓰이잖아요. 예전에 문재인 정부 때, 코로나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서 국방비 1조 원 정도를 감축해서 사용했던 기억이 나요. 물론 그 1조 원은 방위력 개선비, 무기를 구입하기 위한 비용이어서 구입 시기를 코로나 이후로 미뤘다는 점에서 조삼모사기는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가 많이 없어서 주목할 만 했던 것 같아요. 뭐가 더 중요한지 질문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거죠. 보수 언론들은 호들갑 떨거나 비판하지만, 국방비 1조 원 줄어도 아무 일 안 생기잖아요. 긍정적-더하기의 상상려과 스토리텔링을 위한 재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국가가 20대 초반의 남성들을 징집하고서 터무니없는 금액을 주었던 과거와 다르게, 합당한 노동의 대가로서 임금을 늘리기 위해 국방비가 증가한 거라면 일단 비판은 유보하고 싶어요. 다만 보수 쪽, 정말 경제적 효율성과 자유시장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도 비판할 만한 지점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월급을 그렇게 늘리고 국가 재정을 투여할 정도로 경제적인-실질적인 효과와 리턴이 있는 투자냐는 관점에서요. 안보는 물리적 실재와 관념적 실재가 합쳐진 개념이기 때문에, 적으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실제로 어떤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는지 추산하기가 되게 어렵잖아요. 가능하다고 해도 경제적 관점에서 매우 비효율적이지 않을까, 이렇게 비판하는 사람들은 없는지 궁금해졌어요." "교육 현장에 갈 때 세속적인 언어와 논리도 준비해가면 좋다고 생각해요. 물론 군축 지향은 명확하고, 안보론 비판의 논지와 안보딜레마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겠죠. 근데 처음부터 이야기하면 너무 장벽이 높으니까, 전세계가 또는 남북이 얼마나 많은 돈을 군사비에 사용하고 있는지, 좀 아깝지 않은지, 다른 방식으로 어떠게 사용해볼 수 있을지 등으로 대화를 연다면 자본과 관련된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는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전략적으로요." #4 "기후위기와 군사적 위기의 심화가 어떻게 가능해졌는지 생각해보면, 결국 그 토대는 특정한 존재들을 타자화하거나 비인간화할 수 있는 사회적인 합의나 관념인 것 같아요. 자료집 중 네크로필리아 또는 바이오필리아 카모플라쥬가 가리키는 현상이죠. 사회적인 합의나 관념은 되게 일상적인 순간에서도 발견되는 것 같아요. 기후위기 주제까지 가지 않아도, 같은 반 내에서 조금 이상해 보이는 아이들과 안 논다거나, 지하철에서 피부색이 조금 다른 사람 옆자리는 비어 있다거나 등이요. 저는 특정 사람이나 종에 대한 비인간화,사물화를 낯설게 보기 위한 재료는 (슬프지만) 충분한 것 같아요. 많은 경우 조금 무기력하게 느껴지지만, 우리가 교육 진행자로서 뭘 어떤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을까, 작은 조건들을 바꿔볼 수 있을까 고민하면 재밌기도 해요." "저도 연결해서 나누면, 그저께 제가 살고 있던 지역의 교육청 장학사한테 전화를 받았어요. 9대 1로 학폭이 일어났대요. 근데 그 한 명이 장애를 가진 아이였어요. 9명이 그 아이를 괴롭힌 거죠. 비슷한 사례가 전국적으로 많을 거예요. 어떤 특징을 잡아서 얘는 놀려도 되고, 얘는 모자라니까 함부로 대해도 되고 등, '나'와 '우리'와 조금 다르거나 열등하다고 여기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례들이요. '우리'라는 개념을 좀 다시 보게 됐어요. 좋은 개념으로서, 공동체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우리' 밖에 있는 것들을 구분하고 배제하기에 너무 쉬운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제주 4.3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3만 개의 사건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다른 사회적 재난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죠. 더 많은 교육이나 대화의 장에서, 하나의 사건이나 전쟁으로 뭉뚱그려 말하지 않고, 희생 당하거나 영향을 받은 존재들 하나하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기회가 생긴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지 생각하곤 해요. 한 명 한 명의 서사와 맥락이 너무 다양하고, 보다 입체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감정적으로도 깊이 몰입하고 연대할 수 있게 되니까요. "이번 아덱스 무기박람회 저항행동도 비슷한 관점에서 진행됐어요. 죽고 싶지 않다, 죽이고 싶지 않다, 집이 무너진다, 살던 곳을 떠나야 한다 등, 무기가 사용되는 현장에서 살고 있을 존재들의 입장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무기박람회 반대를 머리로 생각할 때와, 실제로 액션에 참여할 때 경험이 질적으로 달랐어요. 누구도 죽이거나 죽고 싶지 않고, 그럴 수 없다는 감각이 훅 와닿았어요. 군대 안 돼, 전쟁 안 돼, 무기 박람회 안돼라고 얘기하는 것과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의 서사를 알고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서사를 알면, 맥락을 볼 수 있게 되어서 좋은 것 같아요. 가자지구에서의 전쟁에 대해 이스라엘도 나쁘고, 하마스도 나쁘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많더라구요. 비인도적 행위에 대해서는 비판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는 맥락들이 있잖아요. 태어났을 때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에서, 늘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살게 된다면, 누구라도 무장 세력이 될 것 같거든요. 어차피 죽어있었으니까요. 우리가 그 사람의 삶을 살아보지 않고,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왜 똑같이 공격을 하는지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로 인해 희생당한 존엄한 존재의 삶을 들여다보고, 충분히 애도하는 것과 동시에, 왜 그런 한 명 한 명이 죽어가야만 했는가에 대해서 진상 규명을 하고 책임자 처벌하고 질문하고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구조적인 원인에 대해서도 질문해야 하니까요. 원인으로 지목된 것들이 많잖아요. 과적의 문제도 있고, "가만히 있으라"며 수동적으로 만드는 교육의 문제도 있고, 철근이 알고 보니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서였다는 점 등, 이런 참사가 어떠한 토대 위에서 발생하는가를 규명하는 것은 하나의 사건으로서 호명하고 바라볼 때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