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모모가 꿈꾸는 "평화커먼즈를 실현하는 시민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과정을 통해 평화커먼즈를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질문에 답하기 위한 한 가지 시도로서, 피스모모는 평화교육진행자 그룹과 역량강화 공부모임을 운영합니다.커머닝(commoning, 커먼즈를 가꾸는 구성원의 기여와 그 일련의 과정들)으로서 공부하고 사유하는, '존재하기 위해 변화'하는 서로배움 공동체의 소식을 나누어요😊 언제: 2023년 4월 27일(목) 7시-9시 30분 어디에서: 피스모모 사무실 누가: 비밥, 가지, 사다리, 그린하, 온, 영철 배움자료 ① 김병로,서보혁(2016). 『분단폭력』 (발제: 그린하) ② 홍민(2012). "분단과 예외상태의 국가: 분단의 행위자-네트워크와 국가폭력". 『북한학연구』 제8권 (발제: 온) ③ 모임 참여 전 공유한 모두의 글쓰기 유난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는 이번 모임은, 지난 모임의 내용을 차근차근 돌아보며 시작되었어요. 국가 이성이 작동하기 어려운 조건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시민의 안전에는 관심 기울이지 않고 그저 관리자 역할만을 하려는 경향성, 시민과 서민이라는 언어 구분에 담긴 정치적 의도와 함의, 국가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의 질문 등...역시 되짚어보기는 공동의 작업인가봐요. 연관된 생각과 경험을 나누니 기억이 하나하나 살아났답니다. "뉴스를 보는데 누가, 언제, '서민'이라는 언어를 사용해 시민을 호명하는지 확연하게 보이더라고요.""역설적이게도, 국가가 너무도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니까, 참여자와 함께 교육현장에서 권력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기 더 쉬운 것 같아요.""탄핵 집회에 참여하지는 않고 있는데,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책임을 정면으로 뒤엎는 외교를 법리적인 차원에서 검토해서 책임을 추궁해야 하지 않나 싶은 요즘이에요." (*참고: [논평] 윤석열 대통령, 안보리스크 그 자체)"수단에서 교민을 구출한 소식을 보며 씁쓸했어요. 사람들을 구해낸 것은 잘한 일이지만, 구하는 행위가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것 같아서요. 10.29 참사를 비롯한 일상적 안전에 대해서는 컨트롤 타워 역할도 하지 못했고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했던 정부가,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군부대를 파견할 때에는 이렇게 효율적으로, 체계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 싶었어요. 작전을 수행한 부대를 격려하며 해석하는 방식도 선별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신자유주의 하에서 권위주의 국가가 힘을 얻는 조건과 상황을 여러 각도로 살펴보니, 이번 모임의 주제인 '분단'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어요. 요한 갈퉁의 폭력 개념을 빌려와 분단을 살피는 '분단폭력', 분단-안보 프레임을 통해 예외상태를 창출하는 분단 사회의 역동을 다양한 측면에서 펼쳐보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렌즈로 삼았습니다. 발제 이후 활발한 토론의 일부를 공유해요. "진행자 공부모임 전에는 분단이나 전쟁에 대한 막연한 공포만 있었어요. 그게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고, 현재 구조에서 내가, 교육이 어떤 방식으로 일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특히 군산관학 복합체 '카르텔'이라는 말이 와닿는데, 이론적으로도 살펴보고 같이 공부하다보니까 좀 두렵고 거대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아마 다들 그렇겠죠? 꺼내기 싫어하고, 골치 아파지고, 여러 이유로 공론화하는 게 너무나 어려운 주제이지만, 교육 현장을 통해서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이 접근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드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너무 중요해요." "이 글에서는 분단폭력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분단평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데요. 분단평화는 분단된 현재 상황에서 더 이상 군사적인 긴장이 발생하지 않게 관리할 수 있는 정도, '평화유지' 층위까지라는 거죠. 통일폭력에 대한 언급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통일평화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저는 분단평화보다 통일평화를 더 상위 비전으로 설정하는 게 선뜻 동의가 안 됐어요. 분단 상태에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평화가 과연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전부일까요? 저는 행위자-네트워크 논의를 빌려와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분단의 블랙박스 안에서) 여러 인간-비인간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폭력들을 알아차리고 그것들을 일상에서 줄여가는 것도 분단평화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민 한 명 한 명이 그 행동을 분단 사회에서 평화를 이루어간다고 의미화하지 않더라도요. 피스모모가 이야기해왔던 탈분단평화교육은 분단체제와 연관된 폭력이 구성원들의 수행에 의해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면 그를 포착해서 줄여나가는 데 교육의 역할을 하자는 주장이니까, 조금 결이 다른 것으로 느껴졌어요." "본문에서 '북한 체제의 민주화를 촉진하여 군사 문제를 해소해야만 한반도 분단 폭력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는 문장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상황에서는 북측 정권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내부적인 확신이 생겼을 때 움직이는 것 같거든요. 