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모모가 꿈꾸는 "평화커먼즈를 실현하는 시민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과정을 통해 평화커먼즈를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질문에 답하기 위한 한 가지 시도로서, 피스모모는 평화교육진행자 그룹과 역량강화 공부모임을 운영합니다.커머닝(commoning, 커먼즈를 가꾸는 구성원의 기여와 그 일련의 과정들)으로서 공부하고 사유하는, '존재하기 위해 변화'하는 서로배움 공동체의 소식을 나누어요😊 언제: 2023년 4월 13일(목) 7시-9시 30분 어디에서: 피스모모 사무실 누가: 라니, 온, 가지, 사다리, 영철, 그린하 배움자료 ① 정현곤 엮음(2016). 『변혁적 중도론』 (발제: 라니) ② 디터 젱하스 저, 김민혜 역(2016). 『지상의 평화를 위하여』 (발제: 사다리) ③ 모임 참여 전 공유한 모두의 글쓰기 지난 모임(3월 4주)에서는 군비경쟁과 군사주의를 심화시키는 기제로서의 분단(폭력)에 대해 살펴보았어요.'예외상태'에 근거해 위협과 안전 보장의 해석과 실행을 독점하는 정부/국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포함되었는데요.모두의 안전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상 발화자의 안전/이익만을 보장하는 역설을 넘어서기 위해,이번 모임에서는 국가 이성이 작동하기 어려운 맥락과 조건들을 더 깊게 파고들어가기로 했어요. 『변혁적 중도론』 중에서는 김현미 선생님이 쓰신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 국가와 생활정치"에 집중해보았는데요.본문에서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비로소 정치적 자유가 주어지는 상황,국가라는 체제는 그를 보완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용하거나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상황,구체적인 시민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관리자 역할만을 하게 되는 상황을 ‘국가없음’으로 명명하며 진단하고 있어요. 2016년에 쓰여진 글인데 왜이리도 생생하고 유효한 논의인지, 씁쓸함을 나누었지요.2008년의 촛불시위와 2014년의 세월호 참사가 환기한 생활정치에의 유산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요?명료한 정답과 단기적인 해결책은 없겠지만, '생활정치의 회복을 통해 상호공존의 정치적 회로를 구축'하자는 제안에서 논의를 뻗어보았어요. 해당 제안은 피스모모의 평화커먼즈와도 맞닿아있어 반가웠답니다. 현장의 생생함을 담아, 모임에서의 이야기 일부를 나누어요. "'국가없음'이라는 말이 크게 와닿았어요. 국가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민주주의-공화주의적인 국가는 사람들의 사회적 합의와 계약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그 역할을 국가가 수행할 수 없을 때, 계약을 어떤 방식으로 점검하고 갱신해야 하는지 고민됐어요." "서민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시민과 구분되는 개념으로, 탈정치화하고 시혜의 대상으로 위치 시킨다는 말이 정말 무섭더라고요. 우리는 시민인데 말이에요. 돌아보면 선거에서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서민 정치' 잖아요.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야기랑 함께요. 체감상 2000년 이전에는 그런 방식으로 서민이 사용되었던 것 같지 않거든요. 신자유주의 영향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고, 윤석열이 자기를 대한민국의 1호 영업사원이라고 얘기했던 순간도 떠올랐어요. 구성원의 안전, 생명, 노동에는 관심이 없고, 스스로를 가부장으로 위치시키는 방식이잖아요." "우리가 하고 있는 비판적 논의가 세계시민교육에도 담길 수 있어야 하는데, 세계시민교육은 국민 국가와 그 폭력성을 넘어서는 지향을 가지고 있는데, 현장에선 그렇지 않은 모습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세계시민과 다문화가 이원화되어 사용되는 경향성도 있고요. (중략) 유네스코 중심으로 제안되는 세계시민교육이 가진 근원적인 한계가, 전쟁의 문제, 군비 경쟁의 문제, 그 전쟁으로 인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군산복합체와 국가의 카르텔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게, 그거를 만들고 주도하는 그룹이 그로 인해서 이익을 보고 있으니까요. SDGs도 되게 완성적인 포맷처럼 이야기하지만, 평화를 명시하고 있는 16번 항목에서도 군축 논의가 하나도 없거든요. 그리고 세계시민교육에서도 전쟁이라고 하면, '우리랑 먼 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다시는 일어나면 안 돼요.'라고 이야기할 뿐, 그 전쟁이 일어나게 하는 조건들, 그리고 그 전쟁으로 인해서 수혜를 얻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리 사회 역시, 베트남전에서의 엄청난 경제적인 '특수'의 토대 위에 서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평화와 시민성을 이야기하는 교육에서는, 전쟁 문제를 더 많이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지난 시간의 논의와 오늘이 연결되는 것 같아요." "시민들이 자신들의 안전과 생명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생활 정치를 하기 위해서 모였다는 것은, 거기에 모인 시민들의 생각이 아니라 그 시민들이 모인 현상을 분석하고 의미화하는 학자와 활동가의 해석이었잖아요. 실제로는 사실 자기 이익이나 권리 중심으로 이합집산한 현상이었는데, 너무 과도하게 의미 부여를 하고 승리에 취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되는 거예요.. 공동체성이나 시민성으로 해석하려는 현상들은 되게 많았는데, 그것을 제도화하고, 더 많은 일상에서 확산하는 데에는 미흡하지 않았나 싶어요. '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박근혜를 탄핵했으니 이제 끝났다' 처럼, 절대 악으로부터의 해방이나 승리에 취해 있으면 곤란할 것 같아요. 그렇게 얻어낸 성과를 어떻게 더 우리 것으로 만들어 갈 것인지,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과 실행이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공동체성/공공성에 대해서 우리가 고민할 때, 나에게 주는 구조적-문화적 영향이 굉장히 크고 나의 삶과 당연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데, 청소년분들과 만날 때에는 그 감각이 약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네 삶과 연결되기 때문에, 네 삶이 잘 구현되기 위해 중요하다'는 방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개인화된 접근이 적절한지 고민돼요. >>> 저는 공동체는, 명확한 경계가 규정될 수밖에 없고, 커먼즈 논의의 일부를 빌려오면 그게 오히려 건강할 수 있는 것 같거든요. 다만 안팎의 존재들에게 경계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나와 연결되는 건 되게 필요하고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접근인데, 자기 문제이자 곧 모두의 문제, 내 일상과 구조, 다른 누군가의 일상을 넘나드는 접근이 동반되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