국가 대 국가라는 큰 틀에서 평화 논의가 진행되더도, 사회 내부적으로는 오히려 정권의 힘이 강해지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분단된 상황에서는 일리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략) 그러나 한편, 이 문장만 말하면 악용되기 쉽다고 생각해요.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 '북한 민주화' 또는 '북한 인권 증진'을 이야기하는 시민사회의 영역이 커지는 경향이 있는 것과 관련해서요. 독재 체제로부터의 자유는 중요한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가 자신의 영향력을 떨치기 위해서 자주 사용하는 언어와 논리잖아요.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고, 정권으로부터 주민을 구원하겠다는 포지셔닝이요. 인권 문제는 모든 사회에 다 존재하고 있고, 각자 상황에 따라 시급한 의제가 다를 수 있잖아요. 남한이 비록 민주화되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여성, 퀴어, 생태 등 다양한 측면에서 노력해야 할 것이 있는 것처럼요. 우리도 국제인권이사회로부터 특정 사안을 시정하라고 권고받는 상황이 있는데, '북한인권'이라는 용어가 성립 가능한 것인가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남한인권'이라는 말은 없잖아요. 각 지역의 인권 문제가 균형 있게 논의되고,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과정이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제일 이상적인데.. 후자는 싹 빠져버리고 북한 마치 그 지역의 인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게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문장에 대해서 좀 잘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을 인간-비인간 행위자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어떻게 사회가 형성되고 변화해가는가를 설명하려는 이론이라고 한다면, 사실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어떤 것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느낌도 들거든요. 그래서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일상과 사회에서 어떤 정화-번역 작용이 진행되고 있는지 이야기하며 우리 언어로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만 봐도 예시를 찾기 쉬운 것 같아요. 분단-안보 프레임에 의한 정화작용, 이분법이 너무도 일상적이잖아요. 대내적으로는 화합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갈라치기로 일관하고, 대외적으로는 한반도 이슈뿐만 아니라 모든 국제사회를 동맹국가와 아닌 국가를 나누잖아요. 비판적으로 보기는 되게 쉬운데, 저는 이렇게 자세히 쪼개보고 섬세하게 감상하는 것은 시간이 드니까, 충분히 생각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으면 휩쓸려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이분법은 쉽고, 쉬운 것은 힘이 강하니까요. 그래서 우리 고민은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하는 것 같아요. 교육 현장에서 잘 다루기 위해서는요." "남한이든 북한이든 예외 상태를 명분 삼아, 안보가 중요하다며 권력을 취득해온 거잖아요. 지켜준다고 하는데, 그 누구도 지키거나 책임지지 못하고 오히려 공동체를 위험하게 만들면서 자기 이익을 얻어가는 상황인 거죠. 엄청난 뻥을 치고 있는 건데요. 이런 거짓말을 드러내고 낯설게 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한데, 당장 우리가 군사-안보-국제정치에 개입해서 바꿔갈 수 있는 영역이 적어보이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그 누구도 당장의 명쾌한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예를 들어 공동안보의 지향을 가지고 국회 외통위 위원들과의 긴밀한 연결망을 만든다거나, 한미일북중러 시민사회에서 연대할 수 있는 그룹을 찾아 각자 정치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액션 플랜을 짜고 실행한다거나 등의 큰 그림을 그려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동시에 우리는 평화교육진행자로서 분단 사회에서의 블랙박스를 드러내기 위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더 잘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가능성으로는, 진짜 지키고 진짜 살리는 게 뭔지, 서로를 돌보는 관계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힘에 의해서 누군가를 지키고 외부의 위협을 제거함으로써 안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공동체에 존재하고 있었던 서로 돌봄과 안전을 드러내고 의미화하고 더 많이 경험하게 하는 것이요. 이런 논의는 페미니즘 연구자/실천가/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해왔던 이야기이기도 한데, 오늘의 자료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충분한 언급이나 연결이 없었던 것 같아요. 베트남 전쟁 참전의 정당화-동원된 군인들에 대한 호출과 사회적 영향, 문자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일 수도 있는 숫자들(6.25, 7.27 등)을 보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에 대한 사회적-체계적 학습, 천안함 사건과 같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결론 내어두고, 그 이외의 논의는 모두 배제하는 '실험실화'의 영향, 미군기지의 배치와 기지촌 형성, 지역 주민-여성-생태계에 대한 착취, 용산기지에 어린이공원을 조성하거나 캠프페이지에 도청사를 짓는다는 등, 군사화되어온 맥락은 생략한 채 현재의 이용가치에 집중하게 되는 현상 등, 이밖에도 수많은 논의가 펼쳐졌답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힘을 찾는 것,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오늘의 배움을 요약해보기도 했어요. 비관에 사로잡히기 쉬운 요즘이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 단단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